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가문에 대한 소고
우리에게 화장실(化粧室)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틀 전,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피렌체의 한 박물관(Museo di casa Martelli_'까사 마르텔리'라 부른다)을 다녀왔다. 그곳은 두오모로 가는 골목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오며 가며 출입구 쪽을 자주 쳐다보게 된 곳이다. 출입구 왼쪽 위에 '박물관'이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빨랐쪼(Palazzo_궁전 혹은 저택을 칭한다)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가끔씩 여러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출입하는 광경을 보게 되면서, 언제인가 한 번은 들러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점점 더 증폭되었던 것. 그리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휴일 오전 10시 30분경, 까사 마르텔리 입구의 안내소에 들러 언제쯤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더니 오전 11시부터 관람이 시작된단다. 그래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두오모 광장을 들렀다가 인파에 치여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시는 데도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출입구에 도착하니 저만치 대문 뒤에서 한 여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까사 마르텔리는 입장하는 관람객을 그냥 다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다. 대략 열댓 명 혹은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이게 되면 그룸을 지어 학예사가 아내를 하는 것. 우리를 안내하는 분은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까사 마르텔리는 규모는 크지는 않았지만 가문이 소장한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일일이 학예사의 입으로 설명되곤 했다. 그 과정 일부를 영상(유튜브 포함)에 담았다.
FIRENZE_마르코 마르텔리 가문의 박물관 LA MEMORIA DEL MUSEO DI CASA MARTELLI
(영상을 대략 살펴보셨는지요..)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까사 마르텔리의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주로 미술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벽면에 가득한 미술품들은 물론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이곳에 살았던 주인 혹은 가문의 사람들이 예술을 중시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살롱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순간부터 집안 전체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지거나 가꾸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까사 마르텔리 박물관의 이름은 빨랐쪼 마르텔리(Palazzo Martelli)로, 피렌체 공화국의 귀족 마르코 마르텔리(Marco di Francesco Martelli) 가문의 소유였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마르코 마르텔리는 피렌체 출신의 사업가로 르네상스 시대 후기를 살았던 사람(1592-1678)이었고, 메디치가의 페르디난도 2세(Ferdinando II de' Medici)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귀족들과 친분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위까지 동시에 누렸던 사람이자 가문이었던 것.
세월은 속이지 못했다. 영상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우리 일행은 학예사의 안내에 따라 프리모 삐아노(Primo piano_이탈리아에서는 1층을 지층(piano terra)으로 부르고, 2층을 1층이라 부른다. 참고 하자)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지층으로 내려오는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 일행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까사 마르텔리의 화장실로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였다. 예전에는 정말 호화로웠을 것 같았다.
살롱과 이어진 화장실은 넓은 면적에 벽면에는 프레스코 화법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또 한쪽 벽면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욕조가 갖추어져 있었는데 나의 시선을 자극한 건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였다. 자료 사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세월을 이기지 못한 건축물 한쪽은 낡아 허물어졌지만(그대로 아름다웠다. 마치 연출된 것처럼), 벽화는 비록 퇴색되긴 했어도 생생하게 잘 보존되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풍경이었다.
(보시는 것처럼)화장실의 벽면 가득 그려둔 벽화는 피렌체를 감싸고 도는 아르노 강의 풍경이 원근법에 따라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잘 그려져 있었는데, 누군가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강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호젓한 강가에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거나 멱을 감고있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실의 용도는 다양하다. 사전적 의미의 화장실(化粧室)은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한 편의 시설이다. 우리는 그것을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장소)라 부르기도 하고, 뒷간, 측간(廁間), 변소(便所, 배설물을 처리하는 곳)라고도 부른다. 또 세면을 하거나 간단히 얼굴 화장이나 옷 매무새를 고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곳은 주로 공간이 은밀한 곳이며 밀폐된 곳이다. 그러니까 볼 일(?)은 주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까사 마르텔리의 화장실 벽면 가득 채운 벽화는 한 귀족의 밀폐된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간의 당연한 생리현상인 똥 오줌 가리는 것 조차 귀족 다르고 천민다를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귀족의 꽉 막힌(?) 사고방식과 달리 화장실에 작품을 남긴 한 예술가의 환상은 달랐다. 작가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 근심을 푸는 장소 혹은 은밀한 볼일이 필요한 장소는 세상이 잘 조망되는 열린 곳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화장실은 피렌체 공화국을 호령하던 귀족들 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다. 더 부러울게 없는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 귀족과 천민의 벽이 다 허물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다 뜻하지 않았던 상항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그때 당신은 르네상스 시대의 한 예술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La memoria del MUSEO DI CASA MARTELLI
05 Maggio 2019 FIRENZE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