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초초 삼매경에 빠져들다
다시 읽어 보는 친구에게 부친 편지..!!
내 친구 뚤리오에게
너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게 됐소.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현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이곳에서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나의 아내는 이번 주말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올 예정이랍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라 꽤 긴 시간 동안 내 조국의 생활 대부분을 정리하고 돌아올 예정이오.
나는 그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며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 차마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거지요. 당시를 회상하니 단박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당신이 베푼 친절 이상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지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어째.. 당신이 베푼 은혜는 한 올도 다치지 않고 사진첩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지..
당신의 아내 마리아와 아들내미 그리고 우리 내외 다섯 명이 나누어 탄 차 속에서 당신은 주로 나를 배려했지요. 먼 나라에서 여행 온 이방인에게 무시로 베풀어준 친절.. 꽤 긴 시간이었지만 전혀 불편한 내색은커녕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일 모르는 바 아니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와 아내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또 그때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요. 아마도.. 그때 두 분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최소한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주검을 목전에 둔 상황과 다름없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내게 큰 희망을 불어준 사건이 당신과 함께한 드라이브였습니다.
당신은 그저 작은 친절을 베푼 것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겐 절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이 없었다면 절망 끝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요.
내 친구 뚤리오.. 당신과 탑승 동행자들은 그 같은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사진 한 장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나는 고통의 몸부림을 쳐야만 했소. 조수석에 앉아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허리는 찢어오는 듯했고, 누군가 골수에 뾰족한 바늘을 쑤셔대는 아픔이 이어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당신과 마리아가 우리에게 베푼 은혜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여행 때문에 견디고 또 견뎠지요.
내 친구 뚤리오.. 그런 당신이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여러 차례 우리를 데리고 최고의 풍광을 선물해 주고 있는 동안 서서히 새로운 삶의 기운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삶을 포기하다니요..!
나는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길 위에서 나 혼자 걷기 연습을 통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지요. 그때마다 몇 발자국도 걷지 못해 길 위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울 힘도 없었지요. 소리를 지를 힘은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죠.
아내는 매일 저녁 습포 마사지를 했으며 병원에 들러 검사를 해 봐도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숙소로 돌아오며 절망의 한숨만 쉬었답니다. 여행 중에 거의 한 달을 침대에 누워 지냈으니 아내는 또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했을까요..
내 친구 뚤리오.. 그때 당신은 우리에게 "잠시 바람이나 쇠자"라고 했지요. 지금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제안한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대서양을 건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꼬자이께로 갈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조수석에 앉히고 싶습니다. 우리가 봤던 천국 같은 풍경 속으로 내가 당신을 안내하고 싶은 거지요. 친구여.. 그때까지 부디 몸 건강하시고 가내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오랜 벗
Yookeun Chang으로부터
나는 위의 편지를 솔직한 마음을 담아 친구가 안내한 잊지 못할 드라이브 편에 썼다. 글이 발행된 후 브런치 이웃 여러분들의 따뜻한 성원이 쇄도했었다. 깊은 감사의 말씀드린다. 그리고 이 포스트는 후속 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계속될 때 나는 실제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한편 만약 내가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보라색 초초(lupines)가 흐드러지게 핀 계곡에 꼭 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되살아난 나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에 따라 묵직한 카메라를 다시 어깨에 걸쳐 메고 리오 꼬자이께(Rio Coyhaique) 계곡으로 향했다. 거의 한 달만의 일이었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숙소에서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칠레의 7번 국도(Carretera Austral) 변에 도착한다. 우리가 묵었던 꼬자이께는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다가 차이텐에서 이 도시에 진입하면서 두 개의 강 사이로 진입한다. 우측은 리오 심프슨(Rio simpson)의 강이 흐르고 좌측은 리오 꼬자이께(Rio Cohaique) 강이 흐르는 것. 리오 심프슨은 수량이 풍부하고 길게 이어진 반면, 리오 꼬자이께는 수량이 적은 작은 강이다.
우리가 차이텐에서 이동하여 이 도시를 처음 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도 두 줄기의 강 때문이었다. 먼 데서 바라보면 두 줄기의 강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듯 절벽 사이에 도시가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친구 뚤리오의 도움으로 도시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다시 올라서자, 저 멀리 리오 꼬자이께 계곡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때 나는.. 나의 형편에 전혀 걸맞지 않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런 기회가 찾아든다면.. 나는 반드시 그 계곡을 찾아갈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이런 풍경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지만, 전혀 듣보잡 여행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기회가 찾아든 것이다.
