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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7. 2020

봄 바다 보신 적 있으세요

-갯가에서 허우적대다

우리기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은 것들..!


입춘과 정월대보름이 지난 어느 날 1박 2일로(2월 19일, 20일) 다녀온 이곳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해산물을 앞에 놓고 감탄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숙소 '바다마을 이야기' 너머 해안에서 사리 때의 보기 드문 바닷가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귀한 장면을 두세 편에 나누어 연재한다. 첫 편의 제목은 '이탈리아 요리가 넘보지 못하는 곳'이라 명명했다.

앞서 발행한 글 이탈리아 요리가 넘보지 못하는 곳 편 서두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이다. 


일행은 횟집에서 우리나라 대표 해산물을 배불리 먹은 후 숙소에 짐을 푼 다음날 아침, 카메라만 챙겨 숙소 뒤편 작은 언덕의 솔밭길을 따라 걸었다. 솔밭 오솔길은 지난가을의 억새들이 마른 잎을 내놓고 바람에 하늘거리며 볕을 쬐고 있었다. 입춘이 지났지만 봄이 오시려면 아직은 멀어 보이는 바닷가 언덕.. 




숙소를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저만치 바다가 솔숲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곳에는 사리 때를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뭔가를 채집하고 있었다. 갯가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기암괴석이 일행을 반겼다. 계수할 수 없는 태곳적 나이가 켜켜이 묻은 암석 사이로 바다이야기가 빼곡히 묻은 듯하다.




사리 때가 찾아들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은 이곳까지 오락가락한 흔적이 촉촉이 묻어나 있었다. 영겁의 세월 동안 반복된 사리와 조금의 물때가 애무하듯 어루만져 준 곳. 대한민국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 근처 바다마을의 사리 풍경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봄바다가 어떤 풍경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대신 행운이 찾아들면 고동은 물론 멍게나 털북숭이 성게나 바다의 산삼이라 불리는 해삼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카메라를 지참하긴 했어도 잿밥에 눈이 멀어있는 것이다. 사리 때만 되면 바다가 내어주는 무한한 선물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바닷물이 점점 더 멀어지며 바다의 속살을 드러내는 동안 조금 전에 품었던 욕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뷰파인더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던 풍경들이 카메라를 유혹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늘 이런 모양이지.. 정작 계획한 일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을 내미는 것. 갯가길 뭍에는 아직 마른풀들이 바람에 서걱이는데 바닷속에는 봄이 일찌감치 와 있었던 것이다.



관련 브런치 글(그 바다에 맛조개가 산다)에서 언급한 내용을 소환하면.. 주지하다시피 바다는 물이 불어서 해안선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또 한 번 물이 들어왔다가 다시 한 반 나간다. 하룻만에 생기는 일이다. 이 같은 일은 대략 여섯 시간 간격으로 벌어진다. 옛사람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들물' 혹은 '물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온다 하여 '밀물'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물이 나간다'거나 '물이 썬다'라고 해서 '날물' 혹은 '썰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밀물과 들물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들었다가, 두 번 물이 나가는 것이다. 물이 최고로 많이 들어왔을 때가 만조라 부르고, 가장 많이 나갔을 때를 간조로 부른다. 이 같은 차이를 '조수 간만의 차'라고 학습한 바 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보다 유독 서해안이 이 간만의 차가 극심하다. 물때는 음력 기준으로 대략 15일 만에 다시 반복되곤 한다. 



