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월의 바를레타 평원_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아
영화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들..!!
황금색으로 변한 마른 풀이 바람에 서걱대는 이곳은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평원(la pianura di Margherita di Savoia, Barletta)으로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 in Puglia)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틀 전(6월 1일), 아내와 나는 용케도 명소 한 곳을 발견하고 오늘(2일 현지시각) 아침 다시 찾아 나선 곳.
바를레타 시내 중심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곳은 주변이 온통 포도원과 야채를 기르는 경작지가 대부분이다. 아드리아해로부터 대략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랄까. 바닷가 사구 너머에 비옥한 토지가 펼쳐진 이탈리아 남부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바를레타 시내 근처에 있는 경작지들은 조금은 세련되고 잘 가꾸어진 게 특징이라면, 이곳은 경작지 주변이 온통 풀밭으로 뒤덮여 있고 풀꽃들이 빼곡하게 널린 곳이다. 농로를 따라 명소를 물색하다가 만난 이곳은 사방이 탁 트였을 뿐만 아니라 뷰파인더를 괴롭히는(?) 장애물이 거의 없는 곳으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 곳이었다.
풀꽃들이 널린 평원 위로 바람이 스치면 마른풀이 서걱대며 가을을 재촉하는 곳. 뭇새들은 모습은 감춘 채 일렁이는 바람에 따라 쉼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이런 풍경도 다 있었나"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익숙한 로마시대 전후의 유적들에 한눈을 판 사이 버려진(?) 명소라고나 할까. 나는 이곳에서 늘 목말라했던 글쓰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넌지시 깨닫게 됐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거의 매일 기록을 하면서부터 "이렇게 되었으면 좋을 텐데.." 혹은 "더 나은 기록 수단은 없을까..?"를 궁리해온 것이다. 요즘 나뿐만 아니라 이웃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브런치는 진일보하여 이전의 기록 수단보다 뛰어난 모습이다. 컴퓨터를 사용해온 이래 이렇듯 훌륭한 기록 수단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죽기 전에 우리네 삶을 하나라도 더 기록해 보고 싶어 진 것이다.
특히 내게 있어서 브런치는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소원 하나를 이룬 것과 다름없는 매체였다. 피씨를 사용해 나의 브런치를 열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큼지막한 사진이 스펙터클(spectacle)한 느낌을 배가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사진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또 모바일에서 열어본 브런치의 글은 21세기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인 미디어 시대가 낯설어 보였지만 이제 거의 일반화되었다고나 할까.
유튜버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인터넷 유저들이 쏟아내는 콘텐츠들은 존재감을 극대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불량한 미디어와 영화 산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등극한 것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특정 분야에서는 이들 매체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우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기존의 콘텐츠 문화를 넘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된 매체와 달리 브런치의 글쓰기는 매우 원시적인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여전히 텍스트에만 의존한 글쓰기를 고집하면서 글쓰기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엉덩이와 키보드만 옮긴 듯한 풍경이 눈에 띄는 것이다. 공책 혹은 잡기장에 글을 쓰던 습관이 피씨로 옮겨지고 이를 다시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아날로그 형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과 아날로그가 형제처럼 뭉쳐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 브런치만 해도 다양한 툴이 존재하는 데도 사진 몇 장과 글쓰기가 전부나 다름없는 것이다. 나를 애태운 게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평면의 글쓰기로부터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방법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는가 싶었던 게 나의 숙원이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브런치의 글쓰기 내용보다 형태에 보다 집착한 나머지 여러 시도를 한 끝에 최근에는 <포토 칼럼>을 끼적거려 왔다. 컴 앞에 앉아 별로 영양가 없는 글을 오랜동안 끼적거리는 게 "이래도 괜찮나.."싶은 생각을 들게 한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브런치를 통해 영화 같은 느낌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겠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독자분들이 보고 계시는 바를레타 주변의 풍경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영화 제작 과정은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고 있다. 글쓴이 또래의 가난한 시절(국민학교 출신들) 특별한 추억이 있을 것. 여름밤 학교 운동장 한쪽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영화를 기억해낼 것이다. 요즘처럼 영화가 최고의 문화로 자리잡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여전히 신기하기 짝이 없는 문화였다.
