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재래시장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사람의 일이란 아는 듯 잘 모르는 게 다반사인 거 같다. 어제 오전 피렌체의 오래된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를 다녀오면서 전혀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됐다. 분명히 찬거리를 사러 나섰는데 장바구니(작은 손수레)에는 제 철 과일이 잔뜩 들어있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한 녀석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녀석의 이름은 버찌(la Ciliegia)였다.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살면서 르네상스 유산보다 더 매력적인 곳으로 꼽으라면 두 말하지 않고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을 가리킨다. 그동안 뻔질나게 다녀본 르네상스의 유산들은 세계인들을 끊임없이 피렌체로 끌러들일 만큼 이야기보따리를 지닌 곳이며,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 봐야 할 여행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학습한 르네상스의 역사 보다 훨씬 더 많고 깊은 이야기들이 천지 빼까리로 널브러진 곳.
비근한 예로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소장된 작품들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그곳에는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전시된 것.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몇 작품 외에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작품 앞에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거대한 백화점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기까지가 거의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그다음부터 르네상스의 문화유산들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 작품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 작품들을 잘 이해하고 감상하려면 이른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부해야 할 텐데 큐레이터 지망생도 아닌데 언제 그 많은 작품들을 공부해야 할까 싶었던 것. 그냥 눈팅으로 지나치기엔 너무 소중했던 유산들. 그래서 천천히 틈나는 대로 가끔씩 즐기리라 마음먹은 게 이들 작품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가 했더니 어느 날 거의 따로 놀다시피 하는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 어쩌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이 폭식(?)을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작품 몇 점만 둘러봤다면, 또 그것을 여러 번 나누어 봤다면 결코 질리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들.. 이런 증상은 피티 미술관(musei di palazzo pitti)을 다녀오면서 더욱 심해져 박물관이라면 일단 머리에 쥐가 날 정도랄까.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에게 참 미안한 표현이지만, 내겐 박물관에 박제된 작품보다 재래시장에 자유롭게 널린 과일과 야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그렇듯 이틀 전에 만난 산타 암부로지오 시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과일과 채소를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상점에 진열된 알록달록한 녀석들은 서로 "날 잡아 잡쑤"라는 표정으로 손님들과 눈을 맞춘다. 녀석들과 눈을 마주치고 있노라면 괜히 기분 좋아지는 것.
이날 시장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늘 마주치던 과일과 채소 외에 또 다른 녀석들이 말끔한 차림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세 녀석은 복숭아, 살구, 버찌였다. 주지하디시피 5월 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과일이라면 덜 여문 살구나 버찌가 전부일 텐데 복숭아며 버찌가 상점마다 수북히 쌓인 것. 이날 우리 장바구니에 담은 건 계란, 당근, 대파, 카르치오피, 살구, 오이, 오렌지, 버찌가 전부였다. 하지만 버찌는 맨 처음 안중에도 없었던 과일이었다.
그런데 시장을 오가며 자꾸만 눈에 띄는 게 살구와 버찌였다. 녀석들은 우리에게 "한 번 잡숴봐"라며 꼬드기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엔 눈팅만 하다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건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을 나선 후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장을 보고나면 산타 암부로지오 성당(Chiesa Di Sant'Ambrogio) 앞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곤 했다. 이때 장 봐온 과일을 아내와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 그곳에는 오가던 관광객들이 우리처럼 잠시 쉼을 얻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오렌지(시칠리아산) 맛이 너무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다가, 갑자기 조금 전에 봐 두었던 버찌에 미련을 갖는 것. 사연이 있었다. 단골집에 놓였던 버찌의 가격을 놓고 흥정을 한 적이 있는데 파장이 되어 떨이를 하게 되면 싼 값에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 산타 암부로지오 시장에 출하된 버찌 가격은 킬로그램 당 7유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골집은 6유로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곳에는 여전히 버찌가 쌓였는데 이 가게 만큼은 상자가 거의 텅 빈 것이다. 그래서 씩 웃으며 되거나 말거나 흥정을 날려봤다.
"저 버찌 킬로그램당 5유로.. (로 해 주면 안 잡아 묵지..!)"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되돌아 온 것이다. 주인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남은 버찌 전부 다 가져가시면 킬로그램 당 5유로로 쳐 주겠소!"
