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선택이 치매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
"여보, 기억나? 그때 우리 거기서 뭘 했지..?"
젊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긴다. 생겼다. 누구의 말마따나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사람들은 살아갈 날을 계수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 과거에 대한 추억들이 미련에 남고 또 그때가 자꾸 그리워지는 법이랄까. 어떤 광고를 보니 한 노인이 집을 나선 후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누가 노인을 납치한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인 실종이 일어난 것이다. 자발적인 실종..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 자취라도 감추어 보고 싶었을까. 아니었다. 광고가 던진 메시지는 '기억상실(記憶喪失)'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 말은 가벼운 증세의 건망증(健忘症)과는 다른 중증 이상의 치매(癡呆)였다. 치매는 이랬다.
치매는 성장기에는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유지하다가 후천적으로 인지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치매는 기억을 하고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장기적으로 점차 감퇴하여 일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에 이르게 된 넓은 범위의 뇌 손상을 의미한다. 출처: 위키백과
링크된 내용을 살펴보면 치매는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치매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2015년에 전 세계적으로 약 4천6백만 명의 사람들이 치매를 앓았다. 이 중 약 10%는 같은 시점(나이)에 치매가 발병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치매가 더 잘 나타난다. 약 3%는 65-74세 사이에 치매가 나타났고, 19%는 75-84세 사이에 나타났으며, 거의 50%는 85세 이상에서 치매가 나타났다. 2013년에는 치매로 인한 죽음이 1990년의 80만 명에 비해서 약 170만 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의 수명이 더 길어지면서 전반적으로 치매라는 병이 더욱 흔해졌단다.
치매를 노환으로 여겨 당신의 삶과 무관하게 여기고 있었을까. 사실이 이러함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치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기 꺼려할 것 같다. 자료에서 나타난 것처럼 치매는 주로 노인에게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매 환자가 당신의 부모님이라면 사정이 전혀 다를 것 같다. 당신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웃어 보여도 시큰둥하거나 "누.. 구시더라?"라는 표정을 보이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남의 일이 아니었다. 중풍(中風, palsy)의 합병증 등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보여주신 반응이 주로 그랬다. 또 어머니께선 어눌한 말씀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곤 하셨다. 따라서 어머니 병시중에 온 가족이 매달렸었다. 어머니를 공기 좋은 곳으로 모셔놓고 대략 수년간 형제들이 교대로 보살폈던 것이다. 한의를 하신 아버지께서도 당연히 합세하셨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목숨을 연명하신 데는 아버지의 힘이 컸지만, 뒤치다꺼리는 형제들과 며느리들의 몫이었다.
사정이 대략 이러했으므로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그중에서 객지에 나가 있던 나는 어머니의 여생에 이바지를 한 게 없어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을 낳아주신 어머니를 중병에 걸렸다고 고려장 하듯 버려두고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면, 그건 차마 인간이 할 짓이 못되었다. 돌이켜 보나 마나 자식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하여 돌봐야 할 게 아닌가. 참 야속한 세상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더 큰 문제는 치매에 걸리게 되면 치료하는 방법이 없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인이나 징후 및 증상 등에 대해서는 나열해 놓고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 희한한 병이다. 그 대신 치매를 앓는 환자들과 환자의 보호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나 노인성 치매 징후(일독을 권한다)를 조기에 포착하여 대처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치매 징후는 발견하게 될지라도 치료하는 방법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브런치를 길게 끼적거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포스트에 등장한 사진들은 대략 15년 전 남미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 쟌끼우에 호수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뿌에르또 옥타이까지 이동하는 동안, 머리에 눈을 하얗게 인 오소르노 화산이 늘 우리를 따라다녔다. 엄청난 규모의 화산이 마치 달 덩어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던 것. 남반구의 봄은 아직 호수의 수초를 연녹색으로 바꿔놓지 못했다.
그 대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 어귀에서는 하얀 배꽃을 내놓고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15년의 세월이 더 흘렀건만 당시에 찍어두었던 사진 몇 장이 여전히 그때를 기억나게 만드는 것. 사진 속.. 뿌에르또 몬뜨에서 버스를 타고 뿌에르또 옥타이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차창 너머로 비친 풍경들은 엊그제 만났던 풍경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기록을 덮어두었을 때는 생각 조차 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컴을 열자마자 불쑥 그때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
"여보, 기억나? 그때 우리 거기서 뭘 했지..?"
"참 아름다운 곳이고.. 너무 힘들었었지.. 그런데 왜 다시 또 가고 싶은 거지..?!"
그리고 아내는 입버릇처럼 "우리에게 서로 잘 어울리는 게 있다면 그건 싸돌아 다니는 거야"라고 내게 말하곤 했다. 싸돌아 다닌다는 건 여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그 싸돌아다님은 세월에 비례해 점점 더 빈도가 낮아지거나 짧아지고 있는 것. 세상살이는 열정만으로 가능한 게 아닌 만큼 차분히 삶을 되돌아볼 때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 한편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지도 모를 일을 찾아 대비하는 것. 누군가 "여보, 기억나? 그때 우리 거기서 뭘 했지..?"라고 말했을 때, 상대편에서 "그때가 언제 적인데 생각이 나긴 해..?"라고 반문한다면, 언제인가 두 사람의 대화가 이렇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치매질환을 예방할 나름의 방법을 찾아 시행하고 있는 것. 간단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두뇌가 할 일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쉬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아내는 이탈리아어 단어 공부를 하다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탈리아어로 목적지를 찾고 싶을 때는 어떻게 말하지..?"
위에서 살펴본바 치매를 앓는 사람 다수는 연로하신 분들이므로, 노인성 치매 징후 등을 통해 그분들의 생각을 읽어보는 것. 보통 사람들의 경우의 수를 접목해 보면 한 갑자(60년)를 사는 동안 세상에 재미있는 일 혹은 흥미로운 일이 거의 없어진다. 예전에는 심쿵 놀라던 일도 소 닭 보듯 시큰둥해지는가 하면, 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노력도 급감한다. 우리 인체의 메커니즘이 삶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며 인체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거나 퇴보하게 내버려 두는 것. 당신 스스로를 방관하는 데 인체의 세포인들 주인이 우울하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덩달아 혹은 더 빨리 삶을 포기해 버리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따라서 아내가 화들짝 놀랄 정도의 반응을 보인 물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뇌세포가 할 일을 찾지 못해 꾸벅꾸벅 졸고 있을 즈음 찬물을 확 끼얹은 형국이랄까. 여행을 통해, 참한 여행지를 통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지를 가슴(기억)에 담는 한편,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잘 기록해 두면 장차 다가올 수도 있을 경우의 수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그나 저나 다시 봐도 저 때가 그립네..!
Puerto Octay Lago Llanquihue
Los Lagos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