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9. 2020

천국과 개똥밭

-비단 안개에 싸인 오르노삐렌 삼각주의 아침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풍경들..!!



오래 전의 일이다. 대략 50년은 더 된 세월 저편에서 나는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이고 있었다. 용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필름 한 통을 사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나는 사진의 마술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에 필름이 장착만 되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제한된 컷 때문에 아무렇게나 셔터를 누를 수 없는 것이다. 



요즘에야 쓰던 필름(?)을 다시 사용하는 매우 편리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몇 안 되는 필름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 한 장을 남길 때는 발도장을 수 없이 찍어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를 찾아 어디든지 싸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런 필름을 하룻만에 다 사용할 수는 없는 일. 어떤 때는 필름이 카메라 속에서 한 두 주는 더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은 현상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필름 현상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주로 가까운 동네 사진관을 이용했다. 필름 인화와 현상을 통해 사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컬러사진이 유행하기 전까지 이 같은 일은 계속됐다. 



그리고 주말이면 친한 친구와 함께 교외로 출사를 나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들은 요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형편없는 것들이었지만 흑백사진으로 찍힌 사진들은 볼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습관들 때문에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의례히 카메라를 들고나가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다. 



주로 여러 명이 뷰파인더 앞에 서 있는 사진들은 인화가 되면 교실 안은 시끌벅적했다. 먼저 자기가 나온 사진을 찜하여 추가로 인화할 수를 계산하여 값을 나누어 매긴 다음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때 사용한 카메라 이름이 야시카였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팬탁스 등으로 발전을 했다. 나를 거쳐간 카메라 수가 꽤 많이 되었으며 렌즈 또한 진화를 거듭하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곤 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나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와 함께 주말은 출사가 예약되는가 하면 함께 따라나서는 친구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세상은 천국을 쏙 빼닮아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풍경들이지만, 나의 고향 부산 근교에는 파타고니아 못지않은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낙동강 하구 갈대밭에 발을 들여놓으면 뭇새들이 조잘거리고 거뭇한 개펄에서는 조그만 게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작은 뗏마에 몸을 싣고 하구의 삼각주에 들어서면 파랗고 싱싱한 대파밭이 넓게 펼져진 곳으로 철새들이 빼곡했다. 이런 풍경은 사춘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또 황령산이나 백양산 꼭대기에 서면 발아래로 부산 시가지가 우뚝 솟아나 보였다. 특히 백양산 정상에 서면 풍경은 압권이었다. 저 멀리 부산 앞바다가 보이는가 하면 뒤로는 낙동강 줄기가 용솟음치듯 구불거리며 김해평야를 감싸고 흘렀다. 



그리고 멀리 부산항 근처 감만동과 용당동 그리고 이기대로 발품을 팔면 남태평양 보다 더 맑고 고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또 송정과 기장으로 떠나면 해운대 해수욕장이나 수영 해수욕장에서 볼 수 없었던 맑디 맑은 바닷물이 우리를 반겨주곤 했다. 그리고 양산 통도사는 물론 범어사를 끼고 있는 산과 법기 수원지로 이어지는 풍경들은 천국과 다름없는 곳들..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개똥밭이라 불렀다. 개똥밭을 찾아볼 수 없었음에도 불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개똥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개똥밭에 얽힌 이야기는 나중에 알게 됐다. 사람들은 죽어야 갈 수 있는 천국의 반대말 정도로 개똥밭을 입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국이 제 아무리 좋은 들 세상만 못하다는 말이자 천국을 비아냥 거리는 말투.. 이런 배경에는 산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다음 두 번 다시 세상에 돌아온 걸 보지 못한 까닭이 숨겨진 것일까.. 





아내와 내가 머문 숙소는 엉망진창이었다. 뿌에르또 몬뜨에서 머물 때 사용한 숙소는 양반(?)이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풍기던 퀴퀴한 냄새는 오크향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기 때의 목조건물은 촉촉이 젖어있어서 매일 난로에서 불을 피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은 구조였다. 


몬뜨에서 우리가 묵던 숙소는 2층이었는데 침대에 누워있으면 옆방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게와 성격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체중에 따라 계단의 삐꺽임이 다르고 삐꺽임의 횟수에 따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누군가 나쁜 짓(?)을 시도하면 별 희한한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것. 굳이 누군가 황홀경에 겨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목조건물을 뒤흔드는 삐꺽임이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몬뜨에서 1시간 반 남짓 이동한 북부 파타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의 오르노삐렌의 숙소는 한 술 더 떴다. 이곳에서도 2층에 머물렀는데 숙소로 발을 떼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삐거덕 거리는 것이다. 숙소는 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나마 위로되는 건 1인당 숙박비가 우리 돈 1만 원이라는 점이었다. 


방값을 흥정하는 건 주로 나의 몫이었으며 이 같은 일은 파타고니아 투어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하룻밤 우리가 묵는 비용은 2만 원이면 족했다. 그리고 목조로 허름하게 지은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주로 주인 내외가 기거하는 1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파타고니아 인들의 우기를 견디게 해주는 난로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굵직한 물푸레 장작 몇 개만 넣으면 히루 종일 펄펄 끓었다. 그 열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가 하면, 난로 곁에 침상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찜질방을 쏙 빼닮은 그곳을 아내가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 오르노삐렌 삼각주로 향하면 추위에 떨던 착한 길거리 개들이 따라나선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바닷가.. 그곳에는 진짜 백이 개똥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그리고 곧 천국과 개똥밭이 한데 어우러진 천상의 나라가 눈 앞에 펼 져지는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바빠진다. 오래전부터 습관 된 카메라 셔터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한편 저만치 앞서가는 아내 곁으로 펼쳐진 개똥밭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풍경이 한 점 때 하나 묻히지 않고 펼쳐진 곳. 사람들이 지어낸 개똥밭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 AMERICA CON MIA MOGLIE
Hornopiren Los Lagos Regione Nord Patagonia CILE
Foto e Sc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나라로 가는 구름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