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바를레타 하프 마라톤 풀타임 취재
내게 감동을 준 꼴찌의 축제..!!
오늘 오전(9일 일요일 현지시각), 내가 살고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2020 하프 마라톤 대회(barletta half marathon 2020)'가 열렸다. 수 천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이 행사는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행사장은 집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바를레타 성(Il Castello di Barletta) 앞에 마련됐고, 이날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삐아싸 까스뗄로(Piazza Castello)에 마련된 출발선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자 마자 일제히 코스를 향해 내달렸다.
행사장이 집 앞에 있었으므로 이틀 전부터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대회본부를 찾아가 행사 전반에 대해 물어봤다. 대회 관계자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고 내일(오늘)아침 8시 30분경이면 행사가 시작될 것이라 일러주었다. 그는 나를 향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매우 흡족해 했다. 나는 한국의 서울에서 왔고 이 동네에 살고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사를 취재해 나의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올려 이탈리아 친구는 물론 세계 도처에 살고있는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어느 미디어에서 취재를 나온 것 같은 조금은 과장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나도 엄연히 수 많은 독자들이 지켜보는 1인 미디어 아닌가.
내가 이들을 찾아간 이유는 분명하다. 어느 행사장이든 행사가 시작되면 취재를 위한 기자들에게 비표(출입증)가 필요하지만 이곳에 둥지를 튼지 6개월 밖에 안 된 내게 그런 혜택이 주어질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사전에 눈도장을 찍어놓고 행사가 시작되면 포토라인을 넘나들 계획이었던 것이다. 계획은 주효했다.
아침일찍 꽃단장(?)을 마치고 행사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행사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선수들은 긴장한 나머지 행사장 주변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출발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뛰어다녔다. 날씨는 쾌청했다.
시내 대부분은 이미 대회 코스(우측 자료 사진) 때문에 대부분 폐쇄된 상태였고, 곳곳에 경찰과 군인 및 대회 운영요원들이 배치되어있었다.
또 바를레타 성 입구 공원(Ingresso Principale, Giardini del Castello di Barletta)에는 피날레를 장식한 선수들이 마실 음료와 음식 등이 천막안에 가득히 마련되어 있었다.
이날 행사에 투입된 스텝들은 자원봉사자로 주로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탭들은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한지 모른다. 그들은 봉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의 주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기념촬영을 해 달라며 누가 시키기도 전에 포즈부터 먼저 잡았다. 참 귀엽고 생기발랄한 여성들..
출발 총성이 울린지 얼마 되지않아 선수들은 바를레타 성을 한바퀴 돌아 다시 출발선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회장을 한바퀴 돌면 그 다음부터 시내를 한바퀴 돌아 반쪽짜리 마라톤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 사이 선두 그룹과 꼴찌그룹이 형성됐다. 선두와 꼴찌의 간격차는 매우 컷다. 나는 이날 대회를 지켜보며 크게 감동하고 있었다.
감동의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코스를 끝마친 선수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마라톤 풀코스도 아니고 반쪽짜리 코스인데 주최측에서 주는 선물이라곤 쇠로 만든 메달이 전부였다. 상금도 상장도 그 어떤 명예도 주어지지 않는 대회에 최선을 다해 기량을 뽐내는 것이다. 결승점에 도착한 선수들은 기진맥진해 있었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누군가 살짝 건들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 오는 것이다. 마라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어떤 유명한 선수들 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삶이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그저 주어진 목적지까지 앞만 보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진정한 마라톤의 의미가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들의 목에 걸어주는 시상식 장면이다. 시상식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고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들이 공원에 마련된 쉼터로 이동하는 가운데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이 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의식(?)이 전부였다. 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아주머니들은 메달을 걸어주면서 "Complimenti!!_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들은 진심으로 가슴에서 우러난 말로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월계수관을 씌워주는 진정한 아테나의 여신의 모습이 눈에 띈 것이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감개무량했다. 나는 이미 포토라인을 마음대로 오가며 사진과 영상을 담고 있었다. (흠..비표도 없이..ㅋ)
그리고 이날 이 축제의 진정한 주인공을 만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이미 이 축제에 깊숙히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피곤한 가운데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행복해졌는데 선두그룹이 일찌감치 결승점을 통과한 가운데 꼴찌그룹들이 바를레타 성 아래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 장면은 이랬다.
위로부터 순서대로 편집된 것으로, 선두그룹은 이미 결승점을 통과한 후 메달을 수여받고 쉼터에서 음료수와 과일 등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코스로 이어지는 성 곁에는 꼴찌그룹들이 비틀거리며 결승점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당신이 선택한 길을 젓먹던 힘을 다해 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장면이 조듬 후에 목격됐다.
이 대회의 꼴찌 주자가 결승점을 향해 절둑거리며 오고있는 것이다.(#5 영상 참조) 그의 걸음은 마라톤 주자가 아니라 경보 선수처럼 한 발은 늘 땅에 닿은채로 빠르게 걷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 대회가 막을 내리려면 마지막 주자가 결승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대회의 꽃이자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그로부터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야 말로 스포츠의 백미가 아닌가.. 우리네 삶을 쏙 빼닮은 한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못할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주자가 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안 그러면 왜 눈시울이 뜨거워졌겠는가.. 1등만 기억하는 외눈박이 세상에서 꼴찌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다니..!!
나는 꼴찌의 역주를 보는 것으로 대회장을 떠났다. 비록 짧지만 힘든 과정을 통과한 선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꼴찌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2020 바를레타 하프 마라톤은 꼴찌를 기억하는 위대한 축제로 기록됐다.
축제의 이모저모를 담은 동영상
2020 VOLKSWAGEN BARLETTA HALF MARATHON
il 09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