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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4. 2020

이탈리아, 장화 뒤축이 궁금했다

-풀꽃이 피어있는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포구 

참 아담하고 예쁜 포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사구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 그곳에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Margherita di Savoia)가 위치해 있었다. 바를레타의 바닷가에서 아침 산책이나 운동을 다녀온 후 지도를 펴 놓고 보면, 바를레타에 인접한 작은 도시였지만 걸어서 가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곳은 1879년까지 바를레타 염전(Saline di Barletta)으로 불린 곳으로 널따란 염전이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었다. 인구는 대략 12,000명이 살고 있는 곳으로, 2004년까지 뿔리아 주 포지아 지방(provincia di Foggia)의 일부였다. 작은 도시는 볼뚜르노와  바센토 다음으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인 오판토 입구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 가면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는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포구(浦口)를 만나게 되고, 포구 끄트머리에 서면 저 멀리 이탈리아의 장화 뒤축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지난 6월 2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다녀온 이곳은, 마치 동화 속의 마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낯익어 보였다. 아담하고 예쁜 포구가 염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어부들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포구를 보는 순간 내 고향 부산을 단박에 떠올렸다. 크기는 전혀 비교가 안되지만 작은 어선들이 즐비한 포구 곁을 걸어서 돌아보니 오래 전의 추억이 머리를 스치는 것. 아내는 이곳에서 생선을 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포구에서는 구입할 수 없고 사내 중심의 뻬스께리아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포구에서 소매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의 토박이였다. 나는 이곳 포구에서 흔치 않은 풍경을 본 즉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이탈리아인들의 DNA 속에 자연스럽게 박혀있는 습관들이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아무 데나 담배꽁초나 휴지를 버릴 망정 그들 곁에 피고 지는 풀꽃들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풍경이 이곳에서는 매우 관대한 것이다. 심지어 집 앞 계단에서 자라고 있는 들풀이나 풀꽃 조차 그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곳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포구에서도 습관은 이어지고 있었다. 계선주(繫船柱_배를 매어 두기 위하여 부두나 잔교, 계선안 등에 마련해 둔 기둥) 곁으로 샛노란 풀꽃들이 볕을 머리에 이고 반짝이고 있었다. 풀꽃이 피어있는 포구.. 바를레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바를레타 항구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아담한 포구가 매력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선사시대 때부터 르바로, 깐델라브로, 까라뻴레 강(i fiumi  CervaroCandelabro e Carapelle)이 하구로 밀어낸 많은 모래들 때문에 편평한 해안과 석호를 만들었는데, 오늘날은 염전과 함께 바캉스 시즌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고대에는 소금이 진흙투성이의 토양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지만, 오늘날은 염전을 통해 대대적으로 소금을 생산해 오고 있었던 것. 



이곳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정착한 시기는 기원전 4세기로 달마찌아(Dalmazia)에서 상륙한 일리아인(gli Illiri)들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아르삐, 살삐, 깐네 사이( tra le città di Arpi, Salpi e Canne)의 전략적 위치를 이용하여 동양과 무역을 통해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같은 일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염전은 고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당시 이 장소는 로마 이전 중심지인 살라피아(preromano di Salapia)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뷔아 살라리아(la via Salaria)를 지나 아드리아 해로 진출한 것이다. 



그로부터 서기 13세기에 산타 마리아 드 살리스(Sancta Maria de Salis )가 되었고, 12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살리나스는 바를레타의 말라리아와 사라센 습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회(chiesa di Sant’ Agostino) 주변에 피난처를 찾았다.. 는 등,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작은 도시와 포구에 재밌는 역사와 함께 풀꽃이 볕을 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출발해 10분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로 돌아올 수 있는 지근거리에 무수한 역사들이 염전의 소금 알갱이처럼 많은 곳. 우리는 차근차근히 이탈리아 남부 곳곳으로 지경을 넓여갈 것이다. 끝.


*아래는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포구를 담은 자료와 영상으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Saline di Barletta, Margherita di Savoia, le saline più grandi d’ Europa


.. In antichità il sale si formava in modo spontaneo all’interno di conche, cioè delle depressioni nel terreno argilloso:  nelle fasi di alta marea l’acqua del mare entrava nelle zone basse del vecchio lago Salpi e successivamente evaporava, depositando il sale che poi sarebbe stato raccolto. I primi insediamenti risalgono al IV secolo a.C. quando gli Illiri, sbarcati dalla Dalmazia, colonizzarono questa zona e la resero fertile e fiorente: sfruttando la posizione strategica tra le città di Arpi, Salpi e Canne, favorirono il commercio con l’Oriente. Dal III secolo a.C. le saline furono territorio di dominio dell’ Antica Roma, quando il sito era conosciuto con il nome di Salinis, dipendente dall’importante centro preromano di Salapia e da cui passava la via Salaria, che dal mar Adriatico portava fino a Roma. Dal XIII secolo d.C. divenne Sancta Maria de Salis e, tra il 1200 e il 1300 i salinari, per sfuggire alla malaria delle zone paludose e alle incursioni saracene, si rifugiarono attorno alla chiesa di Sant’ Agostino a Barletta fondando Salinelle di Barletta..

-da Saline di Barletta, Margherita di Savoia, le saline più grandi d’ Europa


Saline di Barletta_Margherita di Savoia
il 04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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