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우리는 언제쯤 유혹으로부터 멀어질까..?
#화려한 꽃의 유혹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지난주 아내와 자주 들리는 피렌체의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에서 새빨간 입술로 뷰파인더를 유혹하는 화려한 꽃 몇 송이를 만났다. 약간 검은빛이 도는 이 꽃의 이름은 무궁화 꽃을 닮아 하와이 무궁화로 불리기도 하는 히비스커스(Hibiscus)였다. 원산지는 중국 남부, 인도 동부로 알려졌고 대략 250여 종이 지구별에 살고 있으므로 비슷한 모양의 꽃은 같은 종(Specie)에 해당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겠다.
아무튼 한 식물을 놓고 사람들의 관점은 서로 달랐다. 식물과 꽃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이 꽃은 관상용이겠지만, 히비스커스 차를 달여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약초나 다름없는 식물이다. 말린 꽃잎을 따뜻한(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봄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히비스커스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의 일종인 히비스신과 비타민C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피부 탄력을 높여주고 주름을 개선한다고 하므로, 눈에 확 띄는 여성분들이 계실 것 같다. 물론 중년 남성들도..
뿐만 아니라 멜라닌 색소의 침착을 억제해 기미와 잡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해준다고 하므로, 이러한 정보를 아시는 분들은 당장 히비스커스를 찾아 나서거나 구해다 심을 게 아닌가. 그런데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에서 나를 유혹한 이 꽃은 몸보신만 생각하는 분들과 생각이 조금 달랐다. 무엇이든 눈에 띄는 것이라면 먼저 입으로 가져가는 건 인간의 오래된 욕구 본능이랄까. 사람들은 그것을 세 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었지.
식욕. 성욕. 탐욕.. 전자의 두 욕구는 세상 모든 동물들이 다 가지고 있는 본능에 해당할 테고, 나머지 한 가지 탐욕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별난 욕망의 세계.. 우리는 이것 때문에 희로애락을 겪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꽃 한 송이를 놓고 어떤 이는 관상용으로 만족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굳이 몸보신으로 먹어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내게 히비스커스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고, 이탈리아인들이 왜 건강하고 오래 장수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생활문화가 그곳에 포함된 것이다.
#식물과 화초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어디를 가나 식물이나 화초를 가꾸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이 같은 추세는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이나 가게 곳곳에,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것.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식물과의 대화를 느끼게 되고, 그들만의 아픔까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타심이 생긴다. 또 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마음이 차분해져 오는 것.
일상에서 오만가지 번뇌를 느끼고 산다면 최소한 그 짧은 사간 동안은 지옥을 경험할 테지만, 비록 화려하진 않아도 식물 혹은 꽃 앞에서 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마음이 평온을 되찾으며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랄까. 따라서 식물의 화려한 유혹은 "내가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게"라는 신호라고 봐도 무방한 것. 마음을 잘 다스리면 장수하게 된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장수하는 직업군(아래 첨부 자료 참조)을 살펴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안다. 이랬다.
11개 직업군을 대상으로 48년 동안 조사한 결과 가장 오래 사는 직업군은 종교인으로 밝혀졌다. 평균 수명 80세를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관련 자료에는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적을 스트레스로 꼽았다. 사는 동안 스트레스가 끊이질 않겠지만 다스리는 방법도 중요한 것. 처방은 스트레스가 엄습하기 전에 세상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함께 욕심을 버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참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자기를 지켜내기 위한 일이라면, 좀 더 건강하게 오래도록 장수하고 싶다면, 당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과 노력이 필요할 터.
피렌체의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싱싱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시장 한가운데 널따랗게 펼쳐놓은 꽃가게를 빼놓을 수 없다. 관상용 식물과 식용 식물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이런 유혹이라면 언제든지 아무 때라도 푹 빠지고 싶은 생각은 어디 나뿐이랴. 가장 초라한 식단 하나를 소개하고 글을 맺는다.
