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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2. 2020

남들 다 고개를 끄덕일 때

-내가 만난 콜로세움의 진정한 용도

남들 다 고개를 끄덕일 때 절레절레 저어본 꼴로세오..!!



들어가기 전에


지구별에 사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꼴로세오(Il Colosseo_나의 브런치에서는 가능한한 영어식 표현 콜로세움(Colosseum) 대신 이탈리아어 꼴로세오를 사용한다. 아울러 음역어(중국어나 일본어)인 이태리(Italy_이딸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도 우리나라 서울을 세울(Seul)로 부르지 않고 서울(Seoul)로 부르는 마당에, 로마에 위치한 세기의 건축물 꼴로세오를 다른 말로 표현할 리가 없는 것. 이 같은 습관을 들이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역사와 문화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발음 하나만으로 말이다.



늦깎이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나의 무의식에서 조차 이런 습관은 계속됐다. 따라서 이탈리아 현지에 둥지를 튼 이후에도 이탈리아어가 낯설지 않게 됐다. 꼴로세오가 건설될 당시 사용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된 원문으로부터 영문 등으로 번역될 때까지, 적지 않은 오류가 있었을 것이나 이탈리아어를 사용할 때 최소한 당시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처음 나의 브런치를 만나게 된 독자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란다. 




처음 만난 꼴로세오의 위용


지난해 2019년 6월, 나는 로마의 떼르미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꼴로세오 역에 도착했다. 로마의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 들러 볼일을 마치고 나니 피렌체로 돌아갈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꼴로세오를 돌아보기로 마음먹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지하철은 떼르미니 역 앞에서 출발해 꼴로세오 역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좁은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 세계에서 로마로 떠난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자 따끈따끈한 볕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볕이 얼마나 뜨겁던지 사람들은 그늘이 있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볕을 피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빠져나오는 즉시 코 앞에는 엄청난 석조물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세기의 건축물 꼴로세오였다.  나는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습관적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선 작은 언덕길을 올라 뷔아 니꼴라 살뷔(Via Nicola Salvi)로 올라갔다. 그곳에 서면 꼴로세오가 잘 조망되는 곳이었다.



뷔아 니꼴라 살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꼴로세오는 한눈에 봐도 세계인들을 불러들일 만큼 규모면에서나 건축물의 구조가 남다르게 뛰어났다. 우리가 학습한 바에 따르면 꼴로세오는 대략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한다. 기록에 따르면 꼴롤세오는 서기 70년부터 80년 사이에 베스빠시아노(Vespasiano)와 띠또(Tito (imperatore romano))에 의해 지어졌다고 말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의 주요 건축 자재는 석회암, 응회암,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졌고,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꼴로세오는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현재는 이탈리아 라찌오 주(Regione Lazio) 주도 로마(Roma)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꼴로세오에 숨겨진 이야기들


위 자료사진 뒤로 보이는 풍경은 빨라띠노 언덕이 위치한 곳으로 일곱 개의 언덕(Sette colli di Roma)중 한군 데이다. 그리고 좌측 꼴로세오 일부 너머로 에스퀼리노 언덕이 있는데 꼴로세오가 있는 현재 위치는 주거지역이었다. 그러나 서기 64년에 로마의 대화제가 발생하자 네로 황제(Nero_본명: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_황제가 된 후 개명: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는 거대한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와 인공 호수, 정원을 지었다. 



기존의 수로들은 이 정원에 엄청난 양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거대하게 개축되었고, 궁전과 정원들은 모두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그리고 궁전 옆에 그의 모습을 본뜬 거대한 청동 거상을 지었다. 네로는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37년 12월 15일 ~ 68년 6월 9일, 재위 54년 10월 13일 ~ 68년 6월 9일)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끌라우디우스의 외종 손이자 양자이며 깔리굴라(Caligula, Gaius Jul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의 외종질이 된다. 



