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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6. 2020

설날 아침에 이거 먹었다

-올리브유와 간장으로만 버무린 비에톨라 무침

먼 나라에서 차례상에 오른 음식이 생각날 때..!!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나물은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비에톨라(Bietola)라는 채소이다. 요즘 재래시장에서 눈에 띄는 제철 채소로 설날(우리나라 시각)에 맞추어 미리 구입해 두었다가 설날 아침에 먹었다. 먼 나라에서 우리나라 고유명절을 잘 쇠기란 쉽지 않고 어릴 때부터 학습된 차례상의 음식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이날은 차례상에 오른 음식의 특징을 그대로 적용하여 비에톨라 무침을 만들어 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은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제수의 조리에는 마늘, 고춧가루, 파 등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간장과 소금 같은 천연 조미료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이 같은 풍습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맑아야 할 정신이 딴 데로 팔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랄까.. 불교에서는 생리적 활성화를 돕는 파, 마늘, 고추, 부추, 미나리 등의 음식은 제물로 쓰지 않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비에톨라의 리체타는 오만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인살라따로 계란과 함께 오븐에 구워내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비에톨라는 요리하는데 자연스럽게 마늘과 후추가 포함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맛의 풍미를 드높이기 위해 갖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 



하지만 이날 만든 비에톨라 무침은 차례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양념을 단순화시켰다. 잘 데친 나물에 올리브유와 간장 그리고 깨소금이 전부였다. 이 무침의 특징은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의 특산물인 올리브유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물을 무칠 때 들기름이나 참기름 등을 사용하지만 올리브유 하나만 사용했다. 그리고 조미간장만 첨가하고 깨소금을 흩뿌린 것으로 끝!



뿔리아주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는 진한 녹색 빛깔이 돌며 쌉쌀하며 미네랄 향이 듬뿍 풍기는 매우 값진 올리브유이다. 한 번 맛 들이기만 하면 다른 지역의 올리브유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또 올리브유 생산 방법 등에 따라 가격도 천 차 별 만차 별이다. 비에톨라 무침은 굳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철 맛볼 수 있는 나물 무침에 올리브유와 간장만으로 맛을 내도 훌륭한 요리가 탄생한다. 



나는 비에톨라 무침을 만들면서 설날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례가 끝나고 가족들과 함께 차례상에 오른 나물을 비벼 먹던 생각이 난 것이다. 설날 당일은 담백한 나물을 비벼 먹지만, 설이 지나고 나면 그 나물들은 대변신을 하게 된다. 설에 먹고 싶었던 고춧가루 내지 고추장이 마구마구 당기는 것이다. 


담백한 나물에 고추장을 얹어 비벼먹으면 제수의 조리에 왜 자극적인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고추장을 얹은 비빔밥 한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힘이 불끈 솟는 것이다. 우리나라 설날 아침에 이곳 바를레타 바닷가에는 풀꽃들이 샛노란 꽃잎을 무수히 내놓고 있었다. 녀석들은 무엇을 먹었길래..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BIETOLA CON OLIO ALLA SALSA DI SOIA
il 25 Genna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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