만조에서 간조를 거쳐 다시 만조가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시간(정확히 11시간 20분 정도) 주기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즉 조금에서 사리를 거치면서 다시 조금에 이르기까지 걸리는데 15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은 1 물, 2 물, 3 물, 4 물, 5 물, 6 물, 7 물(사리), 8 물, 9 물, 10 물, 11 물, 12 물, 13 물, 14 물, 15 물(조금)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주기를 선조님들께선 한물, 두메, 무릎 사리, 배꼽 사리, 가슴 사리, 턱 사리, 한사리, 목사리, 어깨 사리, 허리 사리, 한 꺾기, 두꺽기, 선조금, 앉은 조금, 한조금으로 불렀다. 참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물 두메로 이어지는 게 바다의 살아있는 변화무쌍한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자주 봐 왔던 그 바다는 같은 주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바닷속은 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어민들이 양식장에서 기르는 미역 등 해산물이 계절에 따라 수확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바닷속에도 봄이 찾아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억만 겁의 세월 동안 바다는 뭍의 돌기들을 간지럽히듯 애무하는 동안 소름 돋듯 오르가슴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은 한물, 두메, 무릎 사리, 배꼽 사리, 가슴 사리, 턱 사리, 한사리, 목사리, 어깨 사리, 허리 사리, 한 꺾기, 두꺽기, 선조금, 앉은 조금, 한조금으로 이어지다가.. 사리와 조금을 반복하며 바닷가를 촉촉이 적시는가 하면, 어떤 때는 거센 숨을 몰아쉬는 질주가 이어지고 있었던 곳이다. 참 신비로운 세상이야. 열길 사람 속 마음보다 더 감추어져 있었던 비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뷰파인더 앞에서 배시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유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던 산골짜기에도.. 봄이 오시면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덩어리가 녹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리곤 했다. 골짜기 녹아내린 얼음기둥 사이로 파릇파릇한 이끼들이 나를 반겨주곤 했었지.. 그곳에 고사리 손을 밀어 넣으면 차디찬 물이 손바닥을 적시며 금세 입술을 적시곤 했지.. 



이빨이 시리도록 찬물이 입안에 닿으면 희한하게도 금세 달콤해졌다. 기특한 것들.. 계곡물은 달콤하기라도 했지, 너희들은 사리 때를 지나면서 짠물 속에서 숨도 못 쉴 것 같이 잠겨있었는데.. 그것도 해녀들의 물질처럼 하루 두 번 겨우 긴 호흡을 내뱉지 않았는가.. 거뭇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골짜기의 숲처럼 모두 다 드러낸 바닷속 골짜기에도 다시마 숲이 빼곡했다. 



어느 날 내게 다가온 봄처녀의 유혹처럼 사리와 조금이 내어준 바다에 덥석 안기는 것이다. 나는 기어코 생기 넘치는 아리따운 봄바다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나의 유년기를 소환한 봄바다의 마력에 허우적이며 그들과 함께 놀아난 것이다. 이런 봄바다.. 아실랑가 모르겠네..! ^^ <계속>



*아내가 너무 좋아하는 솔베이지 노래와 가사를 (공부 삼아) 담았다. 노르웨이 민요 솔베이지의 노래는 그리그가 작곡한 너무 아름다운 곡과 노렛말이다. 노래 배경은 이랬다. 노르웨이의 어느 마을에 가난한 청년 페르귄트와 아름다운 처녀 솔베이지가 살았다. 둘은 사랑하여 결혼했으나 너무 가난했다.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 위해 이웃 나라로 떠났다. 십여년 동안 열심히 일해 많은 돈을 벌어 고향에서 기다리는 솔베이지에게 돌아가다가 해적을 만나 모든 돈을 빼앗기고 목숨만 겨우 건졌다. 그는 빈털터리로 애인에게 돌아갈 수가 없어서 다시 타향에서 떠돌게 된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병이 들고 늙었는데 그는 죽어도 고향에서 가서 죽기로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동안 페르귄트를 기다리면서 백발이 된 솔베이지를 만나 감회에 젖으며 눈물을 흘렀지만 이미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세상을 떠났으며, 솔베이지도 곧 그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났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픈 노래 가사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지나고

한 해 두 해가 지나도

나는 

그의 약속대로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만약 하늘 나라로 떠났다면 

그곳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며 

두 번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 

고백합니다.  



Kanskje vil der gå både Vinter og Vår,
Forse ci sia andare inverno e primavera,
og neste Sommer med, og det hele År,
e la prossima estate con, e tutto l'anno,
men engang vil du komme, det ved jeg vist,
ma anche lo otterrete, quando mi è stato mostrato,
og jeg skal nok vente, for det lovte jeg sidst.
e io probabilmente aspetto il promesso che Visitati.


Gud styrke dig, hvor du i Verden går,
Dio ti rafforzare, in cui il mondo sta andando,
Gud glæde dig, hvis du for hans Fodskammel står.
Dio ti Glæder, se la sua Fodskammel stand.
Her skal jeg vente til du kommer igjen;
Qui Aspetterò fino ad arrivare di nuovo;
og venter du hist oppe, vi træffes der, min Ven!
e aspettare cron al piano di sopra, noi træffes lì, la mia Ven!


HAI VISTO IL MARE DI PRIMAVERA
il 16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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