"좋아요..전부!"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상자에 남아있는 버찌의 량은 대략 1.5킬로그램 정도를 웃돌거나 비슷해 보였다. 만약 1.5킬로그램이라면 7.5유로만 지불하면 끝. 따라서 저울에 달아보기로 했다. 눈이 보배라고 했던가. 저울 눈금은 1.5킬로그램을 조금 더 가리켰는데 주인은 오케이 싸인을 보내며 7.5유로를 부르는 한편 나머지는 덤으로 주는 것이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단골이란 이런 것. 작은 종이봉지 수북히 담긴 녀석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환상적인 가격에 버찌를 장바구니에 담은 것이다.
누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지천에 널린 르네상스의 이야기 보따리가 눈에서 멀어진 이유는 문화적과식(이런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차고 넘치면 모자랄 때 보다 아쉽지 않은 법. 그래서 중간(중용,中庸)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법일까.
한 가게에서 싸게 구입한 버찌는 우리 눈에 띄기 전 오래전부터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매력적인 과일이었다.(버찌도 과일이다. 멸치도 생선이듯 ^^) 우리는 어쩌다 대하는 식품이었지만 이들에게는 5월이 안겨주는 크나큰 선물이었던 것. 가게 마다 가득했던 버찌들은 제철 맞은 다른 과일들과 함께 불티나게 펄려나가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버찌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 우리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는 건 생선이나 육류(단백질) 혹은 쌀이나 밀가루(탄수화물) 같은 것 외에도, 부족한 소량을 채우는 건 단지 배고픔(허기)의 신호가 아니라 원색을 향한 강한 욕구의 발현을 빼놓을 수 없다. 과일이나 채소가 파랗고 새빨갛고 노란 원색을 띈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또 다른 허기를 자극하는 식물들의 오래된 번식 본능이랄까. 우리 손에 든 검붉은 버찌의 효능은 소량이지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컷다.
널리 알려진 자료 등에 따르면 버찌는 과산화 작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으므로 노화방지와 미용에 좋다는 것. 둘째, 버찌에 든 멜라토닌 성분은 우리 몸의 생체리듬을 조절해 주고 피로를 줄여 불면증을 예방한다는 것. 셋째, 버찌에 든 안토시아닌 성분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혈전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따라서 뇌졸증, 동맥경화,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넷째, 버찌를 꾸준히 섭취하게 될 경우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1.5배 정도 늘어나며 장내 당분해 효소의 억제를 통해 당이 혈액 속으로 빨리 흡수되는 것을 막아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 다섯째, 버찌에 포함된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은 레이어크릴과 비타민 B17이다. 이 성분은 암세포가 활성화 되는 것을 막거나 크기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여 암예방에 기여한단다. 뿐만 아니라 통증을 완화시키는 소염작용과 관절염, 신경통, 통풍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
버찌가 그냥 과일의 여왕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우리 몸에 유익한 과일을 제 때 자주 많이 접하지 못한다면 다 무슨 소용이랴. 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을 끼적거리기 시작하면서 눈여겨 보고 있는 건 특정 식품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생활습관이나 문화 등에 나타난 자료 등을 한국인의 식습관 등에 비교해 보는 것.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한 해 생산되는 양버찌의 량은 115.000~120.000 톤이었다. 엄청난 양이었다.
또 버찌의 종류는 수백 종인데 주로 단맛의 버찌와 신맛의 버찌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 심겨진 벚나무가 주로 후자의 종자며 요즘은 품종개량 등으로 단버찌 생산을 하고 있다고 하나, 수요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따라서 많은 양을 섭취하기란 쉽지않은 것. (이를 어쩌나..ㅜ)
이날 우리가 구입한 버찌는 날씨가 온화한 이탈리아 남부지방 뿔리아 주(Regione Puglia)에서 생산된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제철 과일을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무릇 좋은 음식이란 자주 맛있게 먹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인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자 나라인 것. 좋은 식품이 넘쳐나는 유혹의 땅이 틀림없어 보인다. 유혹의 사전적 의미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산타 암부로지오 시장에서 우리를 유혹한 버찌는 우리 몸이 스스로 원했던 것. 곧 이탈리아 전역이 과일의 여왕이 지배할 것 같다.
참고자료: Un mondo in rosso: la ciliegia, 22 varietà per un frutto che sa di bella stagione
Mercato di sant'ambrogio Firenze
la Ciliegia17 Maggio 2019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