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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4. 2020

뜨라니의 행복한 아침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맛보기

후반전 혹은 연장전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브런치를 열면 맨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은 뜨라니 항의 조용한 아침 풍경이다. 장화 모양을 닮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지도를 펴놓고 보면 장화 뒤꿈치에 아래쪽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가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뿔리아 주의 바를레타안드리아 뜨라니(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 in Puglia.)와 함께 3개의 현이 모여 각각의 수도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각 도시에는 대략 10만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아내와 내가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를 열독자들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부연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어서 다시 한번 더 짧게 설명을 곁들이면 이러하다.



우리가 피렌체서 살고 있을 때 자주 들른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으로 가는 길에 한 아티스트를 만나게 됐다. 그는 재래시장 입구 롯지아 델 뻬쉐(Loggia del Pesce)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피렌체의 한 유명 아카데미에서 그림 수업을 끝마치고 그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그 장소는 피렌체의 역사지구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롯지아 델 뻬쉐의 지붕 아래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길바닥에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는 시장으로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을 만나게 되었으며 금방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의 화풍은 독특했으며 아내를 그에게 그림 지도를 받을 수 있는지 묻게 됐다. 그는 흔쾌히 그림 지도(수업)를 수락했는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일주일에 한두 번 그의 고향 바를레타를 오가며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집으로 돌아와 그림 수업이 가능한지 심사숙고했지만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수업비용이나 교통비 등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림 수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봄에 우리는 다시 조우하게 됐다.


새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그가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것이다. 반가웠다. 그의 이름은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 우리는 그를 루이지라 불렀다. 그리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다시 그림 수업에 대한 관심사를 이어갔다. 우리가 아예 거처를 옮기는 방안까지 이어지며 아예 바를레타로 이사를 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아내의 건강상태도 별로 좋지 않아서 치료차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한국생활을 청산하는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루이지와 함께 바를레타에 들러 우리가 장차 살게 될 집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결심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아내가 한국으로 출국을 한 다음 루이지와 나는 바를레타에 함께 들러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하게 됐다. 대략 열흘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루이자와 나는 바를레타 곳곳을 이 잡듯 뒤졌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아드리아해의 보석답게 구시가지는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사람들이 넘쳐났으며 활기가 넘쳤다. 과연 이 도시가 1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나는 뷰파인더는 새로운 호기심에 넘쳐나 도시를 뒤지는 동안 연신 셔터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루이지의 부모님과 그의 사촌들 그리고 숙모 등을 만나게 됐는데 너무 친절했다. 그들은 나를 마치 친형제처럼 대하며 반가워했다. 단지 루이지의 손님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반갑게 대하며 장차 이곳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어느 날 루이지의 아버지 프랑코는 내게 반가운 제안을 했다. 또래의 그는 내게 "생선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었다. 내 고향은 부산.. 나는 생선 킬러라고 브런치에 여러 번 강조했다. 그래서 "해산물 모두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내일 바를레타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뜨라니(항구)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는 묻지도 않는 말을 덧붙였다. 뜨라니 항에 가면 날로 먹을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프랑코의 말을 들으며 한국에서 먹던 생선회가 단박에 머리를 스쳤다. (흠.. 내일 아침이면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고..^^)



바를레타에서 뜨라니까지 거리는 12.8킬로미터로 자동차로 이동하면 20분에서 3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는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프랑코와 루이지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세 사람은 뜨라니 항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아담한 항구에는 요트들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항구 입구에 조성된 성벽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프랑코에게 "뜨라니항이 참 아름답다"라고 말했더니 프랑코는 대뜸 별것 아니라고 둘러댓다. 그는 당신이 태어난 "바를레타가 더 아름답다"며 일축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열등감이 묻어나 보였다. 바를레타는 바를레타대로 뜨라니 보다 더 나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지만, 항구만 비교하면 바를레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뜨라니항이 아름다웠다. 



자료를 뒤적거려 보니 뜨라니 항이 조성된 시기는 시칠리아 왕국의 페데리코 2세 때부터였다. 시칠리아 왕국이 번성한 시기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군사와 무역을 담당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시칠리아 왕국(1130년부터 1816년까지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던 왕국)이 전략적 요충지로 번성하며 나폴리 왕국과 합병될 때까지 더불어 번성한 곳이 뜨라니였다. 같거나 비슷한 이유로 바를레타 안드리아 바리 등 이탈리아 남부로 이어지는 항구와 도시들은 조각 작품을 보는 듯 잘 건축된 아름다운 도시였다. 



서두에 후반전 혹은 연장전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고 끼적거렸다. 어쩌면 아내와 나의 삶은 이곳 바를레타에서 시작하여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이와 형편 등을 감안하면 이제 더 다른 지역으로 둥지를 트는 것은 무리한 일이자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던 것. 따라서 아내의 그림 수업이 시작되면 그동안 작당해 두었던 계획을 야금야금 실천에 옮겨볼 요량인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이 그렇게 시작될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탈리아 전역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지천에 널린 곳이다.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이탈리아만 한 곳도 없을 것.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명소는 주로 한 곳에 편중돼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주와 베네치아 주 그리고 토스카나 주와 라찌오 주 등이 세계인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자 유명한 유적지가 산재한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찮게도 그림 수업 때문에 알게 된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는 여행 마니아에게 여행의 묘미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불어넣고 있었다. 역사유적지는 점점 더 멀어지는 한편 우리 앞에 펼쳐진 대자연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잘 몰랐던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눈팅하는 동안 우리가 몰랐던 주옥같은 명소가 말 그대로 천지 뻬까리로 널려있었다. 맛깔난 요리를 음미하듯 우리 앞에 놓인 밥(?)은 수저만 뜨면 되는 것. 인생은 짧고 볼거리는 천지 뻬까리다..!! 


* Coronavirus in Italia: 229,327(확진자+669) casi, 32,735(사망자+119) morti, 138,840(치료자+2,120) i guariti -Il bollettino al 23 Maggio. (출처: www.worldometers.info)

Mattina felice di Trani_Gustare la Melia meridionale dell'Italia
il 23 Magg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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