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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4. 2020

민박집 아주머니와 벌인 신경전

-경비 1인당 2천 원짜리 여행지

알뜰했던 여행지의 봄나들이..!!



뿌에르또 몬뜨에서 만난 민박집 아주머니


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이곳은 남미의 칠레 로스 라고스 주에 위치한 깔부꼬의 풍경이다. 깔부꼬는 뿌에르또 몬뜨('몬뜨'라 한다)에서 대략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으로 주요 생계수단은 양식과 어업이다. 꽤 오래전 서구의 이민자들이 개척(?)한 이곳은 매우 평온했다. 



우리는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뿌에르또 몬뜨에서 머물고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부지런히 남하한 이후 다음 여정을 위해 몸을 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오래전 남미 일주 당시 묵었던 곳으로 주인은 이민자 후손인 마리아 아주머니였다. 




1인당 하루 숙박비 1만 원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우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삐끼(호객)를 당한 것이다. 그녀는 짬이 날 때마다 몬뜨의 터미널로 나갔는데 호객 때문이었다. 터미널에서 여행자를 알아보고 당신의 집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요즘은 지구촌 대부분이 B&B로 가득하지만, 당시만 해도 손님과 주인을 이어 줄 장치는 현장에서 만나 흥정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여행자 스스로 발품을 팔아 숙소를 찾아 나서야 했다.




마리아는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몬뜨의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그녀는 방이 다섯 개나 갖추어진 2층 목조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놀라지 마시라. 당시는 비수기였는데 1인당 하루 숙박비가 우리 돈 1만 원이었다. 굳이 깎자고 하지 않았는데 마리아의 제안으로 하루 숙박비 2인 1실 2만 원에 방을 얻게 된 것이다. 




몬뜨의 구시가지 풍경


몬뜨는 우리 맘에 쏙 들었다. 구시가지 대부분은 이민자들이 지은 목조건물로 이루어졌는데 질감이 풍부한 주택들은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 새파란 빛이 나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우기 때는 목조건물이 젖어있는 데다 난방과 취사를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저녁으로 곳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 매일 펼쳐지는 곳이었다. 




아내는 장작불을 때는 난로를 너무 마음에 들어했다. 난로 곁에 다가가면 뜨거운 열기가 찜질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력이 센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 난로를 화덕으로 삼아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굵은 장작 한 두 토막만 집어넣으면 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난방이었다. 



위 아래 자료사진들은 껄부꼬에서 만난 엄청난 패총의 모습이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 밑천이었을까.. 생전 처음 만난 희귀한 장면이었다.


열심히 데운 건물은 머지않아 식게 되어 냉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숙소의 침대 위에는 양모로 만든 이불을 두 겹 세 겹 덮고 잠을 청했다. 묵직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우면 엄마품에 안기듯 포근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작은 인내가 필요했다. 목조건물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와 여행자들의 채취가 묻은 냄새가 숙소 내부에 남아있는 것이다. 1인당 1만 원짜리 숙소의 풍경이 대략 이랬다.




민박집주인과 아내의 신경전


다시 만난 마리아의 표정은 너무 반가워했다. 그녀는 여전히 몬뜨의 버스 터미널에서 손님을 삐끼질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방값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우리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방값이 지난번과 달라요."

"..?"

"1인당 3만 5천 원씩 줘야 합니다."

"왜 그렇지요?"

"지금 몬뜨에서는 방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성수기여서요."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 가격이잖아요."




터미널에서 마리아와 줄다리기를 한 끝에 결국 1인당  1만 원을 깎았다. 아내가 다른 숙소를 알아보자고 한 게 주효한 것이랄까.. 그래서 하루 숙박비는 5만 원으로 낙찰을 본 것이다. 아내는 남미일주를 통해 이곳 사정을 꽤뚫고 있었던 것이다. 숙소비를 깍자 민박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의 표정은 썩 개운치 않았다. 미리 알았다는 게 손해를 보는 듯한 떫떠릅한 표정이랄까. . 




마리아네의 숙소에서는 아침을 커피와 함께 샌드위를 제공했다. 그게 우리의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마리아의 눈총을 받게 됐다. 우리가 먹을 음식을 따로 장을 봐온 후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녀는 "흥..! 방값까지 깎아주었더니 갈수록 태산이네..!!"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 아줌마의 대반격


아내는 아내대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한국 아주머니와 칠레 아주머니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흥.. 방값까지 올려주었더니 더 지랄이야!" 이때부터 두 여인의 신경전은 불꽃이 튀었다. 마리아는 결국 아내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리아의 불만은 장작 난로를 사용하지 않고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데 있었다. 




당시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된장으로 찌게까지 만들었으므로 주방겸 거실은 된장 냄새가 진동을 한 것이다. 다른 손님들의 불만도 느껴졌다.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내가 중재에 끼어들었다. 교섭에 절충을 한 끝에 우리만의 전용 냄비를 사용하고, 처음 가스레인지에 조리한 다음 장작난로에서 뭉근히 끓이는 방법이었다. 또 이 집 식구들의 편의를 위해 식사시간을 둘로 나누었다. 서로 다른 시간에 아침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사간을 이용했다.



그때부터 까칠했던 두 여인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내는 무시로 마리아를 통해 현지 사정을 알아보라고 보챘다. 몬뜨에 머무는 동안 단 하루라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어야 한다는 게 아내의 뜻이었다. 먼 나라 낯선 도시로 비싼 비용을 들여왔다면 본전(?)이라도 뽑아야 될게 아닌가 하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주변은 북부 파타고니아에 속해 있는 곳이다. 발품을 팔면 팔수록 여행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풍경이 지천에 널린 곳이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주변의 여행지 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이 깔부꼬였다. 그리고 몬뜨의 터미널로 즉시 이동한 다음 버스표를 구입했다. 1인당 대략 2천 원의 비용이 들었다. 왕복 버스 차비였다. 



그곳이 본문에 실린 자료사진들이며, 우리는 그전에 깔부꼬를 한 바퀴 돌아 나오던 중이었다. 아내는 이날 투어를 위해 마리아의 눈총을 피한 다음, 가스렌지를 이용해 샌드위치를 만들고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장작난로의 화력은 좋아도 조리가 불편했던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리아의 표정에 불만이 묻어있었다. 어느 봄날 우리가 보낸 낯선 여행지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깔부꼬를 한바퀴 돌아오는 길 한쪽에는 연분홍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싸게 먹힌 경비로 여행지의 행복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의 계획에 따르면 이제 이곳을 방문할 이유도 없고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행을 돌아보니 꿈같은 시간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운 시간들.. 자꾸만 이들 풍경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 마리아 아주머니는 잘 계시는지 궁금해진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Los lagos Puerto montt Calbuco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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