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0. 2020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독배

#2 눈 내린 설악산 겨울 산행 기록

산행은 우리네 삶의 판박이..!!



지난 여정.. 눈 내린 설악산 겨울 산행 첫 편 일편단심 팔불출을 잠시 돌아본다.


우리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44번 국도에 위치한 눈에 덮인 한계령 휴게소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흔치 않은 풍경이다. 서울에서 이른 새벽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출발한 우리는 자동차를 휴게소 한쪽에 주차해 두고 끝청으로 발을 내디딘 곳이다. 설악산을 좋아한 산사람들에게 친숙한 이 길은 친숙함보다 동떨어진 매우 가파른 '깔딱 고개'였다. 

처음 100미터를 오르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는가 하면 발목에 쇠뭉치를 단 듯한 코스가 시작되고 있는 곳이었다. 산행은 힘든다. 혼자만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배낭까지 짊어졌다면.. 아내의 느낌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전혀 불평불만을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씩 정상으로 옮기고 있었다. 길은 표지 사진(아래) 왼쪽 뒤편 계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위의 자료사진 한계령 휴게소가 '표지 사진'이었다.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 휴게소에 주차를 해 두고 좌측 상단에 대각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료사진에서는 확인이 힘들지만 저 계단은 보통의 계단보다 높다. 계단을 왜 그렇게 높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건대 비상용(?)으로 만들었지 않나 싶다. 한 계단의 높이가 대략 50센티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이날 주차를 해두고 자동차 밖으로 나오자 숨을 쉴 수없을 만치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사서 고생하는 산행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같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산행을 고수하는 건 설악산이 우리에게 준 묘한 마력 때문이었다.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긴 여정이 조금씩 줄어드는 쾌감이 성취감으로 이어지면서 잠시 힘들었던 여정을 잊게 만들고 힐링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날 우리가 계획한 산행 코스는 한계령 휴게소-끝청-소청봉-(소청산장 1박)-봉정암(용아장성)-소청봉-대청봉-소청봉-희운각-천불동 계곡-비선대-설악동-양양-한계령 휴게소로 이어지는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무리한 도전이었다. 


산에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으면 누가 시켜서도 안 될 일을 아내와 함께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힘들고 피곤한 여정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에 남겨두었던 기록들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료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의 느낌이 생생하게 재연된다. 우리네 삶과 꼭 닮은 여정이 산행이나 다름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독배 


서울에서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머릿속은 설악산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장면들이 그려진다. 사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매를 미리 맞는 것이랄까. 산행이 시작되는 시간은 우리 실정에 맞게 사전에 설계되었으므로, 시작 지점에 도착하는 즉시 발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닮아도 너무 닮은 운명의 독배 같은 존재가 산행의 시작이다.




연습이 없는 실전이다


먼 나라 먼 산을 갈 때는 사전에 그에 걸맞은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장비를 챙기고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의 수이다. 아내와 나의 경우를 통해서 본 산행은 일단 마음을 먹으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동네 뒷산을 오르내렸을 뿐이다. 이런 연유 등으로 산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하산이 종료될 때까지 겪은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다음부터는 엄두가 나는 것이다.




후진 기어가 없는 자동차이다


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고행의 시작이다. 티베트에서 행해지는 오체투지만 못하겠지만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동안 너무 힘들어 쉬어가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다. 그러 경우라 할지라도 계획된 장소가 아니라면 퍼질러 쉬면 안 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을 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치 후진 기어가 생략된 자동차 같은 모습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지..



혼자 가야 한다


산행은 가혹하다. 아내가 저만치서 앞서 거거나 뒤따라 오게 된다. 아내의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나 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다. 무게가 무거운 생수와 먹거리를 빼면 비상식량과 바람막이 옷 등이 전부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일반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정은 혼자 가야 한다. 누군가 곁에서 도와줄 수도 없다. 자기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여름 산행 중에 만난 어떤 사람은 생수가 바닥난 사람도 있었다. 가혹하지만 당신 스스로 물을 찾아 나서야 하던지 인내를 해야 한다. 타인의 배낭에 든 생수는 그를 위한 것으로 나누는 즉시 둘 다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네 삶의 여정보다 더 혹독한 게 산행이다. 누구의 도움도 바라서는 안 되며 묵묵히 혼자 가야 하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산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우리네 삶을 판박이 해 둔 것 같은 일이 반복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오르막을 오를 때 힘이 들지만 내리막길에서 잠시 편안한 걸음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산행의 묘미는 주로 오르막길에서 주어진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목적지가 눈 앞에 보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정 속에 포함된 산행 코스는 주로 그러했다.





정상에 서면 내려와야 한다


대부분의 산행은 특정 산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너무도 뻔한 이치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정상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사는 동안 목격한 그런 사람들은 어느 날 한 방에 사라지고 만다. 주로 권력과 명예에 심취한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서 콩고물을 노리는 사람들이랄까. 설악산 대청봉의 끄트머리도 몇 평 되지 않는다. 또 하산해야 할 시간을 계수하면 오래 머물 수 없다. 정상에 서는 즉시 기념촬영을 끝으로 하산길을 재촉해야 하는 것이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


산행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산길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당신의 능력보다 무리한 산행을 한 결과인 것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산행 중 사고가 주로 이때 일어나게 된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는데 이미 정상에서 체력 전부를 쏟아부은 상태나 다름없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산할 때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더 힘들다. 체중 전부가 무릎관절에 실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험은 우리에게 대략 여섯 차례나 다가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공룡능선 코스는 최소 13시간에서 17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하산길에서 천불동 계곡에 들어서면, 무릎이 모두 망가진 것 같은 고통을 참고 견디며 귀면암-비선대-설악동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여정이 한밤중까지 이어지면서 녹초가 되는 것이다.




안식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의사와 관계없이 세상에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치 않는 운명의 독배를 마셔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배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지만 운명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비록 1박 2일의 짧아 보이는 여정 속에는 고통과 희열이 반복된다. 

참 희한하지.. 그 같은 고통을 겪었다면 두 번 다시 산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아야 할 텐데..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다 잊고 짐보따리를 챙겨 다시 산으로 가는 것이다. 나의 안식처가 고통을 잊게 만든 것이다. 잠시 다가온 고통의 순간이 운명의 독배라 할지라도 세상을 즐기는 자에게 독배란 없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CON MIA MOGLIE
il Monte seorak Gangwon-do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감동한 사진 한 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