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3. 2020

우아함을 입은 중세의 미인들  

-피렌체에 가시면 꼭 봐야 할 축제

아내와 함께 꿈꾸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피에솔레에서 바라본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전경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 때까지


우리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주도 피렌체에 둥지를 틀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죽기 전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살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것 같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갈수록 너무 뻔하고 정형화된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씩 수순을 밟아나가게 된 것이다. 기회가 다시금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꿈을 꾼다고 해서 다 이루어진다면 그건 꿈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앞만 보고 나아갔던 것이다. 그게 어느덧 5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아내와 나는 피에솔레에서 피렌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르네상스의 고도는 졸고 있는 듯했다. 두오모를 중심으로 붉은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집들이 빼곡히 널린 곳. 우리는 두오모 곁 지근거리에 위치한 산 로렌조 성당 바로 곁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두 가지 사건


그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은 두 가지였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게 첫 번째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먼 나라 낯선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필수적인 게 언어였으며,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이탈리아어의 낯선 장벽을 허물어뜨리게 됐다. 


그다지 유창하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해진 것이다. 맨 처음 요리실습 현장이 피렌체였고 아내와 함께 살게 된 곳이 또한 르네상스의 고도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피렌체 곳곳에 발도장을 찍었다. 




꿈의 도시 피렌체를 떠나다


두오모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골목 곳곳으로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우리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처럼 눈만 뜨면 장소를 옮겨가며 소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도시가 피렌체였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엄청난 량의 르네상스 유물들을 접했다. 


특히 우피치 미술관은 우리를 압도했다. 하루 종일 돌아봐도 작품을 다 감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술관 전체는 르네상스의 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 365일 내내 주야장천 줄을 선다. 하지만 무엇이 이들을 이끄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당신들이 살면서 학습하게 된 지식으로 피렌체를 찾게 된 것이랄까.. 




피렌체는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볐다. 눈만 뜨면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법의 도시였던 것이다. 그런 도시가 어느 날부터 멀어진 것도 마법 같은 일이었다. 우리가 피렌체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내가 좋아한 한 예술가의 화풍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등살에 떠밀린 것도 한몫 거들었다. 



르네상스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시내 중심 두오모로부터 점점 더 멀리 발품을 팔며 아르노 강가로 가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는 유일한 장소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강가였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비로소 르네상스의 고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혹은 문예부흥)는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은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책 속에 쓰인 르네상스만 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일까.. 




나를 일깨운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누가 운동의 주체이며 객체였는지 모호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눈에 띈다. 한 도시국가를 장악한 메디치가와 상인들의 상술이, 교황청과 정경유착을 통해 만들어진 게 르네상스의 고도를 일구게 된 배경이었다.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그들은 상술로 예술가들을 끌어들였고 예술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다. 그중 대표선수(?)는 누가 뭐래도 미켈란젤로였다. 




내가 아는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상술에 미쳐 날뛰는 동안, 그는 묵묵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갔다. 허영과 가식의 세상으로부터 저만치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주교 조차 상인들과 놀아나는 마당에 그는 인류 최고의 걸작 다비드상을 조각하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등을 완성해낸 것이다. 




다비드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근육질의 나신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의 앞에만 서면 카메라를 들이댄다. 남자인 내가 봐도 섹시하고 잘생겼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모델이 그 자신이 아닌가 싶었다. 바이블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나신에 천조각을 걸치지만, 그는 바이블의 내용에 따라 천지창조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물주가 만든 인간을 신격화시키며 권력을 누리게 된 교황청 조차.. 피렌체를 장악한 메디치가와 함께 솔직함 이상으로 표현해 낸 작품에 손을 들고만 것일까. 당시 시대사조는 기독교를 거부하면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풍조가 만연된 사회에서 미켈란젤로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늘나라로 가려면 세상의 무게나 가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을까..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Cappella Sistina)를 그릴 당시 일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천정화를 그릴 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교황청에 아부를 일삼던 주교나 성직자들의 허례허식이 작업을 중단하게 만들까 봐 그랬던 것이다. 작품 대부분은 나신이거나 얇은 천조각만 걸쳤다. 어쩌면 그는 작품에 등장한 사람들 모두 다 발가벗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피렌체서 만난 가장 인간적이자 르네상스를 닮은 주현절 축제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는 해마다 1월 6일이 되면 성대한 주현절(主顯節, La Befana) 축제가 열린다. 우리에게 낯선 이 축제는 피렌체 시민은 물론 피렌체를 찾은 세계의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주현절은 예수의 신성(神性)이 공식적으로 드러낸 날을 뜻한다. 서방의 기독교에서는 동방박사가 예수를 찾은 때로 보고, 동방의 기독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때로 보고 있는 날이다. 



피렌체를 찾은 사람들 전부가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이 같은 기록보다 행사에 등장한 복식을 통해 피렌체를 보다 더 진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행사를 둘러보는 동안 마치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물씬 배는 것이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옷과 장비 등은 모두 고증을 거친 것으로, 서기 1300년대 중세 피렌체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그대로 묻어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사람들의 허례허식을 발가벗겼다면, 피렌체 공국의 사람들은 화려한 옷과 장식품으로 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축제에서 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 아름다운 여성들은 한결같이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그리고 그녀들이 두른 복식에서 아득한 시간 저편 르네상스의 일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당시의 복식만 참조해도 르네상스는 좌파 우파 따지려 드는 운동권(?)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피렌체서 일찌감치 발현된 아름다운 생활양식이었던 것이다. 피렌체를 방문할 계획을 세운 분들이라면 이 축제를 절대로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이 축제에 참여하면 그때부터 르네상스를 일군 사람들이 가슴에 꼭 안기게 된다. <계속>



BEFANA A FIRENZE IN TOSCANA
La Memoria della Befana a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