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0. 2020

5월, 그곳에 철쭉이 핀다

#3 돌아갈 수 없는 한국의 명산

다시 한번 더 그곳에 가 볼 수 있을까..?!


서기 2020년 5월 20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시.. 간밤에 비가 오셨다. 그냥 오신 게 아니라 폭우를 쏟아부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떠내려 보낼 것만 같은 폭우.. 어쩌면 하늘은 그 시각 펑펑 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늘이 펑펑 울어댄 것은 5월을 저만치 보내는 별리 때문이었겠지.. 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세상을 천상의 낙원으로 바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왜 그 곁에서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느뇨..


5월이야 다시 올 기약이나 있지만, 우리네 삶은 한 번 돌아서면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 사람들은 뻔한 이치를 알면서도 모른 체 할 때가 적지 않다. 펑펑 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봐 가며 찌질 대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하늘은 다르다. 달랐다. 단지 별리 때문이 아니라 아무 때나 무시로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화가 나도 참지 않는다. 고통 또한 그러했지..  





5월 말, 6월 초에 가야 할 설악산 등산코스


아내와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니 까마득하다. 저 산 꼭대기에 만들어 놓은 좁은 오솔길을 따라 벌써 몇 시간째 걸었던 것일까. 그 깊은 산중에는 두 사람밖에 없다. 우리는 이른 아침 서울 강남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해 한계령 탐방지원센터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산행을 시작했다. 장수대에서 대승령까지는 깔딱 고개가 이어져 있어서 시작이 힘든 코스이다. 그리고 대승폭포대승령→귀떼기청봉→한계령 삼거리→한계령으로 이어지는 총 12.6km를 걸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의 걸음으로 대략 9시간 이상 소요되는 긴 코스이므로, 이 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 체력 소모가 꽤 많은 편이다. 또 코스에 한 번 들어서면 중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 코스가 없으므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고 안전사고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생수와 간식 및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5월에서 6월 초까지 이어지는 산행에는 여름 산행과 다름없으므로 생수를 넉넉히 챙겨야 어려움을 덜 겪을 것이다. 



그리고 단독으로 산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가급적이면 두 사람 이상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산행이 될 것이다. 대승령에서 귀떼기청봉(1577m)까지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은 한 사람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코스가 널려있다. 또 자칫 발을 잘못 디디거나 몸의 중심을 잃었을 때 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산행코스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설악산의 다른 봉우리보다 낮고 쉬운 코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귀때기청봉으로 이름 지어진 배경을 알고 나면 단박에 이해가 간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은 이 봉우리가 설악산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고 하므로 능선만 완만할 뿐이지 높이와 뾰족한 봉우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가 하면 관련 브런치에서 봐 온 설악산 서북주릉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설악산의 다른 코스에서 볼 수 없는 비경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중 5월 말경 혹은 6월 초에 서북능선에 오르면 특별한 선경을 만나게 된다. 봄이 저만치 물러가고 여름이 곧 시작될 무렵인 이맘때 속세(?)에는 꽃들이 주로 다 시들지만, 서북주릉 귀떼기청봉 주변에는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이다. 





5월, 그곳에 철쭉이 핀다


해발고도가 높은 이곳에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고나 할까.. 아내와 나.. 단 둘이서 그 희귀한 장면을 만나 잠시 천상의 황홀경에 빠져든 것이다. 그 현장은 이런 풍경을 연출했다. 아내는 앞서 걷고 나는 주로 아내의 뒤를 따라 걷는데 이유가 있다. 아내는 산행을 시작하면 뒤를 돌아보는 법이 거의 없다. 어쩌다 난관을 만나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무조건 앞만 보고 걷는다. 잠시 뒤를 돌아다볼 법 한데 앞만 보고 걷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잠시 멈추거나 뒤를 돌아다보면 맥이 풀려 걸음 걷기가 힘들다는 것. 


인간들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체는 제각각일까.. 나는 어디를 가나 주로 카메라를 지참하기 때문에 한 컷의 사진을 찍으면 대략 몇 초간은 소비하게 된다. 이런 동작이 반복될수록 아내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 나는 그동안 설악산 서북주릉에 펼쳐진 선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의 산하.. 



그중에서도 우리는 설악산을 너무 사랑했다. 설악산은 사계절 아무 때나 어느 곳을 찾아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 살면서 당신을 힘들게 한 찌꺼기 모두를 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넉넉한 가슴으로 보듬어 주는 곳.(엄마 아버지하고 많이 달라요. ^^) 우리는 마침내 철쭉이 군락 지어 핀 설악산 서북주릉 귀떼기청봉 가까운 곳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늦은 걸음걸이가 더 느려 터지고, 시선은 한계령 쪽 철쭉 군락지로 향하는 일이 다반사로 변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이 보다 더 명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시간은 매정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 때쯤이면 간밤의 폭우가 왜 그렇게 쏟아졌는지 넌지시 알게 되는 것이랄까.. 



우리는 이 산중에 버려진 듯 두 사람뿐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친구들과 형제들이 있다. 가족도 있다. 당신이 속한 집단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당신의 속을 알아줄만한 이는 몇이나 될까.. 당신의 아픔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데 우리가 다녔던 산들은 그러하지 않았으며, 어느 날 단 한차례 날을 잡아 화려한 잔치를 베푸는 곳. 그곳이 설악산 서북주릉이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해 보고 또 마음을 고쳐먹어도, 그곳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나라의 명산이자 차마 잊을 수 없는 곳, 우리의 발자취가 서북주릉 곳곳에 서린 곳이다. 이날 아내와 나는 초주검이 되어 귀떼기청봉 바위서렁을 건너 한계령 삼거리를 가까스로 통과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 서울로 다시 돌아갈 길이 꿈만 같다. 이맘때 그곳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있었지..


* 아래 영상은 가을에 촬영된 설악산 공룡능선 코스 일부로 아내와 함께 다녀온 여정입니다.

A maggio fioriscono le azalee_Taesŭng-nyŏng/Guiteghi-cheong 
Parco nazionale di Seoraksan alpinismo con Mia mogli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