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먹고 싶은 해산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작은 배 두 척과 포구 가까이 경운기 두 대가 서 있는 풍경 뒤로 개펄이 광활하게 펼쳐진 곳은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소재 대만항 어귀의 모습이다. 한국에 있을 때 지인들과 출사를 떠나 만난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는 곳.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속초 주문진 울진 포항 부산 마산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강화 등등 해산물 요리를 떠올릴 때 쉽게 떠오르는 장소가 아니었다.
입춘과 정월대보름이 지난 어느 날 1박 2일로(2월 19일, 20일) 다녀온 이곳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해산물을 앞에 놓고 감탄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숙소 '바다마을 이야기' 너머 해안에서 사리 때의 보기 드문 바닷가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귀한 장면을 두세 편에 나누어 연재한다. 첫 편의 제목은 이탈리아 요리가 넘보지 못하는 곳이라 명명했다.
이탈리아 요리가 넘보지 못하는 곳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로 나는 늘 우리나라의 해산물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현대 요리를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는 게 해산물 요리였다. 이탈리아 현대 요리는 보다 간결하여 전통적인 요리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제철에 나는 음식으로 식재료 본명의 맛을 잃지 않고 접시에 아름답게 담아내는 것.
이 같은 시대적 어젠다가 한국의 해산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게 머릿속에 콕 틀어박혀있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시사철 날로 먹어도 좋을.. 아니 날로 먹어야 더 맛과 향이 짙은 우리 해산물을 접시에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손질만 거치면 세계 최고의 요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나라별 최고의 요리가 존재하지만 실상은 무엇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 일행이 만대항의 어느 횟집에 짐을 풀었을 때 우리 앞에 등장한 해산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4인분 기준에 8만 원만 지불하면(시세차가 있을 것) 시쳇말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양은 물론 다양한 바다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해산물이 덤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풍경을 보는 즉시 상 가득한 음식의 이름을 즉각 알아차린다. 이건 무엇이며 저건 무엇인데 너무 싱싱하네.. 요건 웰케 쫄깃거리느냐는 등등 상 앞에 앉는 즉시 감탄사가 바다향을 입고 줄줄줄 새어 나온다. 여기서 잠깐 우리 돈 8만 원을 유로로 환산해 보자.. 흠 대략 61.5유로군! 이걸 다시 4인분으로 나누면 대략 15.4유로가 된다. 1인당 가격이 그러하다는 것. 1인당 2만 원이면 배 터지게 너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 꼭꼭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음식 혹은 요리를 피렌체의 유명 리스또란떼서 먹으려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가격이다. 그나마 선도는 우리나라 변두리의 어느 횟집에서 보다 뒤떨어진다고 장담한다. 물론 요리사의 손을 거친 요리들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런 반면에 실속을 따지자면 우리나라 대표선수 해산물에 턱없이 부족한 것. 특히 내륙에 위치한 도시에서 이 같은 해산물을 맛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이유 등으로 우리가 피렌체서 살 때 해산물을 거의 쳐다보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작용한 것이다. 해산물이 젓담아놓은 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이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은 최고급을 곁에 두고 딴 데를 살피는 것이다. 딴 나라의 요리 출처불명의 양념이 범벅된 음식을 찾아 '맛 기행'을 떠나는 것.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이 같은 풍속도는 나로부터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리 대가 괄띠에로 마르께지 선생께서는 어느 날 특강 시간에 당신의 요리에 대한 영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자세히 일러주었다. 3년 전 유명을 달리하신 선생께서는 어디를 가나 늘 잡기장 혹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셨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풍물을 곧바로 접시에 올리곤 하셨다.
예컨대 경복궁에 들렀다면 접시에 올리는 요리는 경복궁의 향취를 풍기는 것이다. 요리가 곧 예술로 거듭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말을 아껴둔 게 있다. 나는 그분께 "주로 어느 나라를 여행하시느냐"라고 묻게 됐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하시면서 "나는 일본을 자주 다녀온다. 일본 요리에서 영감을 얻는다"라고 하셨다. 그 즉시 자존심이 팍 구겨진 건 두 말할 것도 없디.
나는 70년대에 일본을 다녀온 이후로 기껏 배운 일본어까지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내가 존경하는 분은 친일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 그가 좋아한 일본 요리는 "간결해서 좋다"라고 추가로 말씀하셨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 현대 요리의 생명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인들과 함께 방문한 만대항의 어느 횟집에서 나온 해산물은 선생의 요리 철학이 가미되는 즉시 고급진 요리로 탈바꿈하게 될 게 틀림없다. 상 위에 올린 접시를 바꾸고 주요리의 맛을 해치지 않는 해산물을 차례로 제공하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의 요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넋 나간 정치인은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며 지구별에 대한민국의 쪽만 팔고 다닌 적이 있다. 진심으로 우리나라 음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면 이탈리아 현대 요리를 빛내고 있는 최고의 요리사 몇 분을 초대해 우리나라 해산물을 맛 보이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이탈리아에도 날로 먹는 해산물이 수두룩 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요리기 넘보지 못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비로 우리나라에 지천에 널린 해산물이다. 생김새는 3면이 바다를 지닌 반도 국가지만 바닷속은 달라도 너무 다른 곳. 그곳에서 연중 생산되는 해산물은 식도락가의 입맛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요즘 그런 해산물이 너무 먹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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