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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4. 2020

생새우 범벅 파스타의 얄미운 반란

생새우와 살사 디 뽀모도로로 만든 페뚜치네

나는 언제쯤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누군가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한 여성이 큼직한 카메라를 들고 퍼질러 앉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9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개최된 2020 폭스바겐 하프 마라톤 대회를 공식 취재하는 카메라맨의 모습이다. 그녀는 내가 곁에 다가와 있는 것도 모른 채 셔터를 속사로 날리고 있었다. 


이날 나 역시 행사를 취재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이런 모습은 단박에 눈길을 끌었다. 숱하게 날린 셔터음 속에서 고른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을 것이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혹은 스폰서에게 전달될 사진은 대회를 더욱 빛내는 마무리용으로 사용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이날 축제의 기사의 표지에 싣는 한편 글 제목을 꼴찌에게 박수를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관련 소식을 나의 페이스북에 동시에 실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난 다음 재밌는 일이 생겼다. 사진의 주인공이 어떻게 알았는지 페북에 올려둔 사진을 찾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브런치 글을 공유해 간 것이다. 비록 한글로 쓰인 텍스트지만 많은 자료사진과 영상까지 포함된 포스트는 얼마든지 번역본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직후 그녀의 페북에 행사 참가자들이 쇄도하면서 '좋아요(Mi Piace)'가 마구 늘어났다. 동시에 공유 횟수가 점점 늘어가면서 글을 쓰는 현재 SNS 공유 수가 170까지 늘어난 것이다. 재미 삼아 취재했던 기록들이 이웃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탈리아 친구들은 원본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 즉시 수락하고 메일로 보냈다. 또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전 시내에 있는 은행에 볼 일을 보고 나서 가끔씩 들르는 바를레타 재래시자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를 가로질러 시장으로 가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한 여성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는 낮선 여성이었다.


나: 무슨 일이세요..

어떤 여성: 저 미안하지만.. 혹시 마라톤 취재하신 분 아니세효..?

나: 그런 데요. 무슨 일 때문이신지..?!

어떤 여성: 페이스북에서 취재 내용을 봤답니다. 혹시 페북의 이름을 알 수 있나요..?

나: (기분 좋아하며..^^) 당근이죠! 잠시만요..

어떤 여성:..(씩 웃는다)

나: (뒤적뒤적..휴대폰을 끄집어내고 페북을 열어 보인다.) 여기요..

어떤 여성: (휴대폰에 쓰인 이름을 톡톡톡 당신의 휴대폰에 담는다. 그리고) 고마워요!! ^^

나: 천만에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챠오~^^

어떤 여성: 챠오~~ 안녕히 가세요. ^^


이렇게 잠시 만나 헤어지면서 세상 참 좁아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며 흐뭇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데 열어둔 페북 창에서 빨간불이 켜지면서 메신저에 누군가 메시지를 남겼다. 


조금 전에 헤어졌던 그녀가 감사의 인사말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혹시 2019년 마라톤 기록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곳에 온 지 6개월밖에 안 됐다"라고 말하며 "다음에 또 보자"며 글을 맺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몰리떼르니(Anna moliterni).. 



잠시 메신저 창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몸 가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나라 이탈리아에서 더군다나 이곳 바를레타는 동양인이 드물고 한국인은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자칫 나의 행실이 호도되거나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망신살이 뻗칠게 분명했다. 


그런 한편, 이곳에 살면서 내가 좋은 일을 하게 된다면 정반대의 일이 생길 것 같은 것이다. 파스타 요리를 준비하다가 이렇듯 행복한 일 때문에 기분이 한층 더 좋아져 파스타보다 자랑질 삼매경에 빠지면서 파스타의 얄미운 반란에 옷을 입힌 것이다.



생새우 범벅 파스타의 얄미운 반란




위 자료사진은 사흘 전 바닷가에서 만난 풍경이다. 거세게 몰아치던 파도가 해초를 뽑아 해변까지 밀어낸 것이다. 아직 싱싱한 이름 모를 해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곁을 지나친 물고기는 물론 새우 등 바다에 사는 친구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드리아해의 어떤 새우들은 해초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독자님들은 잠시 잊고 있었을까.. 며칠 전 바를레타 재래시장에서 생새우를 헐값 내지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구입했다는 소식을 이탈리아에서 부친 색다른 동래파전이라는 글로 발행한 적 있다. 그리고 후속 편을 페투치네 파스타에 실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구입한 새우는 상품이 아니라 중하품에 가까웠다. 그렇지 않다면 어물전 아저씨가 생새우 한 상자를 5유로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 새우를 집으로 가져간 직후 모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물가기 시작한 새우는 머리째 먹을 수 없고 속살을 발라내야 하는 매우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3.5킬로그램에 달하는 생새우의 속살만 발라 요리에 사용할 요량이었다. 따라서 구입한 즉시 집으로 돌아와 동래파전에 부칠 새우 일부만 남긴 채 통째로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상온에서 보다 더 낮은 온도로 잠시 보관하다가 생새우의 속살을 발라낼 준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생새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생살만 발라내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2시간 동안 싱크대 앞에 서서 생새우 3단 분리(머리, 몸통,꼬리)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작업은 리스또란떼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요리의 비용에 이런 노력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생새우를 3단 분리한 생살 무게는 거의 2.5 킬로그램에 육박하거나 조금 더 되어 보였다. 최초 5유로에 구입한 생새우의 몸값이 10배 이상 껑충 뛰게 된 것이다. 눈이 보배..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이 그저 된 게 아니다. 귀차니즘에 편승한 어물전 아저씨의 눈에는 곧 내다 버려야 할 생새우였지만, 어느 요리사의 눈에 띈새우는 황금알을 낳는 새우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흠 얄미워..! ^^)



이날 해체 작업이 끝난 생새우는 찬물에 딱 한 번만 헹구어 500그램만 남기고 팩에 잘 담아 냉동실로 옮겨졌다. 이렇게 보관된 생새우 속살은 두 주 후 아드리아해 저 멀리 동쪽에서 은빛날개를 달고 날아올 아내를 위해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500그램은 페투치네 파스타(PASTA FETTUCCINE)에 투입한 것이다. 살사 디 뽀모도로에 생새우를 듬뿍 넣어 비벼낸 페투치네 파스타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보통의 관련 리체타에 새우 몇 마리가 고작이지만 이건 뭐.. 파스타에 생새우 범벅을 입혔으니 가히 얄미운 반란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당분간.. 저 멀리 수평선 위로 거무스름하게 비친 이탈리아 장화의 뒤꿈치를 바라보면, 이 바다에 살던 새우들이 무시로 아른거릴 것만 같다. 바닷바람에 실려온 해초의 향기와 생새우 속살의 달짝지근한 맛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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