동네의 남녀노소 모두는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하면 학교 운동장에 퍼질고 앉아 곧 펼쳐질 흑백영화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사하고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스크린에 비추어지면서 나타나는 형상들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이런 문화는 곧 환등기 붐을 일으키며 아이들을 무성영화의 변사(辯士)처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흑백영화 시대는 금방 사라지고 언제부터인가 칼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문화는 물론 매체들도 신문에서 라디오로 다시 티브이로 매우 빠른 속도로 옮겨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하루가 다른 시절처럼 학교 운동장에 서보던 흑백 영화처럼 저만치 과거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영화 또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최근에는 문화예술적 가치를 뛰어넘어 경제적 가치로 부상한 지 꽤 오래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들은 영화에 목말라 있는 것이랄까.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은 이와 관련해서 "영화는 관객을 길들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종합예술로 등장한 영화는 만드는 과정이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묘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한 번 맛 들이면 영화로부터 헤어지지 못하는 것. 사람들은 영화가 소설처럼 개연성을 가진 것을 잠시 잊어버린 채 영화의 줄거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운명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그려 넣기 시작하는 것.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혹은 드라마를 보고 난 사람들이 "아..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걸.."하고 미련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팩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르는 많은 차이를 보이겠지만..) 나 또한 보통사람들처럼 영화에 길들여졌던지 아니면 미디어에 길들여지 탓에, 오늘 아침 바를레타 평원 위에서 우리네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브런치의 글쓰기처럼 기록 수단을 총동원해 특정인의 삶을 영화처럼 끼적거리거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리고 짧은 줄거리가 엿보이는 우리네 삶의 여정을 필름(영상)에 담아본 것이다. 내가 연출자가 되고 아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혹은 둘 다 연출과 제작 등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영화 같은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끝.
작가노트
그 평원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들풀들을 서걱거리게 만들며 아드리아해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볕에 반짝이는 들플들..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들.. 행운이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꿈꾸어 왔던 삶이 이런 것일까.. 나의 넋이 바람을 따라 먼 곳 동쪽으로 이동하면, 그곳에 흑백영화 한 편이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 곳. 서기 2020년 6월 2일 오전 9시경.. 우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바를레타 평원 위에 서 있었다. 바람과 들풀과 풀꽃.. 그리고 아내와 나.. 영화와 인생이 다른 점이 있었지.. 영화는 필름을 다시 돌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삶은 두 번 다시 돌릴 수 없는 운명이었지.. 오늘따라 기록이 무엇보다 소중해진다.
Nota dell'autore
Il vento soffiava sulla pianura. Il vento soffiava sulle distese paludose e se ne andava oltre il mare Adriatico. Le follie luccicanti. I fiori dell'erba che ondeggiano al vento. E' stata una fortuna. E' questa la vita che ho sognato per tutta la mia vita. Se mi muovo verso est, seguendo il mio vento, dove c'è un film in bianco e nero che rimane nella memoria. Verso le 9 del 2 giugno 2020. Eravamo sulla pianura di Barletta come una scena in un film. Il vento, le erbe e i fiori. E io e mia moglie... C'era una differenza tra cinema e vita. I film possono essere girati di nuovo. Sfortunatamente, la nostra vita era destinata a non poter tornare indietro. Oggi il disco è molto curato.
* Coronavirus in Italia: 233,515(확진자+318) casi, 33,530 (사망자+55) morti, 160,092(치료자+1,737) i guariti -Il bollettino il 02 Giugno. (출처:www.worldometers.info)
FILM_UNA SCENA CINEMATOGRAFICA
il 02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