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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3. 2020

반칙으로 떠난 화려한 봄나들이

-살아가는 동안 잘 다스려야 할 반칙

착한 반칙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틀 전 오후 5시경(현지 시각), 아내와 나는 간단한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대략 한 달 반쯤 이어진 방콕을 청산하고 봄나들이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심한 악천후가 아니면 거의 매일 아침 산책을 거르지 않던 아내에게.. 자가격리 지침에 따른 방콕은 아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대문을 나서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너무 무섭다"라고 말했으며, 나는 아내더러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며 아이들 타이르듯 타일렀다. 그런 일이 어느덧 한 두 번.. 그리고 두세 번 이어지면서 아내의 숨통도 트이게 할 겸 아예 도발을 계획하고 집을 나선 것이다. 



반칙으로 떠난 화려한 봄나들이


우리의 계획에 따르면 집을 나선 직후 아드리아해가 바라보이는 바닷가 언덕을 따라 재래시장을 천천히 돌아올 심산이었다. 이미 이 코스는 익숙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모를 외출 단속에 걸려들면 마땅한 핑겟거리가 필요했다. 단속 공무원 누군가가 "어디를 가느냐"라고 물어왔을 때, 우리는 "재래시장 곁에 있는 마트로 갈려고 한다"라고 대답할 예정이었다. 

참 착한 흉계를 가슴에 품고 아내와 함께 짧지만 화려한 봄나들이를 시작한 것이다. 조금 전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따라 계획한 코스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탈리아 삼색기가 봄바람에 날리는 골목은 이곳 바를레타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곳으로 대략 500년도 더 된 오래된 주택가의 모습이다. 시내는 온통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어서 나는 이 도시를 '아드리아해의 보석'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고도 아드리아해의 보석은 밤이 오시면 작은 백열등의 불빛만으로도 광채를 드러내는가 하면, 오늘처럼 비라도 내리시면 도시는 수정체처럼 영롱한 빛을 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해 있으므로 바닷가까지 진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짧으면 5분 길어봤자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바다가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그곳에 서면 아드리아해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방콕을 통해 바깥세상을 늘 머리에 그리던 풍경이 단박에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언덕 곳곳에 양귀비꽃이 가는 바람에 꽃잎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시 나무는 하얀 꽃봉오리를 내놓고 있었다. 우리가 방콕 하는 사이에 세상은 봄소식을 알리기에 바빴던 모습이랄까. 


비록 반칙으로 떠난 봄나들이 었지만 우리를 맞이한 4월은 화려했다. 지구별 전체가 꼬로나 비루스 때문에 생몸살을 앓고 있을 때, 대자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할 짓 안 할 짓 못할 짓 별 희한한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방콕 하던 두 사람에게 화려함으로 다가오다니..



아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 바닷가




아드리아해가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까지 진출한 아내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번 더 반칙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바닷가는 아내가 한국에서 다시 돌아오기 전부터 내가 다녔던 산책코스였다. 그리고 비루스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아내와 함께 걸었던 곳이기도 했다. 대략 열흘간의 데이트가 비루스 때문에 막을 내리고 방콕에 돌입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그리고 먼 나라 여행을 떠났을 때도 산을 좋아했던 아내는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오자 바다도 좋아했다. 마치 편식을 일삼던 사람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듯 달라진 표정이 눈에 띈 것이다. 그리고 반칙으로 떠난 봄나들이에서 아내는 그 바다를 그리워하며 나를 유혹하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끝!!



나는 아내의 제안에 급 동의하고 싶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바닷가에는 인적이 눈에 띄지 않았다. 외출을 통제하려는 경찰차의 경광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화려한 몸짓의 풀꽃들 뿐이었다. 우리의 발걸음을 제지하려는 그 어떤 장치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당초 계획된 코스를 따라 시내 일주를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눈길은 바닷가 언덕 위에서 피고 지는 풀꽃에서 떠나지 않았다. 착한 반칙이 아니었다면, 금도 그어지지 않은 선을 넘어 바닷가로 달려갔을 게 아닌가.. 



