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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5. 2019

지나갔다고 다 그리움이더냐

향수_La Nostalgia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을 몰라야 봄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지..


지난 3월 8일의 일이다. 우리 내외는 버릇처럼 도시락을 챙기고 피렌체 중심을 거쳐 아르노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골목길을 따라 작은 언덕에 올라서면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 참 아름다운 장소. 언덕배기의 길을 계속 따라가면 토스카나 주의 넘실대는 풍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의 이름을 전망좋은 길(Via di bellosguardo)이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들과 피렌체에 오래 살아왔던 원주민들만 주로 애용하는 길. 이 길은 피렌체의 구시가지와 함께 중세의 피렌체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물론 이끼낀 담장 너머로 빼곡하게 심어둔 올리브 나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포근하고 편하게 만드는 한편 다시 한 번 더 찾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아내가 올리브나무 숲을 보자마자 감탄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너무 좋다'는 표현을 남다르게 한다.


'에궁 뭐 이딴 게 다 있어..!!"



내가 세차례 이 길을 걸었다면 아내는 두 차례 이곳을 나와 함께 걸었다.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아내와 함께한 동행이었으므로 어느덧 다섯번째 이 길을 나섰던 것. 이탈리아 요리 유학 당시 내가 걸었던 길을 아내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또 이날은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여성들의 권리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궐기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22년부터 여성의 날(Festa della donna)을 제정하고, 이날은 여성들에게 미모사(Mimosa pudica)꽃을 선물하고 있었다. 이날 피렌체 시내 곳곳은 물론 학교와 관공서 할 것 없이 노오란 미모사 꽃술이 지천에 널렸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우리는 전망좋은 길을 따라나섰던 것. 그곳에서 잊고 살던 그리움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아내는 모른다. 절대로 모른다. 내가 한 번도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눈치 조차 채지 못했다. 요리 유학 중에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짬짬이 이 길을 걸으면서 "언제인가 아내와 함께 이 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들.. 그런데 그 생각들이 어느날 현실의 옷을 갈아입고 내 곁에 있는 게 아닌가. 놀라운 일이자 사건이었다.



아내는 저만치서 앞장 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담장 너머로 미모사 고목이 노란꽃술 한가득 머리 위로 퍼붓고 있었다. 일부러 미모사를 찾아나선 것도 아닌데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모사가 만개해 있었던 것. 더 놀라운 일은 나중에 나타났다. 언덕길을 올라 전망좋은 길을 따라 나서는데 담벼락 한 곳에서 앙증맞은 하얀 꽃들이 얼굴을 내밀며 뷰파인더를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동안 잊고 살던 또 하나의 그리움이랄까..



3월이 오시면 늘 마주치던 장면들.. 잠시 잊고 살았던 향수병(鄕愁病)이 담벼락에 기댄채 우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것. 너무 반가웠다. 매화를 쏙 뻬닮은 봄의 요정들이 옹기종기 한 곳에 모여살고 있었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리움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이날 내 곁에는 향수를 달래주는 두 사건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다. 일어났었다. 그리고 나는 까닭도 모른채 다시 봄을 기다리겠지..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을 몰라야 봄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지..



La Primavera della citta' di FIRENZE
08 Aprile 2019 Via di bellosguardo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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