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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6. 2020

아내와 절구통

-한국서 공수해온 낯익은 조리 도구

아내는 왜 절구통에 집착하는 걸까..?!!


   서기 2020년 2월 23일,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재회한 아내와 나.. 이날을 잊어버릴 수 없다. 아내는 인천공항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이후 피우미치노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반가웠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코로나 비루스 때문에 난리가 아니었다. 코로나 비루스 통계치에 따르면 중국이 부동의 1위를 한국이 2위를 달릴 정도로 한국은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따라서 한국에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려던 사람들은 예약을 취소하거나 환불을 할 정도로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이탈리아행을 결정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금년까지 우리는 대략 7개월 동안 서로 헤어져 살았다. 아내가 피렌체서 한국으로 귀국한 이유 중에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진료와 처방이 중요한 일정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이탈리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을 땐 볼 일이 끝났을 뿐만 아니라 건강이 호전된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국의 위험한 코로나 사태가 등을 떠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동안 아내는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면서 볼 일을 보고 무시로 이탈리아로 공수해 올 양념 등을 챙기고 있었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된 내용이지만) 아내는 이탈리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식재료를 챙기느라 동분서주했다. 



아내의 음식 솜씨를 더해주고 당신의 식습관을 챙겨줄 식재료와 양념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멸치, 다시마 등이 케리어 두 개를 빼곡하게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화기 너머에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가져갈 물품 때문에 가방이 비좁거나 무게를 개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품목을 일일이 불러달라고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점검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아내는 한국에서 공수해 올 품목의 수와 량 때문에 가방 하나를 더 샀다고 말했다. 내용물을 자세히 알 수 없었으냐 가방이 좁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바를레타서 로마로 가는 내 손에는 케리어 하나가 더 들려있었다. 아내가 입국장에 들어서면 가져온 물품을 나누어 담을 요량이었다. 



공항에서 아내와 재회한 직후 아내의 안부도 채 묻기도 전의 나는 매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온 수레에 실린 가방을 나누어 준비해 간 케리어에 옮겨 담는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은 빨라야 했다. 로마에서 바를레타로 가는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짐을 나누는 순간부터 역전으로 달려가야 했다. 용케도 우리는 바를레타행 막차를 타고 로마 떼르미니 역에 도착하고 다시 바를레타 역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동안 기차 안에서 엎드려 졸고 있었다. 여행의 피곤이 일시에 몰리면서 짧지만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챙겨 온 한국의 식재료 등을 끄집어 내 확인을 했다. 아내가 인천공항을 떠나기 전 전화기 속에 늘어놓은 푸념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내는 공항에서 추가 금액(Over Charge)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차고 넘치는 공수품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이다. 케리어 두 개와 짐가방 하나에 실은 물건들은 마치 이삿짐을 방불케 했다. 빈 공간을 채운 건 물론 가방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런데.. 가방 속에는 진짜 돌덩이가 들어있었다.(맘마미아!!ㅜ) 



그것은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세라믹 절구통이었다. 작은 크기의 절구통이었지만 무게가 2킬로그램은 족히 넘는 조리 도구였던 것. 아내는 전화통화 당시 절구통의 존재를 숨기고 말했다. 절구통을 가져간다면 내가 분명히 NO!!라고 대답하며 짜증을 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쩐 일인지 아내는 힘든 일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케리어 속에서 쏟아져 나온 귀중한 식재료 외 절구통의 존재를 닮은 품목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아내가 애지중지 하던 물건들이었다. 그중에 절구통은 단연코 눈에 띈 조리도구였다. 


스크롤바를 내리면서 봐 온 자료사진들은 아내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하나씩 모아둔 사진들로 아내의 오래된 습관들이었다. 웬만한 음식에는 마늘을 찧거나 참깨 등을 빻은 후 깨끗이 씻어 말리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풍경을 오래전부터 보고 자란 1인이다. 



어머니께서는 작은 절구통은 물론 방앗질을 하는 화강암 절구통까지 곁에 두고 사셨다. 작은 절구통은 아내처럼 마늘을 찧거나 작은 크기의 식재료를 빻아서 사용하고, 큰 절구통은 메주를 빻거나 찰떡을 빚을 때 사용했다. 특히 가마솥에서 콩를 삶은 다음 절구통에서 삶을 콩을 찧는 과정은 매우 힘든 공정이었다. 어린 내가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머리가 컷을 때.. 메주를 쑬 때면 도망 다닌 게 후회스럽다.(어머니 용서하세요.ㅜ) 그 힘든 일을 어머니께서 도맡아 하시면서 7남매를 기르신 것이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어머니로부터 발현된 것이다. 아내의 절구통을 앞에 두고 생각해 보건대 절구통의 쓰임새는 다양했을 것 같다. 종갓집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께서는 아주 가끔씩 동서들(숙모님)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재삿날이나 명절 때 일손을 좀 더 거들어주었으면 싶어 했던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가 만든 아내가 좋아하는 간단하고 기막힌 맛의 감자요리.. 짬나면 리체타를 소개해 드린다.


그때쯤이면 어머니의 어깨가 갑자기 철인으로 변한 듯하다. 절구질이 보다 거세지며 소리까지 커지는 것이다. 절구통은 분풀이 통이자 우리 어머니 세대의 한풀이 통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지아비의 좁쌀 타령이나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지면 슬픔을 담아 내리 찧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기쁨을 담아 쿵~더쿵! 쿵~더쿵..!! 한풀이 절구통 혹은 신명 나는 절구통이었을 게 짐작이 간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부터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위해 큰 돌절구 대신 무쇠로 만든 작은 절구통으로 바꾸었지만 이번에는 절구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의 절구통을 보면서 어머니와 함께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 보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현재까지 꾸준하게 요리를 연구 중이다. 무엇이든 원리를 터득하고 나면 특정 분야를 재밌게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노는 게 일이다. 저 놈의 절구통 때문이다. 아내가 한국에서 다시 돌아오면서 가져온 귀중한 식재료와 돌절구가 이탈리아 요리사의 손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냥 놀 수만 없어서 아내에게 보란 듯이 감자요리를 만들어 한 접시 융숭하게(?) 대접했다. 아내는 내가 만든 감자 요리가 너무 맛있다며 후다닥 해치웠다. 그런데 가끔씩 만들어 내는 나의 음식에서 마늘을 아예 쏙 빼 버렸다. 혹시라도 절구통을 사용하지 말았으면 싶은 내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의 절구질과 마늘 타령은 빠지지 않는다. 


자기.. 나, 마늘 좀 찧어주면 안 잡아 묵~찌!!


그동안 내가 혼자 해 먹던 이탈리아 샐러드는 모조리 아내가 찧은 마늘과 참깨 등이 아내 손에 조물락조물락 조무려져 식탁에 오르는 것. 아무튼 어머니 때로부터 전해온 기막힌 맛이다. 그다음 잘 씻은 후 볕에 말리려고 내놓은 절구통을 짬짬이 사진에 담은 것이다. 아마도.. 아마도 아내의 이런 습관은 우리 선조님들이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에 물려준 유산이자, 조리 철학이 깃든 심오한 조리도구가 아닌가 싶다. 여인들의 한과 슬픔과 기쁨 등이 동시에 깃든 우리의 문화가 아내의 가방 속에 숨어들어 이탈리아까지 온 것이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Strumenti di cottura in volo in Corea
il 13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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