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내를 유혹한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나는 누구의 해바라기였던가..?!!
서기 2020년 7월 13일 오전 6시 30분경, 아침 산책 중에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가는 중에 바를레타 사구에 줄지어 핀 해바라기를 목격하게 됐다. 녀석들은 아침 햇살을 얼굴 가득 분칠하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오라 손짓한다. 줄지어선 해바라기들.. 누구를 기다리시는 걸까. 푹푹 빠져드는 밭이랑을 따라 해바라기(Il girasole comune (Helianthus annuus) 곁으로 다가섰다.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는 해바라기.. 어떤 해바라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어떤 해바라기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이들 또한 나처럼 아침햇살을 반긴 것일까.. 꽃의 지름이 3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해바라기는 이름처럼 봉오리가 맺혔을 때까지 해를 보며 자란단다.
꽃이 태양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굴광성을 가진 식물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어린 시기에만 햇빛을 따라서 동서로 움직이며, 꽃이 피고 나면 줄기가 굵어져서 몸을 돌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일편단심 해바라기.. 사람들은 해바라기의 모습을 흉내 내어 '누구누구의 해바라기'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도 해바라기처럼 사는 동안 한 사람만 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해바라기는 유년기 때부터 장독대 곁에서 나를 반긴 꽃이다. 어머니만의 공간이었던 장독대 앞 작은 텃밭에서 한 두 그루 자라던 해바라기.. 하얀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장독대로 가실 때마다 물끄러미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꽃잎을 떨군 해바라기는 목이 잘려 툇마루 위에 올라왔다. 가난했던 시절 주전부리로 촘촘히 박힌 까만 해바라기 씨앗을 까먹는 재미가 솔솔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해바라기가 언제부터인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된 어느 날,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I Girasoli, Sunflower)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이때부터 해바라기를 만나면 으레 영화의 줄거리를 떠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또래의 사람들은 불후의 고전 명작의 줄거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겠지.. 요.
영화가 시작되면 끝도 없어 보이는 광활한 평원 위에 해바라기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장관을 보게 된다.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해바라기가 영화의 줄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다 본 후 카메라의 앵글이 해바라기 밭으로 향한 이유를 알게 된다. 가슴이 찢어지는 허탈한 심정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해바라기 밭의 풍경..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시골 출신 처녀 지오반나(소피아 로렌)는 밀라노 출신의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지오반나는 안토니오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입대를 미루고 결혼을 하지만, 안토니오는 전쟁으로 인해 결국 군입대를 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둘 사이를 갈라놓은 비극의 시작은 이랬다. 뜨겁게 뜨겁게 사랑했던 그들 앞에 별리의 전조가 나타났던 것. 그런데 전쟁 때문에 잠시 이별인가 싶었던 그들 앞에 전혀 뜻밖의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안토니오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안토니오의 귀환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지오반나는 안토니오를 찾아 쏘련(러시아)으로 떠나게 된다.
지오반나는 왜 러시아로 떠났을까.. 하는 의문의 실마리는 두 가지. 수소문 끝에 안토니오가 전쟁을 치렀던 장소가 러시아였으며, 영화 해바라기에 등장하는 해바라기의 산지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식물 해바라기의 역사에 따르면 약 2,000~3,000년 전부터 북미 인디언이 식량작물로 해바라기를 재배하기 시작한 이후, 콜럼버스를 통해 1510년에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600년대 후반에 러시아 땅에 도착한 후 러시아인의 노력에 의해 지름 30cm가 넘는 거대한 해바라기의 육종에 성공했다는 것. 그러니까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사구에서 만난 해바라기나 유년기의 추억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녀석은 러시아인의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영화 해바라기 줄거리 계속 이어간다.
지오반나는 수소문 끝에 마침내 안토니오가 살아있음을 알게 됐고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게 됐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살고 있었다. 전쟁 중에 중상을 입은 그를 발견하고 목숨을 살려준 한 여인과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안토니오와의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지오반나에게 차마 믿기지 않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지오반나는 그가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기차역에서 퇴근길의 안토니오와 재회하게 된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나쁜 놈!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이 나쁜 색히!!라고 말했을까.. 정말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 가엽은 지오반나는 그 길로 돌아서 막 출발한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목 놓아 펑펑 운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이유가 뭘까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거니 말거니 펑펑 목놓아 운다. 어미 아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대성통곡을 할까 싶은 이유는 시청자의 몫이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 장면은 영화 해바라기의 절정에 치달은 모습이다. 그동안 카메라의 앵글은 러시아의 드넓은 평원에 심긴 해바라기 밭이다. 샛노란 꽃이 흐드러진 해바라기 밭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죽은 군인들을 매장한 무덤으로 그 위에 해바라기 씨앗을 뿌려 밭을 일군 곳이다. 지오반나가 사랑한 1인은 안토니오였지만 해바라기 밭에 핀 꽃들을 생각하면 지오반나의 심정을 닮은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은 각자 그들만의 러브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를 바라보고 산다는 것. 누구의 바람의 대상이 된다는 것.. 이후 집으로 돌아온 지오반나는 이제 쓸모없게 된 사진첩을 다 찢어버리게 되고 액자에 고이 모셔둔 당신의 사랑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만다. 해바라기가 목이 꺾이고 날개가 부러지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 것이다. 이런 기분 누가 알까.. 누가 알아줄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안토니오가 다시 지오반나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마음이 떠났을 때다.
지오반나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아이를 낳고 살았으므로, 둘의 재회는 큰 감동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영화는 이렇게 허무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영화 해바라기는 1970년에 개봉한 영화로 뷔또리오 데 씨까(Vittorio De Sica)가 감독한 영화이다.
그는 1974년에 별세를 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은 로마에서 태어나 여전히 생존( 현재 85세)해 있다. 그녀에 얽힌 일화 중에 육체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당시의 남성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하곤 했다. 그녀의 풍성한 가슴은 심벌로 알려질 정도였으며, 실제로 유방이 다칠까 봐 거액의 보험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를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든 건 그녀의 결혼생활이었다. 대체로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오르면 사생활이 문란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영화 해바라기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1950년, 영화 제작자인 까를로 폰티를 만나 결혼(소피아 로렌이 16살, 까를로 폰티가 37살_21살 차이)을 한 후 폰티가 2007년에 폐 합병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소피아 로렌은 현재까지도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 "재혼할 생각이 있느냐"는 인터뷰에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그녀가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파스타 다섯 가지를 매일 먹을 수 있는 집에 시집가는 것이 꿈이에요..!
해바라기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언급한 바 16세기에 유럽으로 도입되었으며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 한해살이풀이다. 해바라기가 속하는 해바라기 속 식물은 약 60종 이상이 있다고 한다. 꽃의 지름은 30cm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바를레타 사구에서 만난 해바라기의 크기와 비슷했다.
원산지에서는 최대 4~8m까지 자라고 꽃의 크기도 매우 커서 최대 지름 60cm에서 큰 종은 좀 더 크다고 한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애모(愛慕)이다. 바라기는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을 일컫고 해바라기는 일편단심 해님만 바라보는 꽃인데.. 우리는 혹은 나는 일편단심 누구만 바라보고 살까..
Girasole davanti_il Girasole comune(Helianthus annuus) PUGLIA
il 18 Luglio 2020, La Spiaggia di Levante della Citta' di Barlett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