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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9. 2020

그 여자와 불편했던 동거의 종말

-잠옷 차림으로 침입한 집주인 여자 <하편>

어느 날 내게 닥친 시련은 이런 것일까..?!!



이틀 전에 끼적거렸던 아슬아슬한 경험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당시의 자료를 찾아봤다. 용케도 숙소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이 사진 몇 장과 영상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자료를 뒤적거리기 시작하면서 당시의 기억이 뚜렷하게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지난 편 진공상태로 변한 아드리아해 말미에 이렇게 썼다.


(중략).. 그래서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어떤 때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뽀송뽀송 뽀얀 침대 커버만을 두르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런 습관이 화근을 부른 것일까.. 가끔씩 무의식 중에 인기척을 느끼곤 했는데 누군가 나의 방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마르게리따가 커튼을 젖히고 방문을 여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잠옷(camìcia da notte)만 걸친 채 나의 침대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화들짝!!) 나는 잠결에도 불구하고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침대커버로 몸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OHH~NOOOOOOO!!!"

이때부터 전혀 상상 조차 하지 못 했던 시련이 시작되며 이중고를 겪게 됐다.





기억속에 머문 그녀의 모습


피렌체는 우기에 접어들었다. 창밖에는 소낙비가 자주 쏟아지고 바람이 불었다. 그녀를 거부한 대가는 생각보다 거세게 다가왔다. 그 사건 이후로 한 달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하찮은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런 한편 숙소로 돌아오면 마르게리따의 위험한 도발이 머릿속 가득했다.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달려들지 몰라 아예 철물점에서 문고리를 사다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짬이 그녀의 요염한 자태가 떠오르곤 했다. 모델 출신의 그녀의 몸매는 관리가 잘 된 탓인지 중년에 접어들수록 농염한 모습이 풍겼다. 가슴은 탄력을 잃지 않았고 배꼽은 점을 찍어둔 듯 뚜렷했다. 깊은 계곡에는 검고 짙은 숲이 빼곡했다. 입은 듯 만듯한 잠옷 사이로 그녀의 전신이 묻어났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끔씩 그녀의 친구들이나 사촌들이 놀러 와서 한바탕 떠들썩하게 지내고 나면 집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곤 했다. 어떤 날은 훤칠한 키에 미모의 딸내미가 집에 들르곤 했다. 그녀는 피렌체의 모 리스또란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바깥에서 지내고 있었다. 또 내가 그녀의 집에 동거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건네는 게 전부였다. 


문제는 집안에 딸내미나 이웃들이 없을 때였다. 그 사건 이전에는 마르게리따는 주방이나 거실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지냈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로 그녀는 무안하고 머쓱했던지 마주치는 걸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흥! 그냥 줘도 못 먹는 븅신 같으니라고..ㅉ) 나는 나대로..(흥! 여자가 좀 앙칼진 맛이 있어야지 넘 해퍼!! ㅉ) 하는 표정 등으로 좁은 공간은 그때부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 여자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그녀의 태도는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병적인 행동이 한두 번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삐에몬떼 주로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녀가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가 하면 그녀 속에는 관음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속으로 '이런 요물도 있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한 지붕 아래서 동거하고 있는 내가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집을 당장 옮길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그녀의 태도에 맞대응을 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사건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리스또란떼를 찾아와 내가 다닌 요리학교 등에 대해 지배인을 통해 물어본 사실이 확인됐다. 남편과 이혼을 한 이후 과부로 지내면서 홀홀 단신으로 피렌체서 지내는 내가 사냥감으로 지목되었다고 할까. 그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녀는 나를 쫓아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어느날 돌변한그녀의 태도와 행실


그녀는 골초였다. 그동안은 주로 내가 없을 때 주방이나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금연 중인 나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주방의 식탁에 올려둔 재떨이는 두 개로 늘어났는가 하면 싱크대 위에 세 개의 재떨이가 놓였다. 그리고 벽의 찬장에도 재떨이를 올려둔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장실에도 두 개의 재떨이가.. 자료사진의 창문 곁에도 두 개의 재떨이.. 거실 테이블 위에도 두 개의 재떨이.. 거실 책장에도 두 개의 재떨이.. 출입문 곁 신발장에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면 집안은 온통 쪄든 담배 냄새로 가득했다. (세상에! 이런 여자 봤나..!!) 그녀는 나를 내쫓기 위해 노골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맨 먼저 주방의 설거지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나의 습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방에 먼지 한 톨이라도 발견되는 즉시 깨끗이 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리스또란떼에서 이 같은 일은 일상이 되었으므로 숙소로 돌아와도 같은 이유로 주방은 깨끗했다. 


그날 밤 사건 이전에는 이 같은 습관 때문에 잠시 미뤄둔 식기 등을 내가 치우곤 했다. 그녀는 그때마다  고마워하며 식탁 위에 포도주 한 잔을 놓고 가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설거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일은 추호도 없었겠지만, 그녀를 딱 한 번만 껴안아 주었다면 대우(?)는 더 달라졌을까.. 



