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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4. 2019

비에 젖어야 아름다운 것들

-아르노 강변에 둥지 튼 아이들

우리는 왜 아름다운 것들과 시선을 마주치게 되는 것일까..?


어제 오후 봄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온통 비에 젖는 사물들. 풍경들. 비가 오시기 전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평소에 못 보던 풍경들이 아니 평소와 달라진 풍경들이 눈에 띄는 것. 어떤 것들은 비를 맞아 측은해 보이거나 풀이 죽는 한편 또 어떤 것들은 비를 맞고 생기발랄해지곤 한다. 이런 현상들은 단지 관찰자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본래 그런 것일까. 


어제 오후, 나는 평소에 봐 두었던 나만의 명소를 찾아 아르노 강으로 향했다. 그곳은 피렌체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숨겨진 명소로 불렀다. 피렌체의 일몰 광경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대체로 관광객들은 피렌체 시내가 훤히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아르노강 서쪽으로 사라지는 일몰을 보러 계단 한 곳에 죽치고 있는 것.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나만의 명소에 서면 그곳에서 만나던 일몰과 약간 차원(?)이 다르다. 언덕 위에서 평지의 아르노강 혹은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와, 평지의 아르노 강가에서 끼에사 디 산 프레디아노 인 까스뗄로(Chiesa di San Frediano in Cestello) 뒤로 사라지는 일몰의 광경은 서로 매우 다르다. 달랐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한 두 곳의 공통점은 일몰 당시 하늘에 구름이 적당량 있어야 한다는 것. 구름이 없거나 너무 빈약하면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날 수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의 경우는 비아 벨 베데레의 언덕과 아르노강 포함 피렌체를 통째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만, 강변에서는 시야가 좁은 대신 매우 스펙터클한 장면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어제 오후 바쁜 걸음으로 달려간 곳이 후자의 경우였으며, 그곳은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다리 일 뽄떼 알라 아라이야(il Ponte Alla Carraia)에서부터 일 뽄떼 아메리고 베스푸치(il Ponte Amerigo Vespucci) 근처까지 길게 이어지는 장소였다. 빗방울이 가끔씩 날리는 그곳에서 두 테마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보고 계시는) 풍경과 일몰 장면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풍경은 아르노 강으로 이동할 때까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풀꽃들이었다. 또 이곳에 이렇듯 예쁜 녀석('아이'라고 부른다)들이 살아가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던 것. 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뽄떼 알라 아라이야와 뽄떼 아메리고 베스푸치 사이에 있는 수중보 곁이었다. 아르노 강 상류에 내린 비로 강물은 불어 수중보를 지날 때 큰 물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비를 맞고 강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비를 맞고 촉촉이 젖은 모습이 측은해 보이는 게 아니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나를 기분 좋게 또 행복하게 만들며 셔터음을 작렬시키는 것. 그래서 혼자 보기 아까워(?) 곁에서 휴대폰으로 아르노 강 풍경을 담던 한 관광객에게 아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것 봐요. 조오기..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맞아요. 아르노 강은 언제 어느 때 봐도 아름다운 곳이지요..!"


누가 말했던가.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고.. 속으로 김이 팍 새고 말았다. 똑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르노 강에 드리워진 저녁노을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중 한눈에 쏙 들어온 풍경 앞에서 시선을 멈추고 있었던 것. 작아 보이지만 큰 차이였을까. 



아내와 파타고니아 투어 삼매경에 빠졌을 때 뿌에르또 나탈레스(Puerto Natales)에서 만난 버스 창에 "식물의 영혼"이라고 써 둔 글씨를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영혼이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당치도 않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전 파타고니아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식물들과 교감을 통해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거나 깃든 것을 알아챘던 것. 현대인들에게 이런 주장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식물의 정신세계를 실은 한 칼럼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식물의 신비 생활 등에 나타난 식물들을 식물도 우리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기뻐하고 또 슬퍼한다는 것. 예쁘다는 칭찬의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며 미워한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린다는 실험 결과를 싣고 있다. 우리가 산에 가거나 나무나 꽃과 함께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차분해지고 아늑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아르노 강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창밖의 한 풍경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놀라움이라기보다 뜻밖의 느낌 들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곳에는 풀꽃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쁜 꽃들을 내놓고 내가 나타나기만 기다린 것. 이런 현상에 대해 '착각' 혹은 '너만의 생각' 등으로 치부한다면 식물에게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혹은 과학자들은 그야말로 형편없어 보일 게 아닌가. 


아이들이 비에 젖어 더욱더 선명한 모습으로 예쁘게 보인 것처럼, 우리 속에 내재된 영혼을 증명해 보이려면 나 아닌 다른 사물 혹은 타인에 대해 보다 더 깊이 느낄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위대한 작품 하나를 얻으려면 어딘가에 흠뻑 빠지거나 미쳐야 하듯.. 아이들이 도란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Pioggia e i Fiori Fiume Arno
03 Maggio 2019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FIRENZE_비에 젖어야 아름다운 것들 Pioggia e i Fiori Fiume A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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