나는 기적같이 회생하여 어느 순간부터 숲 속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은 리오 꼬자이께 계곡에는 몇 가구가 살고 있지 않았는데, 지천에 널린 초초 때문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천상의 꽃이라 불러야 마땅한 꽃들이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나를 기적적으로 살려낸.. 하늘이 베푼 최고의 향연이랄까..
나는 이때부터 초초 삼매경에 빠져 허우적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내는 그것도 모른 채 숙소에서 이제나 저제나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었다. 한 달 내내 드러눕다시피 한 사람이 잠깐 바람 쇠러 나간 줄 알았더니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므로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 초초 삼매경에서 깨어나 숙소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단단히 삐쳐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내가 만난 신세계를 아내에게 낱낱이 일러바쳤다.
나: 여보.. 기막힌 데를 발견했어. 낼 나랑 함께 가 보자고.. 고고고고고!! (씩 ^^)
아내: 허리는 괜찮아? 얼마나 걱정했다고.. 고고고고고!! (삐침ㅠ)
계곡은 키 큰 수풀이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숲 속은 적당히 어두웠으며 뭇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먼 나라.. 꿈나라.. 꽃피는 나라.. 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는 졸고 자빠진 보랏빛 초초를 쉼 없이 일깨우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했다면.. 기사회생하지 못했다면 나와 전혀 무관한 풍경이 아무도 모르는 풀숲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을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천국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개똥밭을 그리워하는 모순에 빠져 사는 것.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국보다 개똥밭이 더 좋아..!!"
개똥밭으로 가는 길은 좁았다. 한 때 이곳으로 사람들이 휴식처로 삼았는지 모르겠다. 또 원주민 몇 가구가 이 계곡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한 여행자를 반기고 있는 것. 이 시간만큼은 내가 접수한 미지의 세상이자 개똥밭이었다.(물론 개똥은 보이지 않았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리오 꼬자이께는 인적을 거부한 채 단 한 사람의 출입을 허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 그 계곡 속에 천상의 꽃 보랏빛 초초가 신기루처럼 자꾸만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초초의 요정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하늘나라에 청원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지신명이 하는 일은 늘 인간의 계획 밖에 있는 것.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실천은 하늘의 몫이라지 않는가.. 사실이 그러하지 않다면 내가 미쳤거나 누군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렸을 것.. 보라색 꽃이 다 뭐라고..!
오늘 아침 아내와 나는 바닷가로 아침산책을 나갔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아내는 바다가 너무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은 배낭 속에는 사과 몇 쪽과 요구르트 몇 병과 뜨거운 커피가 포트에 담겨 바닷가를 따라다녔다. 종려나무 가로수가 끝날 때쯤에 나타나는 장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게 너무 좋다는 것.
바다는 다시 화장을 고쳤는지 파도를 일구며 우리 내외를 맞이했다. 아내가 제안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갔으면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구 너머에 있는 밭이랑을 따라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그 언덕 위에는 샛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바람 부는대로 발길을 옮겼을 뿐인데.. 우리의 여행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 그곳에서 살아가는 대자연은 생기를 북돋아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를레타 재래시장에 들러 대파와 뻬뻬론치노 양송이 오렌지 시금치 마늘 오이를 사 왔다. 늦은 아점은 한국에서 가져온 잡채와 소갈비로 만든 살사에 넣어 끓이고, 김치.. 된장에 비벼 무친 나물과 쥬끼니 무침으로 상을 차렸다. 아내가 한국에서 공수해 온 반찬과 내가 만든 이탈리아 요리가 꼴라보를 이루며 환상의 밥상을 만들고 있는 것.
그럴 리가 없지만.. 내가 다시 걸을 수 없었다면 이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꿈도 꾸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일찌감치 잊혀 갔을 것이다. 간절한 소망..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꼭 찾아가고 싶었던 계곡에서 아내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고 있는 시각..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낮에 싸돌아 다닌 피곤이 몰려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이번에는 시금치와 쁘로슈또 칠면조 고기 등을 넣은 김밥을 싸고 싶단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아내는 시방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시칠리아에서부터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주(Regione Friuli-Venezia Giulia)까지 그리고 아드리아해 너머 그리스와 터키까지.. 또 신화의 바다 이오니아 해는 물론 지중해의 벼랑 끝에 서서 동유럽의 향기를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 아내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다시 걸을 수 있어서 보랏빛 초초가 흐드러지게 핀 리오 꼬자이께를 만났다. 그리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이 세상 끄트머리까지 여행지로 변하게 될 것이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 AMERICA
Coyhaique Regione di Aysén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