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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9. 2019

서랍 속에서 잠자던 녀석을 깨우다

-북부 파타고니아 따구아 따구아 호수의 옛 말은 이랬을까

이름도 재밌는 따구아 따구아 호수 가는 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오르노삐렌의 투어가 끝나가는 무렵 민박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호수 이름은 라고 따구아 따구아(Lago Tagua Tagua)였다. 이 호수는 북부 파타고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꽤 유명했는지, 본격적인 파타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에 꼭 한번 둘러보라며 일러주었다. 


우리는 지도를 펴 놓고 호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곧장 리오 뿌엘로(Escuela Rural Rio Puelo)로 향했다. 호수와 가까운 마을이었다. 그리고 호수 이름이 왜 따구아 따구아로 불렸는지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이 호수의 이름이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 잘 몰랐다. 그 대신 오래전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한 스페인인들이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이었던 마푸체(Mapuche)인 등 인디오들이 대량 살육 당하면서 본래의 이름만 남았던 것일까



북부 파타고니아에는 마푸체어(마푸둥군어_Mapudungun 혹은 체둥군_Chedungun)를 사용하는 원주민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 수는 대략 2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마푸체인들은 안데스를 중심으로 칠레 쪽에 20만 명 정도가 흩어져 살고 있었고, 아르헨티나 쪽에 4~5만 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또 당시에는 호수 이름이 궁금했지만 한동안 잊고 살았다. 살았었다.


*그룹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져요.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때 묻은 창밖으로 촬영된 이미지로 화질은 별롭니다.


그리고 이틀 전, 주말을 틈타 서랍 속에서 잠자던 기록을 다시 들추어 보며 따구아 따구아의 어원 등에 대해 살펴봤다. 하지만 나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 대신 따구아(Tagua)는 마푸체어 따와(Tawa)에서 비롯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낙원이라는 표현이 곳곳에 묻어났다. 또 가마우지와 비슷한 모습의 풀리카(Fulica) 속 새를 가리켜 따구아 따구아로 불렀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생산되는 어떤 열매 이름도 따구아(La tagua)였다. 도대체 이따구(?) 따구아는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2016년 9월 2일 자 칠레의 한인신문에 기고된 글(아래 첨부)을 통해 따구아의 어원을 유추해 보기로 했다. 





칠레의 토착문화 마푸체

칠레 남쪽에 아직도 남아있는 오래된 이 문화의 마푸체인들은 고난의 기간을 거치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려움 속에 처해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유와 독립을 누리고 있다. ‘마푸체’라는 이름은 ‘땅의 사람’을 의미한다.


역사  

마푸체인들은 끊임없는 외세의 도전으로부터 독립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인들이 처음 지금의 칠레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칠레 남부의 비옥한 골짜기에서 주로 사냥과 채집을 하며 작은 부족단위로 어렵지 않게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그들이 부족 단위 사회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스페인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준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른 문명으로부터 분리된 채 살아감으로써 그들은 이웃한 잉카문명처럼 더 이상 크게 발전할 수 없었다. 
반면, 스페인이 페루에서처럼 문명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을 처리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마푸체가 부족단위로 생존해온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인들이 어떤 마푸체 부족을 토벌하려 할 때, 다른 부족이 숲으로부터 나와 그들의 배후를 공격하곤 했다. 스페인인들과 마푸체인들의 이런 형태의 전투는 약 30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잘 알려진 '아라우꼬 전쟁 (ARAUCO WAR)'이다. 수많은 마푸체 전사들이 수백 년간 이러한 전투 방식으로 스페인의 정복에 대항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스페인은 비오비오 강 남쪽을 점령해 본 적이 없다.  칠레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새로 온 많은 정착민들이 마푸체의 땅으로 넘어 들어갔다. 새로운 칠레 정부는 한편으로는 군사적으로 압박을 통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적 타협을 통해 마푸체가 이 땅에서 칠레 정부와 함께 살아갈 것과 그들의 땅을 공유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서명토록 이끌어냈다.  현재 칠레 인구의 약 4% 정도를 구성하는 마푸체인들은 대부분 다른 칠레인과 섞이지 않고 칠레의 남부, 떼무꼬 근처 그리고 일부는 아르헨티나 산맥 근처에 살고 있다. 칠레인들은 스페인 정복자들과 용감히 싸운 마푸체 전사에 대한 역사에는 자부심을 갖지만, 지금도 두 문명 사이에서는 긴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마푸체인들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대도시로 이주하며 칠레의 문화에 동조되어 가고 있다.




마푸체 언어  

마푸체인들은 쓰는 고유어는 마뿐둔구(Mapundungu)라 한다. 스페인이 들어왔을 때 마뿐둔구(Mapundungu)어는 기록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라틴식 언어 기록방식을 차용해 기록되기도 했지만, 마푸체 발음을 그대로 라틴식 알파벳 방식으로 기록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약 2만 명의 마푸체인은 오직 그들의 고유언어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마푸체인들은 마푸체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제 마푸체가 아닌 칠레인들이 마푸체어를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마푸체어(Mapundungu)의 자취는 지명에 남아있어 현재 많은 도시와 지역이 마푸체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푸체어(Mapundungu)는 주변의 케추아어(Quechua: 과거 중앙 안데스 원주민 언어)와는 달리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주변의 다른 언어와 유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마푸체어는 두 가지 주요한 방언으로 이뤄지고 있다.



