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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9. 2020

하얀 비단결에 싸인 아침

-봄이 오면 생각나는 신비로운 여행지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뽀얀 안개에 싸인 아침 풍경은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의 삼각주 곁을 흐르는 리오 네그로 강의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강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이날 아침 우리 앞에 펼쳐진 강과 주변의 풍경은 꿈을 꾸는 듯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난 비경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아내와 나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서울에서 호주 시드니까지 가는 직항에 몸을 싣고, 다시 그곳에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이동한 다음, 대권 항로를 따라 남반구의 청정지역 파타고니아를 소유한 칠레의 산티아고로 날아간 것이다.



1박 2일의 여정이 단박에 사라진 이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잠시 몸을 추스른 후, 우리는 다시 하강하는 봄을 따라 버스에 몸을 싣고 뿌에르또 몬뜨까지 달려간 것이다. 남반구의 봄을 너무도 그리워한 우리는 몬뜨에서 다시 로스 라고스 주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으로 이동한 후, 마침내 꿈에 그리던 파타고니아의 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이곳은 남미 일주를 통해 몬뜨의 이슬라 땡글로(Isla Tenglo)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장소로, 몬뜨로부터 시작되는 까르레떼르라 오스뜨랄(carre terra austral)의 초입에 있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세상에 이런 마을도 있었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곳은,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써도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특히 봄이 오실 때마다 생각나는 이곳은 하늘이 우리 내외를 위해 예비해 둔 특별한 장소로 여긴 곳이라고나 할까..



세상 일은 스스로 발품을 판 자들에게만 비경을 선물하는 법이어서.. 우리는 이곳에 여장을 푸는 동시에 거의 한시도 쉬지 않고, 그야말로 뻔질나게 오르노삐렌 삼각주 곳곳에 발도장을 찍고 다녔다. 마치 누군가의 이끌림에 끌려다닌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여행지는 매 순간 특별한 감흥을 선물하곤 했던 것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면 5분도 채 안 되는 지근거리에 오르노삐렌 삼각주가 펼쳐져 있고, 리오 네그로 강이 졸졸거렸다. 가끔씩 뭇새들이 날아오른 그곳에서는 아침을 시작하는 뽀얀 안개가 안데스 자락에 걸쳐 선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실루엣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 군네라 띤끄또리아(Gunnera tinctoria(Molina))는 물론 깔라파테와 샛노란 풀꽃들이 비단 안개에 싸여 조화를 이룬 곳. 영롱하게 반짝이던 아침이슬은 세상을 보다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살고 있다면 신의 거처는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간섭을 하지도 않고 또 간섭받지 않는 곳..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 신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접견하는 듯한 배부름에 빠져든 것이다. 생명의 진정한 양식..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정화시키는 양식이 무한대로 널린 곳이었다. 



교회 음악가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는 천상의 노래로 '생명의 양식'을 작곡하고 평생을 통해 종교 음악을 작곡했지만, 인간의 노래가 차마 미치지 못하는 곳이 북부 파타고니아의 오르노삐렌이 아닌가 싶었다. 그곳은 우리가 도착할 때부터 다시 떠날 때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신비로움을 선물한 것이다. 



가녀린 바람과.. 뽀얀 안개와.. 졸졸 거리는 강물소리와.. 샛노란 풀꽃과.. 영롱한 이슬과.. 강가를 수놓은 수초들과.. 강물 속에서 납작 엎드려있는 자갈은 물론, 뽀얀 안갯속의 실루엣은 천국이 잠시 외출을 나선 듯 우리 앞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세자르 프랑크의 노래를 들으면서 뽀얀 비단결에 쌓인 전설 같은 아침 풍경을 잠시 비교해 볼까..



Pannis angelicus

-Sacris solemniis/César Franck


Pannis angelicus
Fit panis hominum;
Dat panis coelicus
Figuris terminum;
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nis angelicus
Fit panis hominum;
Dat panis coelicus
Figuris terminum;
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uper, pauper
Servus, servus et humilis.




우리에게 천사들의 빵(Pannis angelicus)으로 익숙한 노래는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ommaso d'Aquino_28 gennaio 1225, Roccasecca)가 성체축일을 위해 쓴 찬미가 ‘우리의 신성한 축일에’(Sacris solemniis)의 일부로 알려졌다. 


아퀴나스의 찬미가는 일곱 연으로 구성된 운문으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여섯 번째 연 ‘천사들의 빵’(Panis angelicus)은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을 위해 천사들의 빵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으로, 바로 이 부분이 라틴어로 쓰인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가사인 것. 





요즘 지구별은 우울하다. 마음 둘 데 없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일들이 연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다. 사정은 달랐다 그러나 우리 내외가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났을 당시만 해도,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먼 나라.. 꿈나라로 떠민 것이다.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풍경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치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뽀얀 비단결에 쌓인 아침 풍경이 우리를 말끔히 정화시키며 황홀경에 빠뜨린 것이다.



새삼스럽게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하는 의문의 꼬리표를 달았다. 그 무슨 일이든 시간이 해결해 왔으며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상들은 머지않아 오로노삐렌 삼각주 위에 드리워진 비단결 같은 안개처럼 안데스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그때 꼭 기억해 둘 여행지를 소개해 드리고 있는 것이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 위로받아 마땅할 사람.. 그리고 당신의 존재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줄 명소를 잘 기억해 두셨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시기 바란다. 죽을 때까지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해 줄 것이다.



누가 뭐랄 것도 없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산다..!!



IL NOSTRO VIAGGIO IN SUD AMERICA
Hornopiren Los Lagos Region CILE
il 09 Marz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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