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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6. 2020

어머니의 기도

-위대한 세상의 어머니들께

아쉬울 때마다 찾는 신의 세계..?!!


이틀 전(현지시각), 사정상 한국으로 잠시 떠난 아내와 통화를 했다. 설 명절 잘 쇠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보시다시피 잘 쇨 수가 있남..!"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립서비스지..?"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말하며 아내를 다독거렸다. 그때부터 시작된 통화는 30분은 더 걸렸다. 아내는 깔깔거리며 너무 좋아헸다. 덩달아 키득거렸다. 이웃의 가십 하나가 웃게 만든 것이다. 이렇듯 우리를 이어주는 끈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설날 아침.. 우리나라의 새해 아침, 설날이 밝아오는 시각 이곳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집안의 등불을 환하게 밝혀 두고 조촐한 의식을 치렀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하늘에 계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할아버지께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므로 얼굴도 모른다.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는 짧은 시간에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시는 어머니의 환영이 보였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 그리고 하얀 앞치마를 잘 차려입은 어머니는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셨다. 종가의 맏며느리는 주로 이런 차림으로 설날을 맞이하거나, 연중 시도 때도 없이 치러지는 제사를 맞이하셨다. 






설이나 추석 혹은 제사 때가 되면 숙모님들이 함께 제수 준비를 하지만 지휘는 어머니 몫이었다. 조상님께 드리는 음식이 종가의 법도에 맞게 잘 차려져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명절을 앞두고 한 이틀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은 일찌감치 장을 봐 두었다. 




어린 나와 형제들은 이 날이 너무 좋았다. 설빔에 평소에 못 보던 음식들이 빼곡하게 정지에 혹은 툇마루에 널려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어머니 몰래 음식을 맛보다가 들킨 적도 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예야 그 음식은 조상님이 먼저 드신 다읍에 먹는 거란다"라며 좋게 타일렀다. 





어린 내가 그 뜻을 알 리가 없다. 조상님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지.. 또 그 조상님이 차례상에 있는 음식을 드실 수나 있는지 등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잔치.. 머리가 다 큰 다음에, 철이 든 다음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행하던 명절의 본모습을 알게 됐다. 

 


아내가 앞서 걷는 가운데 비에드마 호수 너머로 아침햇살이 밝아오며 황금빛을 쏟아부었다.


우리는.. 나는 조상님의 음덕에 힘 입어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실로 감사한 일이자 뜻깊은 날이 다가온 것이다. 조촐한 의식의 진행은 음덕에 관한 일이었다. 어머니 깨선 생전에 늘 기도를 올리셨다. 기도처는 정지(부엌)였다. 그곳은 어머니만의 절대 불가침 영역이자 신성한 장소였다. 이른 새벽이면 언제 일어나셨는지 가까운 샘터에서 물을 길어오시곤 했다. 





정화수였다. 어쩌다 엿보게 된 어머니는 정화수를 앞에 놓고 손바닥을 비벼대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시는 듯했다. 그러한 일이 우리를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시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은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신앙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천지신명은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神)의 한 쌍으로 우리의 존재를 일깨우는 것이다. 설날 차례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세상 모든 일은 천지신명이 주관하는 것으로, 내가 세상에 끼친 작은 행실 조차 음덕으로 거듭나려면 천지신명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행한다 할지라도 하늘은 늘 당신을 지켜보고 있으며, 하늘을 나는 새들이나 땅에 납작 엎드린 풀꽃들 혹은 바람 한 점에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새겨져 있는 것이랄끼.. 그래서 선한 일을 거듭하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그에 걸맞은 행운이 찾아들 것이다. 반대로 잔꾀를 부려서 남몰래 나쁜 짓을 일삼으면 불행이 찾아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지신명께옵서 어느 날 불의 심판을 한다거나 홍해를 가르는 따위의 허무맹랑한 기적 따위는 행하지 않았다. 이 같은 진리를 깨우치는데 필요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대략 16년 동안 시간을 허비한 끝에 비로소 어머니께서 서원하셨던 천지신명의 실체(?)를 깨닫게 된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역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우리의 자아를 이루고 있던 영혼이 신체를 이탈하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 머물게 되는 이치로 다가왔다. 늘 깨어있는 맑은 정신이라야 천지신명을 알현할 수 있다고나 할까. 





본문에 등장한 풍경들은 아내와 함께 다녀온 파타고니아의 라구나 또르레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티 없이 맑고 고운 자태를 간직한 원시의 여행지에서, 어느 날 전혀 뜻밖의 환청을 듣게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신들이 머물거나 살아가고 있었던 장소에 깔라파테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조금 전에 이곳을 지나쳤다. 나는 깔라파테 열매를 통해 아내를 기억해내는 것이다. 설날이 다가오면 바쁘게 동선을 그으시던 어머니의 기도도 그런 것일까..


"비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늘 함께 동행하시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비나이다 내 남자의 인술을 통해 병든 자들이 고침을 입게 해 주시고.. 비나이다 저의 부족함을 아시는 천지신명이시여.. 바라건대 저를 그 도구로 삼아주시옵고.. 아이들이 행여나 다칠 일이 생기면 나를 먼저 소환하여 티끌만치도 흠이 없도록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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