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1. 2019

저만치 앞서 가는 님

-뒤를 돌아볼 힘도 없도 없을 때

누가 그 마음을 이해해줄까..? 


사노라면 답답해서 미칠 지경에 이를 때가 참 많다. 괜히 답답할 때도 있다.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찾아내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해 보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겨본다. 술을 실컷 마셔본다. 아니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던지. 이런 걸 현실도피 혹은 '잠수 탄다'라고 말한다. 잊어보려거나 잠시 숨어 지내는 것. 그게 또 소원이라우리가 꿈꾸는 소원은 무엇일까.. 술을 마시던 어디론가 멀리 떠나던 우리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고 방랑자가 아닌 여행자라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잠수도 마찬가지지. 물고기가 아닌 다음에야 호흡을 오랫동안 멈출 수가 없지. 그렇다고 돈과 권력과 명예가 차고 넘치면 좀 더 나아질까. 똑같더라. 살아보니 빈부귀천이 다 똑같더라.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늦게나마 깨달은 게 참 다행이었다. 무엇이든지 차고 넘치거나 바닥을 보일 때 주변을 둘러보며 소통할 대상을 찾는 것.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중증에 이르렀던지 지하철에서 본 현대인들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모두 다 한결같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있었다. 현대인의 소통 방법이다.





세상을 향한 아내의 소통방법은 달랐다. 평생을 통해 해 왔던 오래된 습관이었다. 답답할 때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기분이 좋든 싫든 행복하든 불행에 처했던, 그 어떤 상황이 당신 앞에 놓였을지라도 날만 새면 집을 나선다. 가까운 산이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 이 곳은 천하의 절경이 위치한 파타고니아의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의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산길의 모습이다. 볕은 따갑고 발아래는 먼지가 푸석거리는 곳. 뿌에르또 나탈레스(Puerto Natales)에서 짐을 푼 후 답사에 나섰다가 뒤돌아 선 곳이다. 첫 번째 답사는 실패로 끝났다. 준비가 부족했던 게 원인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기로 마음먹고 숙소로 되돌아 가는 길에 기록을 남겼다. 


저만치 앞서 가는 아내. 저만치 앞서 가는 님.. 이때만 해도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무슨 일로 토라진 것일까. 삐쳐도 단단히 삐쳤을까.. 뒷모습만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혀 사정이 다른 것. 당신의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아내는 어느 날 나의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그땐 뒤를 돌아볼 힘 조차 없었어..!"



정치판의 풍경이 그런지. 아내의 대국민 소통법은 주로 이랬다. 그러니까 당신을 섬겨야 할 백성 된 나의 입장은 그야말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 입장을 바꾸어 봐도 마찬가지일까. 오래전, 국문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은 이런 현상 등에 대해 우리나라의 한(恨)의 문화를 접목시키곤 했다. 어디 하소연하고 싶으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생긴 일종의 병(가슴앓이)이었다. 뒤를 돌아볼 힘 조차 없어서.. 힘들다고 어디에 하소연해 봤자 결국은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일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당신은 내가 부른 노랫말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일까. 어쩌다 노래방에 들러 나의 애창곡을 들려주면 재창 삼창을 외친다. 그중에 노사연 씨가 부른 님 그림자를 너무 좋아했었다.  사노라면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힘들고 두려웠던 일이 내 앞에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나의 사정을 호소할 그 어떤 소통의 대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그 무엇이든..



님 그림자_노사연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 하니 서러움이 가슴에 이네 님은 나의 마음 헤아릴까 별만 헤듯 걷는 밤 휘황한 달빛 아래 님 뒤로 긴 그림자 밟을 날 없네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 하니 서러움이 가슴에 이네 님은 나의 마음 헤아릴까 별만 헤듯 걷는 밤 휘황한 달빛 아래 님 뒤로 긴 그림자 밟을 날 없네 


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
Regione di Magellano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