마푸체 전설  

단편적으로 내려오는 전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꼴로 꼴로 (COLO COLO) 축구팀 이름은 마푸체 전설의 동물에서 따온 것인데, 그 동물은 외형상 뱀, 수탉, 쥐 등을 닮은 모습에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을 운다고 한다.  갑자기 모습을 바꾸어 어떤 동물로든 변신하는 페우첸(Peuchen)이라는 괴물은 많은 마푸체인들을 두렵게 한다. 그 괴물은 인간이나 동물 등 자신의 먹잇감을 꼼짝 못 하게 해 피를 빤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처럼 마푸체에도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래전 두 마리 거대한 뱀이 있었는 데 한 마리는 물의 수호자(Kai Kai)였고 다른 한 마리는 땅의 수호자(Tren Tren)이었다. 까이 까이가 적인 뜨렌 뜨렌의 땅을 침범하려 하자 뜨랜 뜨랜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산으로 데려갔다 다. 그 뒤 물이 빠지고 사람들은 다시 골짜기로 돌아가 땅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  

오늘날 마푸체인들은 그들의 땅을 계속해서 소유하기 위해 칠레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땅을 잃어버린 후 빈곤한 삶으로 추락해 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외부세계의 거대한 영향으로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는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있다. 





따구아 따구아 호수로 가는 길은 비포장길이었고 가끔씩 빗방울이 흩날리곤 했다.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었고 우람한 바위산들이 계곡을 형성하고 있었다. 미리 봐 둔 지도 속의 호수는 리오 뿌엘로가 품고 있었는데 마치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듯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풍광은 접해보지 못했으며 검색을 통해 확인한 풍경은 보통의 아름다운 호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따구아 따구아라는 이름은 한 번 들은 후 잊을 수가 없었다.



인용한 기고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전에 살았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남긴 무수한 지명을 만나게 된다. 뿌엘로로 이동하기 전에 머물렀던 오르노삐렌 우알라우에(hornopirén hualaihué)나 앞으로 등장할 꼬자이께(Coyhaique) 등 빠따고니아의 수많은 지명들 대부분이 마푸체인 등 이 땅에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인디오들이 남긴 것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 남긴 지명들은 언제부터 불렸던 것일까. 링크된 최근의 자료 등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아시아인들이 베링해로 유입됐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푸체인들이 사용한 언어 속에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c languages)의 흔적이 남아있었을까. 나무위키에 등장한 마푸체어 등을 통해 따구아 따구아를 (억지춘향식으로) 한 방에 정리해 본다.



마푸체어 예시

Marimari: 안녕하세요(만날 때).
Pewkayael: 다시 봐요(헤어질 때).
Inche pingen Gildong Hong: 내 이름은 홍길동이에요.
Iney pingeymi am?: 네 이름은 뭐야?
Chem pingekey ~ mapudungun mew?: 마푸체 말로 ~을 뭐라 해?
Tunten fali tüfachi ~?: 이 ~ 얼마 해요?(물건 살 때).
Chaltu may: 고마워요.
Feley: 그래요.
Pilan: 아니요.
May: 네.
Küpan Korea mew: 나 한국에서 왔어요.
Eluen ~: ~ 나한테 줘요. 
Kümey: 좋아요.
Weday; 나빠요.
Kimlan: 몰라요.
Adumfimi?: 이해했어요?
Adumfin: 이해했어요.
Adumlafin: 이해 못 했어요. 

그리고 링크된 본문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써 두었다.



"마푸체어로 도끼는 토끼(Toki)로 우리말과 비슷하게 부른다."





리오 뿌엘로 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마침내 우리를 따구아 따구아 호수 앞에 내려놓았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덮여있었고 엄청난 규모의 깎아지른 바위산은 안개를 연신 피워 올리고 있었다. 또 족히 100m는 더 넘어 보이는 폭포들이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풍경에 압도당하며 호수 맞은편으로 데리고 갈 훼리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호수면은 간간히 구름이 걷히면서 쏟아지는 볕 때문에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내놓았다. 낙원을 방불케 한 것. 따구아 따구아는 웅장한 계곡 가운데 갇혀 환상의 세계를 비추는 하나의 거대한 면경을 연상케 했다. 따라서 다시금 곰 되새겨 본 이 호수의 이름 혹은 마푸체어의 따구아 따구아의 정체가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래! 바로 그거였어..!!)



"아, (볕이) 따가와 따가와..(너무)따구아 따구아..!!"



"Ah.. Tawa Tawa.. Tagua Tagua..!!"



북부 파타고니아의 따구아 따구아 호수의 이름은 이렇게 유래했을까..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ㅋ 나는 서랍 속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기록들을 들추어 보며, 지금은 잊힌 옛 마푸체인들의 표정을 내 마음 가는대로 떠올려 봤다.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화질은 물론 여행사진으로도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들여다본 풍경 속에서 당시의 느낌이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닌가.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 같다. 기록을 남기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거.. 마푸체인들이 남긴 재밌는 지명도 그런 건 아닐까..!



La strada per Lago Tagua Tagua
Nord Patagonia Los Lagos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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