그런데 역사는 늘 꼴통들을 몰아내는 것일까.. 네로의 능력 밖 폭정으로 말미암아 반란이 일어났다. 그는 원로원의 충고를 무시하고 세금을 대폭 늘렸으며, 시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궁전을 짓고 자신의 동상을 건립했던 것이다. (너무 어렸을까..ㅜ) 



이 같은 가혹한 정책이 화를 불러일으킬 줄 몰랐던 네로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영국 정복에 이름을 떨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o)를 불러들이게 된다. 네로가 베스파시아누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한 건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많은 병사들을 내주게 됐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게 된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촛불 혁명을 쏙 빼닮은 로마 시민들의 반란이 극에 달하자 원로원은 시민들의 뜻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촛불 혁명 후 진행된 탄핵정국의 풍경이 네로의 운명을 옥죄게 된 것이랄까. 이랬을 것..!


(상략)..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 00을 파면한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 00, 재판관 이 00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 00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네로의 선택과 그를 둘러싼 험담 약간


31살, 이립(而立)의 네로는 감옥생활이나 처형으로 이어지는 지질한 절차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의 독설은 넘쳐났다. 단지 세금을 조금 더 징수한 사실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을까.. 역사는 늘 두 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네로는 서기 59년에 그의 엄마 아그리삐나 미노레(Agrippina minore)를 죽이고, 62년에는 황후 끌라우디아 옥따비아(Claudia Octavia)를 죽였다.  엄마를 죽일 때만 해도 로마 시민들과 상원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네로가 황제로 즉위될 때 나이가 17살이었다. 


그리고 네로의 스승 루치우스 안나에우스 세네까(Lucius Annaeus Seneca)라는 정치적 능력자가 늘 옆에 있었다. 무엇보다 로마의 숙적 빠르띠아 제국(Impero partico_Ashkanian Empire)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건이 있다. 네로는 왜 그의 엄마와 아내(황후)를 죽였을까..



네로가 죽인 엄마


먼저 네로의 엄마의 출신을 살펴보자. 아그립삐나(Agrippina)는 로마 황제 깔리굴라(Caligula, Gaius Jul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재위 37~41)의 누이동생이다. 그녀는 14살 때 오빠인 칼리굴라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오누이와 맺은 얄궂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15살 때 빠씨엔스 끄리스뿌스(Passiens Crispus)라는 귀족과 결혼했으나 얼마 못가 남편이 죽었다. 



이번에는 명문 귀족 출신의 정치인이자 군인인 그나에우스 도미띠우스 아헤노바르부스(Gnaeus Domitius Ahenobarbus)와 재혼했다. 이때 태어난 아들이 네로였다. 두 번째 남편 도미띠우스는 그녀와 나이 차이가 30년이 넘었고, 금욕적이고 오만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네로는 외가가 황족 혈통이긴 하지만 황위 계승 서열은 높지 않았는데 어떻게 황제가 되었을까.. 꼴로세오 건축의 배경을 끼적거리고 있자니 재밌다. 그런데 자료 정리 등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오늘 이탈리아 COVID-19 사망자 +619(누적 사망자 수 19,468명)..!!


Coronavirus in Italia: 152,271(확진자 +4,694) casi, 19,468(사망자 +619) morti, 30,455(치료자 +2,079) i guariti -Il bollettino al 11 Aprile.

어제(Il bollettino al 10 marzo.)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및 치료자 수 Coronavirus in Italia: 147,577(확진자 +3,951) casi, 18,849(사망자 +570) morti, 30,455(치료자 +1,985) i guariti


-2020년 4월 11일 오후 17시 17분(현지시각) 현재, 이탈리아 꼬로나비루스(COVID-19) 전염병 누적 확진자 수는 152,271(확진자 +4,694) 집계됐다. 사망자 수는 19,468(사망자 +619)으로 집계됐다. 치료자 수는 30,455(치료자 +2,079)으로 집계됐다.  (출처:  www.worldometers.info) 치료자 수가 전날에 비해 조금 더 늘었지만,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난 암울한 소식이다. 꼬뷔드-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께 응원을 보낸다!!


Quando tutti annuiscono_IL COLOSSEO ROMA
il 11 April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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