그녀의 소름끼치는 관음증과 상식 밖의 행동


먹다 치운 그릇들은 싱크대 위로 빼곡히 쌓여 내가 먹은 접시 등을 치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반들반들하게 잘 닦아 놓은 레인지는 이곳저곳 기름 찌꺼기 등이 널려있는 등 여간 더러운 게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의 태도도 달라졌다. 주방에서 두 개의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챙겨 나의 방으로 옮겼다. 식탁을 떠나 음식을 아예 내 방의 책상 위에서 먹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싱크대는 내가 사용한 절반만 반들거리게 만들었다. 또 함께 사용하던 냉장고에서 나의 물건들을 아예 치워버렸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놀랍게도 그녀의 관음증과 무관하지 않았다. 방에서 짬짬이 이탈리아어를 학습하는 동안 주방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날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내 방에 있던 장롱의 거울에서 그녀의 얼굴을 목격한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이 눈에 선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그녀가 고양이처럼 조용히 방 문 앞까지 다가와 커튼 사이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모른 척하고 다시 책상으로 다가가 노트북을 펼쳐 하루 일과를 정리하곤 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어느 날 발가벗다시피 한 몸으로 나의 침실로 침입한 것도 계획된 것이자, 그녀 속에서 들끓는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고나 할까. 다음날 그녀는 나를 부르더니 노골적으로 자기 집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여자들만 사는 집에 남자가 동거하느냐"라고 말했다.(이것 봐라!) 


그럴 거면 처음부터 집을 세를 놓지 말아야 했고 부동산에 그렇게 부탁을 해야 옳았다. 그러면서 나를 내 보내고 혼자 사는 여자에게 세를 놓겠다나 뭐라나.. (이런 발칙한!) 그래서 복비와 그동안 지불한 방세 전부를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며 대판 싸우게 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흉측한 소굴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카드는 모름지기 참아야 하는 일 밖에 없었다. 사노라면 이런 딱한 일도 있었다.




나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나의 노골적인 공격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참 기막힌 노릇이었다. 먼 나라에서 만난 낯선 여자 사람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싸움에 휘말리다니.. 나의 이 같은 결정을 부추긴 건 그녀의 추잡한 행동 때문이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는데 희한한 장면이 목격됐다. 


화장대 위에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둔 것이다. 또 화장실 문 안쪽 손잡이에도 팬티가 걸려있었다. 또 속옷 한 뭉치가 빨래통에 담겨 있었다. 가끔씩 들르던 딸내미도 거들었다. 아예 생리대를 널어두었다. 이런 짓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건 약과였다. 


나는 어느 날부터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그녀는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술을 잔뜩 퍼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떠들어대는 것이다. 거실에 있던 앰프에서는 요란한 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패션쇼에서 하던 워킹을 한밤중 내 방앞 거실에서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참았다. 아래층에서 살고 있던 이웃들이 항의를 하는 등 난리법석이 매일 밤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참다못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을 생중계했다. 아내는 그 즉시 이렇게 말했다.


'이런!!.. 미친년이네.. 아예 상대도 하지 말고 참아야 해.. 당신이 다칠까 무서워..!!"


이럴 줄 알았다면 보다 신중해야 했지만 누가 이럴 줄 알았겠는가. 또 당시엔 물불 가릴 형편이 못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아내도 모르는 맞불을 놓았다. 요리사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시간 빠우자가 시작되는 낮시간은 물론, 퇴근 후에 샤워를 하고 나면 아예 발가벗고 다녔다. 그동안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지만 그건 그녀를 위한 예의나 배려가 아니었다. 그동안 숨어서 훔쳐봤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볼 테면 봐라지.. 아예 속속들이..!!


맨 처음에는 화장실에서 커다란 수건으로 엉덩이만 가리고 나오다가, 그녀의 담대함이 커질수록 나도 담대해져 갔다. 어느 날부터 샤워를 끝마치고 나면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고 아예 벗은 몸으로 침실로 향하곤 했다. 화장실로부터 침실로 이어지는 동선은 식탁에서 마주 보이는 곳으로 등 뒤로 시선이 느껴지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현장실습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마르게리따는 당신의 행동은 졸라 모른 채 무시하고 나에게 손을 벌렸다. 그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방세를 미리 가불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엔 즉시 거절했다가 사정이 딱해 보여 내 앞에서 영수증을 쓰라고 한 다음 가불을 해 주었다. 


내가 지불한 월세는 한 달에 50만 원(400유로) 정도였다. 그녀는 이 돈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슬픈 일이 한 과부로부터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남편과 이혼한 사정도 그녀의 전직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모델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습관이 너무 헤펐던 나머지 가난한 화가가 그녀의 허영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것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내고 있었던 침실의 벽에 걸렸던 그림들이 어두운 빛깔의 우중충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랄까.. 


현장실습이 끝나갈 때쯤 집 앞에서 만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 오.. 디오!!(Ohh Dio!!_오.. 하나느님!!)"를 외쳤다. 그녀가 나를 향해 외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고 또 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겪은 일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 뮤즈가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대로 그녀를 통한 시련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뮤즈였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전편 진공상태로 변한 아드리아해에서 만났던 바를레타 항구의 풍경


삐에몬떼로 떠나는 날 아침,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무거운 두 개의 케리어를 하나씩 지층으로 옮기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난 후 피렌체에 둥지를 틀게 됐다. 


아내는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맨 먼저 내가 살았던 마르게리따 집을 가 보고 싶어 했다. 뽀르따 로마나를 다시 찾아가 그녀의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두 해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잠시 머문 그 공간이 나를 전혀 다른 삶으로 바꾼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웰케 힘들었는지..!!



*본문에 삽입된 자료사진 중에 창밖의 풍경은 마르게리따의 집에서 바라본 곳으로, 겉으로 드러니지 않은 피렌체의 집 구조이다. 숙소로 돌아오면 유일한 볼거리가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삽입된 자료사진은 당시에 촬영된 뽀르따 로마나의 일면이다.

Il mare Adriatico si è trasformato in vuoto
il 26 Geanna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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