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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4. 2020

매의 눈을 가진 그림 선생님

#9 아내의 도전_소묘 4단계 속으로 

예술가의 마음가짐은 이런 것일까..?!!



   서기 2020년 7월 22일 수요일 아침,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역사지구 내에 있는 루이지 라노떼의 화실(Studio_LUIGI LANOTTE)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열흘 동안 피렌체로 출장을 다녀온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는 잠시 중단한 소묘 4단계 마무리를 이어갔다. 4단계 수업만 어느덧 네 번째 이어지고 있다. 



하니는 목탄(Carboncino)으로 그려지는 소묘 4단계는 연필로 그릴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말한다. 질감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일은 루이지가 지적하고 가르쳐준 방법을 적용하면서 하니는 그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다년간 한국에서 체득하지 못한 아쉬움을 앙갚음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캔버스 앞에 앉는 즉시 혼연일체의 느낌으로 행복해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이어지는데 대략 5분에서 길어봤자 10분 정도 루이지의 지도가 끝나면 화실 내부의 공간은 하니의 우주가 된다. 누가 가리켜 줄 수도 없는 집중력이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니의 눈은 대상으로부터 한시라도 멀어지지 않고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루이지와 나는 그동안 화실 밖 루이지의 주방과 꽤 넓은 테라스에서 잡담을 나누거나 하니의 그림 수업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아직 미혼인 루이지의 사랑에 대해서 혹은 한국의 문화나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나와 루이지를 즐겁게 한 재밌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 때문에 얼마나 켁켁 거리며 웃었는지 모른다. 잠시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볼까..



매의 눈을 가진 그림 선생님




자료사진 한 장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사진은 화실 바깥에 있는 테라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얼마 전에 심어둔 덩굴식물이 고사리손을 뻗어 철사줄을 타고 지경을 넓히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앙증맞아 카메라에 담았는데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하얀 점이 발견됐다. 다시 올려다봐도 하얀 잎사귀는 없었는데 방향을 돌려보니 하얀 점의 정체는 빛이었다. 아침햇살이 잎사귀에 반사된 것이다. 그래서 하얀 잎(?)을 루이지에게 보여주었더니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즉시 이렇게 말했다.


와우..! 성자가 오셨다!!



그는 작은 이미지 속에서 지팡이를 짚고 하얀 가운을 걸친 어느 성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즉시 사진을 확대해 봤다. 그곳에 정말 한 성자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나는 곁에 있던 빗자루를 사타구니에 넣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랬더니 그는 비짜루를 한 손에 쥐고 노를 젓는 시늉을 했다. 하늘을 바다 삼아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동시에 연출한 것이다. 그러면서 둘이는 켁켁 거리며 좋아 죽는 것. 그래서 그 장면을 확대해 보니 이랬다. 짜잔~~~ ^^



맨 처음 카메라에 포착된 장면만으로 이런 상상력이 발휘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매의 눈을 가진 루이지의 눈에 비친 한 이미지는 한 성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니도 그랬지만 나 또한 그림 수업을 통해서 서로 다른 부분을 정정해 나가는 시간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곳은 좀 더 어둡기 때문에 표현을 더 강하게 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형체가 조금 일그러진 상태이므로 보다 부드럽게.. 등등으로 수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소묘 4단계의 완성을 코 앞에 둔 지금까지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 혹은 사물들은 시력이 월등해서가 아니었다. 상상력이 무한 동원되거나 마음이 수정처럼 맑지 않으면 불가능한 관조 법을 가진 것이다. 예술가의 머릿속 혹은 가슴속에 전혀 불필요한 가식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론을 동원해서 당신의 작품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 그는 그 짧은 순간에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한 작품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위 자료사진의 모습은 이탈리아, 수호성인 이렇게 그린다에 등장한 한 모델의 모습이다. 가운을 걸치고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어느 성자의 모습.. 



위에 등장한 한 모델은 16세의 소년으로 취미는 럭비인데 대략 한 달 전쯤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후로 잠시 작업이 중단됐다가, 루이지가 피렌체서 돌아온 직후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허리는 좋아졌지만 다시 8월이 되면 바캉스를 떠나므로 작업은 점점 더 늦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대작을 완성시키고 싶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그래서 루이지의 기분도 맞출 겸 때 이른 일성(메리 크리스마스!!)을 질렀더니 좋아했다. 



BUON NATALE..!!



그럴 리가 없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너도 나도 우리도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되면 대혼란이 가중될 게 아닌가. 그러나 한 예술가가 바라보는 세상처럼 심미안(審美眼)을 가지면 세상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이 예술가를 요구하고 있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하니는 소묘 작업을 통해 속 사람이 하얗게 바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야 행복하겠지..!! 


*아래 영상은 하니의 그림 수업 도중에 촬영된 것으로,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고 잘한 부분을 칭찬하는 시간이다. 혹시 그림 그리기에 취미를 가지신 분들이라면 눈여겨 봐 두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Insegnante di disegno con gli occhi del falco
il 24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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