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달팽이의 화려한 외출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어느덧 닷새 전의 일이다. 아내는 아침 산책 중에 달팽이 두 마리를 주워 집으로 데려왔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달팽이 요리를 위해 주워 온 것도 아닌데.. 아마도 아내가 달팽이를 주운 이유는 생명을 귀히 여긴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달팽이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치며 탈출을 시도한 모양이다. 달팽이의 꼼지락 거림이 손을 간지럼 태운 것이다.
*위 자료사진은 아드리아해가 코 앞에 보이는 바를레타 외항 방파제 입구의 풍경으로 아래 풀숲에 달팽이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이날 모처럼 달팽이 성체를 만난 나는 녀석을 화분에 올려두고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녀석은 배가 고팠던지 순식간에 화분에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꽃 한 송이의 절반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녀석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해 질 녘.. 녀석은 대리석 벽에 달라붙어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녀석은 그곳에서 응가를 푸짐하게 싸 두었다. 가느다란 털실 한 조각을 돌돌 말아둔 것처럼 벽에 달라붙어 똥을 싸 부친 것. 그리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달팽이는 어린 시절 기억 저편에서 어렴풋이 남아있었고 또 아침 산책에서 무리지은 달팽이를 본 적 있지만, 성체를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해 보긴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나는 이때부터 달팽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잘 키우면.. 아니 키우는 과정에서 반려동물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 등을 발견하게 될 게 틀림없었다. (녀석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 거 있지..^^) 또 녀석의 느릿한 움직임과 더듬이질을 통해 우리 인간과 또 다른 생명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의 행동은 즉각 달라졌다. 달팽이를 반려동물로 삼기로 작정한 것이다. 기왕에 집에 데려왔으므로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 따라서 인터넷을 뒤져 달팽이의 정체성은 물론 사육 방법 등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녀석은 꽤 까칠했다.
반려동물로 사육하기 잘 기르기 위해서는 녀석을 청정한 자연환경에 비견되는 공간을 연출한 테라리움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온도에도 민감해 섭씨 20도씨 근처를 유지해 주어야 했다. 또 부드럽게 생긴 외모와 달리 습도를 100% 유지해 주어야 하는 매우 까칠하고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이날부터 달팽이 한 마리 때문에 생각은 온통 녀석에게로 향했다. 따라서 날이 밝으면 테라리움을 준비하고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식물)을 준비해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순간포착, 포식하는 달팽이 편에 기록하고, 두 번째 시간으로 달팽이 관찰일지 달팽이와 함께 놀아요 편을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달팽이 집을 마련하고 형제들을 구출하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달팽이가 살아갈 테라리움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아침이었다. 달팽이 한 마리에 커다란 테라리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므로, 자웅동체인 달팽이 한 두 마리가 살아갈 공간으로 넉넉한 대용품을 생각했다. 대용품은 5리터 들이 플라스틱 포도주 병이면 마침맞다고 생각한 끝에 재활용품장에서 플라스틱병 하나를 줏었다. 그리고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옮겨 적당한 식물을 채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비에 젖은 인도 곁에서 달팽이들이 무리 지어 어슬렁 거리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인도 위에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은 달팽이가 여럿 목격되었다. 평소 풀숲에서 지내던 녀석들이 촉촉하게 젖은 맨땅이 그리웠던지 산책을 나왔다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나는 즉시 달팽이 구출에 나섰다. 눈에 띄는 성체 7~8마리를 순식간에 봉지에 담아 들고, 녀석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주변의 식물은 물론 조금의 흙까지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달팽이와 함께 놀아요
본격적으로 달팽이를 반려동물로 기르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테라리움으로 사용할 포도주병은 위쪽을 절개하고 아래쪽은 작은 구멍을 뚫었다. 식물을 뿌리째 흙과 함께 심어놓고 물을 주면 빠져나갈 수 있어야겠지.. 그리고 덮게는 1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거꾸로 덮었다. 근사한(?) 테라리움이 완성됐다. 그리고 깨끗이 세척한 테라리움에 식물을 이식하고 먼저 데려온 녀석과 나중에 데려온 녀석 전부를 합방시켰다.
갑자기 테라리움 내부는 달팽이 왕국으로 변했다. 이때부터 나는 달팽이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한 녀석이 아니라 여럿이었으므로 '아이들'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녀석들을 아이들이라 부르니 묘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무릇 생명을 기르는 일은 귀하디 귀한 일이다. 인간을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으면 무릇 생명을 가진 개체 전부는 귀하디 귀한 것.
* 위 자료사진은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바닷가 풍경(뒤로 방파제가 보인다)으로, 달팽이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장소와 가까운 곳이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을 식용으로 요리를 해 먹지만(미안하구나 아이들아ㅜ),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그럴 일은 없을 것. 형편이 나아지면 비닐로 만들어진 테라리움에서 보다 고급진 곳으로 이사를 할지 누가 알아.. 아이들은 이때부터 반려동물이 되어 아침저녁 두 번씩 나의 보살핌을 받게 됐다. 아침 산책이 끝나 귀가하는 즉시 스프레이로 아이들의 집 청소를 깨끗이 하고 응가까지 말끔히 치운다.
똑같은 방법으로 저녁이 되면 다시 반복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무척이나 친근감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은 몇 번에 걸친 청소와 보살핌이 이어지는 동안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운동을 하는 것. 놀랍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테라리움을 빠져나와 곳곳에 똥을 싸 부쳤다.
마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 것 같은 일이 작은 테라리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을 일일이 주워 테라리움에 담고 덮게를 씌우는 것. 녀석들의 지능지수는 얼마나 될까.. 희한하지. 그때부터 아이들은 코~~~ 잠들기 시작하여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가 이런 상황을 말할 때는 '기특하다는 뜻'의 다른 표현을 쓴다고 했다. 아이들의 일기는 계속된다.
에구 인간보다 더 낫구나..!
*아래는 아이들의 생활을 달팽이와 함께 놀아요라는 제목으로 차례로 구성해본 영상이다. 테라리움 내부를 청소하고 있는 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소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24일, 16:58 GMT) 이탈리아의 꼬로나 비루스 사태(COVID-19)가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처음으로 확진자 수가 531명에 이르렀고 사망자 수는 급감하여 두 자릿수 50명을 기록했다. 놀라운 일이자 기쁜 일이다. 이탈리아 보건 당국과 의료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 Coronavirus in Italia: 229,858(확진자+531) casi, 32,785(사망자+50) morti, 140,479(치료자+1,639) i guariti -Il bollettino al 24 Maggio. (출처: www.worldometers.info)
Gioca con le Lumache_una bella lumaca
il 24 Magg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