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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28. 2020

우리가 잘 모르는 요리사의 세계

-말 없는 헌신의 공간

보통 사람들에게 낯설기만 한 요리 혹은 요리사의 세계..!!



모처럼 꿀맛 같은 휴일이 돌아왔다. 평생을 통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휴일이지만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시간들.. 그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숙소에서 가까운 곳 혹은 기차를 타고 꽤 먼 곳으로 이동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곳에는 나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 그 친구들은 보통의 친구들과 달랐다. 미리 만나는 시간은 물론 장소까지 사전에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저만치서 내가 나타나는 순간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Regione Piemonte)의 어느 봄날.. 혼자 하는 봄나들이에 갓 피기 시작한 자목련이 상큼하다 못해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반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 지.. 숙소로 돌아와 잠시 시장기를 때우면 금방 졸음이 엄습하게 된다. 그 순간 커튼을 내린 깜깜한 방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꿀맛의 휴일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등을 보인다. 시간은 낮을 가리는지 어떤 때는 매우 더디게 거의 멈춘 듯하다. 꾸치나(Cucina) 바깥에서는 이렇듯 빨리 지나치는 시간들이.. 글쎄, 좁은 공간의 꾸치나 내에서는 일손을 놓을 때까지 곁에서 뭉기적 거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내 삶을 통해서 매우 중요했던 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을 통해 이탈리아 요리 입문 과정 등에 대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휴식시간에 짬 내어 촬영한 사진을 앞에 두면 꽃가마를 탄 신부의 마음을 닮은 듯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내 앞에 주어진 새로운 기회가 실패로 돌아섰다면..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들이 트라우마로 남을 게 확실했다.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어 자목련의 꽃말에 너무 잘 어울리는 '숭고한 정신'이 핏빛 꽃봉오리와 꽃잎에 진득하게 묻어있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일이든 공짜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공짜를 말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건 공짜라 할 수 없다. 누군가 등을 떠밀었던지.. 사회적 눈치가 작용했던지..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순수한 의지가 작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서는 '자원봉사'의 의미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돕는 순수한 행위를 봉사로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돌봄과 연대의 정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 등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학생들의 성적표에 '봉사활동 시간'을 써넣었을까.. 아무튼 세상 어떤 일에도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않았다. 그 대신 당신이 하는 일에 숭고한 정신이 가미되면 봉사 이상의 위대함의 수식이 뒤따르는 것. 그곳이 우리가 잘 모르는 요리 세계 혹은 요리사의 세계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기 전에는 그저 직업의 한 종류에 불과했던 요리사의 세계는 꾸치나 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심오한 경지로 다가왔다. 가깝게는 식재료를 다듬는 기술로부터 혹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당신의 몸가짐은 기도에 정진하는 수도승이나 성직자처럼 변하게 되는 것. 


요리사가 정성을 들여 접시에 올려낸 음식은 손님의 육체와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신을 살찌우고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리의 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요리가 손님들의 따볼로(tavolo_탁자)로 제공되는 과정을 잠시 엿보면 이해하게 될까..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구가 절로 생각난다. 한 여름 아스팔트가 진득하게 녹아내리는 불볕 가마솥 더위에도, 꾸치나 내에는 그 흔한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혹시 냉면집이라면 모를까.. 손님에게 제공되는 요리는 따뜻하게 데운 상태로 접시까지 데워서 제공되는 것은 기본이다. 대개 이런 상황이므로 갇힌 공간에서 열린 마음이 없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내가 만난 어떤 요리사들은 제3세계 출신으로 돈벌이에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요리학원에서 몇 달간 수업을 받고 일터에 뛰어든 사람들.. 그래서인지 요리 혹은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불량했다. 그들은 기분에 따라 식재료를 함부로 다루는가 하면, 만들어 내는 음식들은 정성은 간데없고 푸념이 마구 뒤섞여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돈(월급) 때문이었다.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한 달에 100유로만 더 준다면 언제라도 직장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셰프 혹은 특정 리스또란떼 주인은 그들을 1회용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이들에게는 파트의 기본이 되는 일만 시키게 되고 셰프의 요리 철학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일찌감치 박탈 당한채 땀만 삐질거리며 흘리고 있는 것이다.(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직업을 당장 바꾸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다) 당신이 만드는 음식이 손님에게 제공될 때 손님이 흡족해하고, 그 손님들이 다시 당신이 일하는 리스또란떼를 찾는 단골손님이 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대빵(?) 요리사인 셰프(CHEF)는 남다르다. 남달랐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만난 초보 요리사는 물론, 수 셰프(Sous chef)의 경력은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은 꾸치나 내에서 결코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그 더운 여름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요리에 열중하며.. 군대의 서열 등은 비교가 안 되는 조직생활을 즐기는 구도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런 요리사들이 없었다면, 이렇듯 헌신적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탈리아 요리 혹은 세계의 요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나의 페이스북에는 그런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어쩌다 인스타그램이나 페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려두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자, 나처럼 컴 앞에 앉아있을 시간이 거의 없는 진짜배기 요리사들이다. 


그들은 말 없는 헌신의 공간에서 묵묵히 당신의 요리 철학을 다듬어 가고 있는 것. 이런 모습이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 피에몬테 주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때 촬영된 사진을 보자마자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생각났다. <계속>



LA STORIA DELLA CUCINA ITALIANA
il 27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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