아내에게 미안했다


운명은 참 모진 것일까.. 나는 아내더러 비루스 사태가 끝나면 가자고 말렸지만, 그 말을 뱉은 즉시 아내에게 미안했다. 마음만 먹으면 못 가는 곳도 아니지만 만에 하나 불행의 덫에 걸려들기라도 하면 끝장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당신이 이탈리아로 다시 오게 된 과정과 방콕 과정을 돌아보면 여간 가슴 아픈 게 아니었다. 



(브런치 독자분들께서는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아내와 나는 지난 2월 23일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7개월 만에 다시 상봉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는 그동안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 위에서 아드리아해 너머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아내를 기다렸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방파제 위를 거닐며 하루가 멀다 않고 전화통화를 했다. 우리를 잇는 유일한 끈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였으며, 그때마다 나는 내가 거닐고 있는 바닷가 풍경 등을 아내에게 낱낱이 고해바쳤다. 그리고 상상만으로 보고 듣던 그 바다가 언덕 위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펼쳐지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냥 지나쳐야 했다.


* 위 자료 사진은 한 때 바닷가에 쌓아두었던 담벼락(il Muro)이었지만, 현재는 바다가 저만치 물러서 있다. 이날 우리가 걸었던 반칙으로 떠난 화려한 봄나들이는 주로 이 언덕길 위로 길게 이어졌다.


아내는 방콕을 하는 동안 이탈리아에 다시 오게 된 것을 넌지시 후회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었을 때만 해도 이탈리아는 비루스 사태로부터 안전지대였다. 당시 한국은 중국과 함께 비루스 사태의 주 표적이 되어 상위 1.2위를 꽤 차고 있을 때였다. 그때부터 한국의 여행사들은 이미 예매(비행기표)를 취소하거나 환불을 하고 있던 때였다. 난리가 아니었다.



운명은 참으로 묘하고 독했으며 모질었다. 약속이나 한 듯 아내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탈리아는 비루스 사태 국면에 접어들며 단박에 중국과 한국을 너머 1위를 꽤 차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각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며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과거는 만약을 허락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아내가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이탈리아는 물론 세상은 비루스 사태로부터 멀어졌을까.. 전혀 그럴 리도 없지만 아내는 방콕을 통한 스트레스는 정점을 지나고 있었으며, 곧 폭발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비상밸브를 열어 압력을 낮추는 동시에 폭발을 잠시 미루고 있는 조치가 반칙으로 떠난 봄나들이였던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잘 다스려야 할 반칙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유혹을 경험하게 된다. 그 유혹들은 빈부귀천을 마다하지 않고 무시로 찾아든다. 특히 권력을 지닌 똑똑한 인간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게 유혹의 덫이다. 우리가 법을 만들고 규정이나 규칙 등을 만들어 놓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칙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반칙을 통해서 얻게 되는 반사이익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패가망신을 자초하고 싶으면 반칙을 일삼으면 되는 것. 



오늘 발행되는 브런치의 글 제목에 '착한 반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반칙은 기존의 반칙과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녀석으로 사회성도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꼬뷔드-19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는 이웃을 감염시켜 낭패에 빠뜨리는가 하면 종국에는 당신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반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틀 전 행한 착한 반칙은 목숨을 건 반칙과 다름없어 보인다. 세상에.. 봄나들이 한 번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 



우리는 저만치 아드리아해가 바라보이는 언덕길을 지나 시내 외곽으로 진입했다. 그동안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3킬로미터(대략 1시간)가 넘는 거리를 걷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몸 좀 풀렸겠네.."라고 말하자, 방콕으로 스트레스가 폭발 직전에 놓였던 아내는 이렇게 응수하며 웃어 보였다. (*아래 영상은 이날 촬영된 것으로 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4월 풍경이다.)


응.. 이제 겨우 몸이 좀 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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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a splendida gita di primavera lasciata per un fallo
il 22 Aprile 2020, 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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