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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4. 2020

열흘만에 생긴 놀라운 변화

-우리가 찾아낸 꼭꼭 숨겨진 명소

사람 사는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



이틀 전(현지시각), 아내와 함께 나선 아침 산책에서 여행자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늘 보던 풍경으로부터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곳은 집에서부터 대략 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자 바를레타의 명물 종려나무 가롯수길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곳을 돌아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우리는 사구 너머로 펼쳐진 비옥한 농토 너머 작은 언덕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길을 돌아가는 것보다 다른 코스를 따라가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따라서 밭이랑을 따라 수풀을 헤치고 언덕 위에 서니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펼쳐진 비옥한 농토를 바라보게 됐다. 가슴이 탁 트이고 생기 넘치는 봄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남의 사유지를 관통해 언덕에 오를 때까지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4일) 의기투합한 우리는 바닷가에서 커피와 김밥 몇 개로 간식을 때운 한편 바닷가를 걷다가 사구 너머로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나 있는 흔적을 발견하고 밭이랑을 진입한 것이다. 대개 사유지 앞에는 바리케이드를 해 두었으나, 길이 열려있었으므로 언덕길을 향해 걸었다. 도중에 밭주인을 만나 인사를 건네고 허락을 얻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곳을 지나 저 언덕 너머로 갈 수 있는 오솔길이 있나요?"


중년의 밭주인 남자는 곧바로 물음에 답했다.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그런 길은 없어요. 하지만 언덕 너머로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참 재밌는 일이다. 이곳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지 7개월이 넘었지만 그동안은 저만치 떨어진 언덕 위로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주어진 길을 따라 걸었던 게 전부였지만 아내의 등장으로 우리네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 산책을 통해 최근에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해 무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요즘 지구별에 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꼬로나 비루스(Corona Virus_이탈리아식 발음) 때문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이탈리아는 발칵 뒤집어졌다.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3월 3일(현지시각) 현재 이탈리아 꼬로나 비루스 누적 확진자는 2천502명이며 사망자 수는 79명으로 급증했다. 전날 대비 466명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망자 수는 27명 증가한 79명으로 잠정 집계된 것이다. 지난달 중순 바이러스 전파가 본격화한 이래 하루 기준으로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다. 



꼬로나 비루스의 최대 확산 지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 밀라노를 비롯 에밀리아-로마냐 주와 베네토 주 등 주로 북부 지방에 편중되어 있었다. 특히 롬바르디아 주에서는 5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18명이 보고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전역에 보고된 확진자 수는 북부 3개 주 외에 마르케 주 61명, 피에몬테 주 56명, 캄파니아 주 30명, 리구리아 주 24명, 토스카나 주 19명, 라치오 주 14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꼬로나 비루스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뿔리아 주)은 상대적으로 확산의 속도가 늦거나 확진자 수가 적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뿔리아 주 4명)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쏟아내는 뉴스는 꼬로나 비루스 신드롬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다름 아니다. 피렌체서 만난 한 아티스트의 고향이 이곳 바를레타였으며 아내는 그의 화풍을 좋아했다. 람 브란트를 사랑한 그의 작품들은 여느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가 될 정도로 눈길을 끈 것이다. 


그는 피렌체의 산타 암부로지오(Mercato di Sant’Ambrogio) 재래시장 곁에서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작품을 내다 팔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와 어느 날 장을 보러 갔다가 그를 만났으며, 당신의 작품에 반한 아내가 그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한 것이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날을 잡아 지난해 7월경 현지답사를 마친 끝에 바를레타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전부가 한 아티스트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내는 그동안 한국 생활 대부분을 정리하고 지난달 23일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을 봄이 오시는 로마로 가는 길에 끼적거렸다. 


이 같은 결정은 아내는 물론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신의 삶 혹은 우리의 삶에 방점을 찍는 중요한 과정이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는 시차 적응을 하고 있었으며 매일 아침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그 시간이 어느덧 열흘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아내의 소식을 그 아티스트에게 전하는 한편 조만간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지난 주말 아내와 나는 아침 산책을 끝마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챠오 짱, 너무 반가워요.. 한국에 꼬로나 비루스가 기성을 부린다는데 한(아내 지칭)은 괜찮으신가요.. 10분 후에 수업이 진행되므로 지금 당장 만날 수 없고.. 이따 오후에 만났으면 합니다. 네네 이따 오후에 봬요."



우리는 그를 만나 커피 나누며 앞으로 전개될 그림 수업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후 시간이 저만치 가고 있는데 그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때 나의 전화기를 보니 충전을 해야 했다. 그래서 급히 충전소(따바 끼)에 들러 충전을 하고 전화기를 다시 켠 다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걸었었다. 


그런데 전화가 닿지 않았다. 분명 신호음이 가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 주말 저녁이었다. 시내 중심에는 사람들이 붐볐으나 여전히 그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미 사전에 약속이 된 터라 그의 화실을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그의 화실까지 걸어가면 10분이면 충분했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해 1.2층(지층 위로)을 바라보니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당장 그를 만나게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초인종을 길게 눌렀다. 삐~하는 소리가 문밖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삐~~~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또다시 눌렀다. 삐~~~~~ 감감무소식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말 저녁 그는 친구를 만나러 갔거나 다른 스케줄 때문에 집을 비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한편, 아내와 나는 쓸데없는 예감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와 전화 통화를 할 당시 남긴 꼬로나 비루스가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주말 저녁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온 즉시 컴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컴을 열어 나의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그곳에 그의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메시지는 발칙했으며 전에 느끼지 못한 불친절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그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로나 비루스 때문이었다. 이랬다.


"챠오 짱.. 저의 전화기가 망가져서 페북에 글을 남겨요.. 원컨대 비상사태에 직면한 꼬로나 비루스 때문에 3월 15일 이후쯤에 만났으면 합니다. 한국의 꼬로나 비루스를 전하는 이탈리아의 뉴스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위 자료사진과 영상은 바닷가 사구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내와 함께 산책하기 전에는 주로 바닷가에서 언덕쪽을 바라보며 산책에 나섰다. 우리가 찾아낸 명소가 언덕 위에 있었던 것이다.


꼬로나 비루스의 잠복기간을 감안하면 최소한 20일 정도는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아내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재입국할 때 꼬로나 비루스 감염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열흘만에 이탈리아 전역이 꼬로나 비루스 때문에 발칵 뒤집어지면서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튄 것이다. 시내를 걸으면 어린아이(청년)들이 우리를 보고 피하는 일까지 덤(?)으로 생겼다. 


그의 전화기는 피렌체서부터 일찌감치 망가져 있었다. 거짓말을 하며 일부러 우리를 피한 것이다. 초인종을 누를 때 그는 커튼 사이로 우리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 그의 그림 수업은 주로 오후에 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새롭게 만난 산책길에서 나누고 있었다. 아내는 그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불쾌해했다. 나 또한.. 열흘만에 세상의 풍경을 바꾼 건 꼬로나 비루스였다.


IL NOSTRO VIAGGIO IN ITALIA CON MIA MOGLIE
il 04 Febbraio 2020, La Duna della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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