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8. 2020

일편단심 팔불출

-눈 내린 설악산 겨울 산행 기록

등에 짊어진 배낭 무게가 삶의 무게만 하겠는가..!!



나의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잠시 한국에 가 있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사는 이곳 바를레타의 시간차를 감안하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전화가 온 것이다. 이런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전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아내에게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날씨 때문이었다.



당신이 전하고 있는 한국의 날씨를 참조하면, 그동안에 일어난 날씨의 변화 때문에 여러분들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추돌 사고가 속출했다. 아내가 전화기 너머에서 전하는 진술(?)도 그러했다. 저녁 무렵 집 앞에서 가까운 길을 걷다가 발라당 미끄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숨을 죽이고 경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발라당 자빠지면서 뒷머리를 땅바닥에 부딪쳤다는 것이다.(에고고 이게 무슨 일인가..ㅜ) 그런데 그렇게 바닥에 발라당 넘어진 후 가까운 침술원에 가서 침을 맞고 쉬고 나니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수다가 이어졌다.




"자기.. 

나.. 

이탈리아에 갈 때 챙길 거 다 챙겼어.. 

멸치랑 김이랑 젓갈이랑.. 

당신이 좋아하는 것까지 모두..!!"



아내는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촌음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물건 하나를 사도 당신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루 생각한 다음에 선택을 했다. 처음엔 그런 선택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아내를 이해하게 됐다. 당장 비싼 값을 치렀던 명품들이 시간이 꽤 오랜 다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이다. 




어떤 명품들은 20년이 더 넘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그 물건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고급진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내에게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다. 명품은 그렇다 해도 다 낡아빠진 유물들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값으로 매기면 보잘것없었지만 당신이 애지중지한 물건들이었다. 아내의 습관에 따르면 그것들은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작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날 우리는 겨울의 눈내린 설악산을 등반하기로 결정했던 날이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습관에 따라 아내는 주방에서 도시락 준비를 하고, 나는 겨울 산행에 필요한 물건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아직 바깥은 깜깜한 밤중이자 여명이 채 밝기도 전이었다. 이때 주방에서 아내의 비명 같은 외마디가 내 귀를 놀라게 했다.


"자기이~~~ 도시락이 없어졌어!!"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창문을 가리키며) 방금 여기에 도시락을 얹어 놓았는데.."  글쎄.. 그게 사라졌다는 것이다.(귀신이 나꿔채 갔나 ㅋ)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우리가 점심 혹은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의 재질은 플라스틱이었다. 그러니까 갓 지은 따뜻한 밥의 뜨거운 김을 잠시 식히기 위해 창틀에 올려두었던 도시락이, 미끄러지며 주방 바깥으로 추락한 것이었다..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당시 살던 집은 강남의 도곡동 R아파트 11층이었다. 그러니까 11층 위에서 낙하한 도시락이 멀쩡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나는 이 같은 설명을 한 후 1층 화단으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서자 아내가 뒤따랐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지.. 11층에서 곤두박질친 도시락은 눈이 덮인 회양목 위에서 원형을 보존한 채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깔깔댔다. 도시락이 망가지지 않은 건 마치 하늘의 도우심처럼 여겼다고나 할까.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같은 시추에이션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만약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도시락이 망가졌다면 이날 예정된 산행은 자칫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표지 사진은 우리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44번 국도에 위치한 눈에 덮인 한계령 휴게소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흔치 않은 풍경이다. 서울에서 이른 새벽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출발한 우리는 자동차를 휴게소 한쪽에 주차해 두고 끝청으로 발을 내디딘 곳이다. 설악산을 좋아한 산사람들에게 친숙한 이 길은 친숙함보다 동떨어진 매우 가파른 '깔딱 고개'였다. 



처음 100미터를 오르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는가 하면 발목에 쇠뭉치를 단 듯한 코스가 시작되고 있는 곳이었다. 산행은 힘든다. 혼자만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배낭까지 짊어졌다면.. 아내의 느낌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전혀 불평불만을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씩 정상으로 옮기고 있었다. 길은 표지 사진(아래) 왼쪽 뒷편 계단으로부터 시작된다.




등에 짊어진 배낭이 무겁고 여정이 제 아무리 가팔라도 삶의 여정이나 무게만큼 될까.. 아내는 가끔씩.. 아니 자주 찾아 나서던 명품보다 더한 모습을 눈 내린 겨울 설악산에 남겨두었다. 그런 아내가 내겐 진정한 명품이었다. (흠.. 이만하면 일편단심 팔불출의 대기록 아닌가..!)  <계속>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CON MIA MOGLIE
il Monte seorak Gangwon-do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신이 머무는 땅 그곳으로 떠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