#초라한 식단을 즐기는 93세의 노인
실화를 소개한다. 글쓴이가 잠시 몸 담았던 이탈리아 북부의 한 리스또란떼에서 알게 된 중요한 비밀(?)이다. 이 리스또란떼의 오너 셰프는 몸집이 작은 한편 동작이 매우 민첩했다. 꾸치나 내부를 다람쥐처럼 가볍게 사뿐히 이동하는가 하면 가끔씩 손님의 황당한 주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평 없이 후다닥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리의 달인이었다.
손님의 (예약 없이) 갑작스러운 주문에 생면 파스타가 단 5분도 채 안 걸리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져 뜨거운 물에 익혀지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오너 셰프는 글쓴이 또래의 나이로 여성이었으며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호박(맷돌호박)을 다듬어 달라는 주문을 한 다음부터 죽을 쑤는 재료 다듬기는 물론 죽요리는 내게 맡기다시피 했다. 나의 다듬기 기술은 이탈리아 요리 교과서가 요구하는 그 이상(?)이었으므로, 주문만 하면 표준 사이즈대로 단번에 척척 만들어지곤 했다(으쓱)
처음에는 그 죽요리들이 손님 테이블로 나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신의 아버지께 갖다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물음에 아버지 자랑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93세이며 아직도 책을 읽으시고 노트북(태블릿)을 펴 놓고 웹서핑은 물론 글까지 쓴다고 했다. 그런 한편 당신의 아버지가 가장 즐기는 음식이 죽요리란다. 죽이란다. 나는 그 죽을 쑤었지..
#미슐랭 별 하나를 가진 셰프가 만드는 죽요리
말이 좋아 죽요리이지 내가 만든 혹은 그녀가 만들어낸 죽요리 재료는 초라함을 넘어 "이게 과연 음식인가" 싶을 정도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것. 이유가 있었다. 보통의 야채 육수는 양파, 당근, 샐러리에 월계수 잎과 통후추 등 요리 특성에 맞게 끓여내면 끝. 그런데 효녀 셰프의 죽요리는 남달랐다.
기본 재료에 굵은 대파 쪼가리(조각) 작고 못생긴 감자. 쭈글쭈글한 사과 조각 등 냉장고에서 굴러 다니던 야채와 과일 몇 종이 힘을 합쳐 효녀 셰프를 도왔다. 마치 의정부 꿀꿀이죽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 이걸 뭉근하게 끓여 모든 재료가 부풀대로 부풀면 불을 끄고 시누아(원추형 여과기)에 육수를 따러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죽요리에 들어가는 것. 초라함의 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통은 육수를 끓여내고 나면 건더기는 전부 버리게 되나 그녀의 죽요리는 건더기를 재활용하는 것. 육수는 채에 한 번 더 곱게 걸러 병에 따러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건더기는 믹서기에 곱게 갈아 채에 받쳐 내리면 푸른색이 감도는 거무죽죽한 액체가 남게 된다. 여기에 적당량의 우유와 견과류는 물론 가끔씩 피셀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빠르마지아노 렛지아노 포르맛죠 가루 등이 첨가되는 것.
맨 처음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브라바_Brava"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죽요리는 잠시 쉬는 틈을 타 연로하신 아버지께 즉각 배달되곤 했다. 그녀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에서 미슐랭 별 하나를 가진 내로라하는 리스또란떼의 오너 셰프로,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자 그야말로 효녀였다. 오만가지 이탈리아 요리 중에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생각해 낸 요리였던 것이다. 그 후로부터 죽을 너무 싫어했던 나는 죽요리에 대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우리나라의 죽요리는 몸을 건강하게 보전하여 장수하게 만드는 양생 음식으로, 주재료에 첨가하는 부재료 등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었는데 굳이 효녀 셰프가 만든 죽요리를 우리 이름으로 붙여보라면 잡탕 죽(쥬빠 디 미스꿀리오_Zuppa di miscuglio)이 어울릴 것 같다. 글쎄.. 마치 이탈리아판 효녀 심청을 본 것이랄까. 그녀의 아버지가 아직도 정정하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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