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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6. 2020

김밥에 묻은 아내의 향기

-두 발 묶인 우리 생활의 작은 변화

달라도 너무 다른 아내표 김밥..!!



아내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온 직후 몰라보게 달라진 생활 한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요즘 지구별에 사는 사람을 심각한 충격에 빠뜨린 꼬로나비루스 사태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 오래되지 않았다. 아내가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만 해도, 사태는 주로 중국이나 한국의 몫처럼 느껴질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로마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올 당시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내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입국장에 마중을 나온 사람들은 물론 승객을 픽업할 택시운전사와 공항에 서성이는 사람들과 청사 직원 등 마스크를 한 사람을 찾기 드물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피우미치노 공항-로마 떼르미니 역-바를레타로 길게 이어지는 기차역과 기차 내에서 조차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이탈리아는 평온해 보였다. 



아내는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권유에 따라 마스크를 벗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이상해 보일 정도라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었던 아내는 그 즉시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늦은 밤 바를레타 역에 내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마스크를 쓴 시민을 만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 때여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꼬로나비루스 사태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곳이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었을까.. 


아내가 바를레타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아침운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탈리아는 멀쩡해 보였다. 그런 이탈리아에 변화 조짐이 보인 건 아내가 도착한 지 대략 일주일 이후부터였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오늘 자(15일, 현지시각) 이탈리아의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24,747명)와 사망자 수(1,809명)는 경악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계인의 시선은 이탈리아에 집중됐고 유럽은 덩달아 이탈리아를 닮아가고 있었다. 또 대서양 건너편 미국까지 그리고 전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그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까지 걸린 시간은 아내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지 불과 보름만이었다. 15일 동안 세상이 확 달라진 것이며, 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바를레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바를레타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전무했다. 그러니 지금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고, 보건당국의 조치로 길거리는 텅 비었을 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파는 가게와 약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걸었다. 


그뿐 아니다. 시내는 가끔씩 자동차와 엠블란스가 경적을 울리며 내달리는 소리만 있을 뿐 죽음의 도시처럼 인적이 뚝 끊겼다. 불과 15일 전 확진자 수도 4명에 불과했던 바를레타 시가 속한 뿔리아 주의 현재 확진자 수는 230명으로 불어났다. 세상이.. 이탈리아가 15일 만에 확 달라진 것이다.





아내가 바를레타로 돌아온 직후 나의 삶은 대략 7개월 전 보다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아침산책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하나 더 늘었으며 직접 소통할 대상이 늘 곁에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주로 전화로 소통을 했으므로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고 하지만 마치 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런 세상이 불과 얼마 만에 확 바뀐 것이다. 


아내가 이탈리아에 돌아온 어느 날 오후 해 질 녘.. 우리는 바를레타 항구 주변을 산책했다. 바를레타 내항에서 바라본 방파제는 황금빛으로 변해있었다. 아내는 그 풍경을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그동안 나 혼자 즐기던 풍경에 감탄사를 퍼붓는 팬 한 사람이 생긴 것이다. 기분 째지는 일이다. 그뿐 아니다. 잔소리꾼 한 사람이 늘어나 시시콜콜한 잔소리까지 덤으로 챙겨야 했다. 세상은 늘 이런 식이다. 





짧은 시간.. 달라진 시간.. 확 바뀐 세상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거의 매일 싸돌아 다니던 버릇에 충만해 있던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바깥으로 겉도는 시간보다 방콕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건 꼬로나비루스 사태 때문이었다. 방콕 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시간을 때우는 방법 또한 진화를 거듭해야 했다. 


짧은 시간 우리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지낼 땐 내 마음대로 장을 봤지만 둘이 함께 지내면서부터 차림표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마트 혹은 재래시장에 들러서도 가끔씩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 나는 주로 아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 아침부터 아내는 김밥을 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틀 전 마트와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 온 식재료로 아점 및 간식으로 김밥을 싼 것이다. 김밥의 속재료는 쁘로슈토 끄루도(prosciutto crudo), 프로슈토 꼬또(prosciutto cotto), 까로떼(carotte), 페페로니(peperoni), 우오바 꼬또(Uova cotto) 그리고 체뜨리올로(cetriolo)를 채 썰어 넣었다. 그리고 잘 지은 쌀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비벼 식힌 후 한국에서 공수해 온 대발을 이용해 김밥 다섯 줄을 싼 것이다. 


이탈리아 식재료와 한국의 식재료를 혼합한 꼴라보.. 모처럼 우리를 위해 말기 시작한 김밥은 비뚤비뚤 헐렁한 모습으로 접시 위에 놓였다. 그러나 정성을 다한 아내표 김밥.. 실로 얼마만인가. 기막힌 맛이다. 이 같은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가까운 곳에 소풍을 갈 때면 아침 일찍 일어나 딸그닥 거리며 동지애를 일깨우던 습관들.. 


김밥을 다 말아놓고 아내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세계인을 힘들게 만드는 사태로부터 탈출을 하는 즉시 가까운 산으로부터 거리를 점차 늘리자는 것. 지도를 펴 놓고 아내가 가고 싶은 곳을 살펴보니 그곳은 빨간 점들이 온통 수두처럼 번져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은 언제인가 하얗게 지워질 것. 그때부터 아내표 김밥은 새롭게 빛을 발할 게 틀림없다.


L'odore di mia moglie su Gimbap
il 15 Marz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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