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주인님, 주인님.. 그곳에 요정이 산다고 말해주세요. ^^
-요정님, 알써요.. 그렇게 말하지요.. 그 솔밭에 가면 행복해진다아아아..! ^^
서기 2020년 7월 6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우리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로 부르는 장소 빠르꼬 나찌오날레 델 가르가노(Parco Nazionale del Gargano_이하 '가르가노 국립공원'이라 부른다)에 위치한 스삐아찌아 디 산 풸리체(Spiaggia di San Felice)에 주차를 해 놓고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볼 시간이 차고 넘쳤던 대한민국의 부산이 고향인 내가.. 글쎄, 졸지에 촌놈으로 변하는 게 걸린 시각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가르가노 국립공원 끄트머리에 위치한 절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자동차 열몇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용케도 빈자리 하나를 발견한 다음 주차를 해 놓고 솔밭 사이로 보이는 절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탓인지 솔밭에 자리를 잡자마자 피곤이 몰려들며 졸음이 쏟아졌다. 솔밭에는 솔잎이 적당히 쌓여있었는데 하니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모기장이 빛을 발했다. 솔밭에 모기장을 펴 놓고 드러누우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지나던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며 괜히 부러워하는 눈치.. 또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 비루스를 인식한 듯) "치네제(Cinese_중국 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하는 표정이 눈빛에 담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ㅋ 우리는 꼬레아노인데요. ^^) 대체로 이곳에 주차를 하는 이탈리아인들은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일광욕을 하지만 우리는 나무 그늘을 찾아드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의 차이 혹은 놀이 방법의 차이랄까..
하니와 나는 주차자리를 다시 한번 더 옮긴 후 명당으로 날아들었다. 바를레타에서 구입한 중국산 돗자리를 솔밭 아래 솔잎 위에 펴 놓고 앉으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온다. 옥빛 바다의 파도가 갯바위를 쓰다듬을 때마다 스륵 스르륵 눈이 감긴다. 아드리아 해서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이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곳.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었네..!
주인님 주인님 나의 주인님 이곳에 오시길 정말 잘하셨어요.
이곳 성 풸리체 해변에 오시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곳이랍니다.
우리가 가르가노 국립공원에서 맨 먼저 둥지를 튼 이곳은 스피아찌아 디 산 풸리체(Spiaggia di San Felice)라는 곳이다. 이탈리아의 도로명 혹은 지명에는 유독 성자의 이름을 차용한 곳이 많다. 그들의 업적을 기리거나 그들이 태어난 장소 등지에 성자의 이름을 차용하는 것. 우리나라의 세종로와 을지로도 같은 이유에서랄까.
우리나라의 작명법에 따른 좋은 이름은 의미가 좋아야 하고 사주에 따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부르기 쉽고 수리(음양오행 등에 따른)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이 같은 작명법은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 바다와 해변에는 각각 성 풸리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풸리체는 고유명사이지만 형용사로 쓰일 때는 '행복한' 뜻을 담게 된다.
그래서 이곳 지명에 Arco di San Felice-Località Baia San Felice - Vieste (fg), Spiaggia di San Felice, Torre di San Felice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명의 유래를 단순히 고유명사에서 차용했다기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 가장 잘 어울리는 성자의 이름을 차용한 듯 여겨지기도 하는 것.
우리가 솔밭에 자리를 깔고 드러눕자마자 피곤이 가시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잘 어울리는 성자의 이름을 딴 성 펠리체의 해변이겠지.. 그와 함께 성자가 지키고 있는 귀한 장소에는 그를 돕는 요정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게 아닌가.
인류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과학이 더 나아갈 곳도 마땅치 않은 시대에 요정 운운하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인자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라면, 성 풸리체 해변은 매우 특별한 장소이자 숨겨진 명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서두에 이렇게 썼다.
-주인님, 주인님.. 그곳에 요정이 산다고 말해주세요. ^^
-요정님, 알써요.. 그렇게 말하지요.. 그 솔밭에 가면 행복해진다아아아..! ^^
행복을 실어다 주는 요정.. 행복의 요정이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 사치의 한 모습이자 허영의 바람이겠지. 최소한 우리가 이곳까지 진출하게 된 데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비용과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구글어스를 펴 놓고 이미지를 열어볼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는 요정의 실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것.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았다는 '희망' 마저 찾기 어려워진 시대.. 우리는 솔밭 아래 두 다리를 쭉 펴놓은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네라..!
이날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처럼 이곳을 지나던 이탈리아인 한 가족이 잠시 쉬었다 가면서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다"며 말하고 그들이 점심으로 사 온 포카치아(Focaccia) 두 쪽을 건넸다. 오늘날 삣싸(Pizza)의 원조격인 포카치아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전통 음식으로 포카치아 스키아치아따(Focaccia Schiacciata)라고도 부른다. 손에 올리브유를 듬뿍 발라 꼭꼭 눌러가면서 만든 빵..
그들은 우리가 펴 놓은 모기장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가족이었다. 맨 땅 솔잎 위에 엉덩이를 깔고 옥빛 고운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솔밭 혹은 솔숲에 앉거나 드러누우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를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위키백과는 피톤치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살균성을 띠는 휘발성의 유기물로서, 단어 자체의 의미만으로는 "식물에 의해 몰살됨"을 의미한다. 이는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생화학자인 보리스 P. 톨킨 박사에게서 1928년 처음 정의되었다. 그는 특정한 식물체가 몇몇 벌레와 동물로부터 스스로가 갉아 먹히지 않도록 매우 활성적인 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향신료, 양파, 마늘, 찻잎, 참나무, 참죽나무,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식물체는 피톤치드를 분비한다. 참나무는 Greenery Alcohol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마늘은 알리신을 포함하고 있다. 피톤치드는 공격하는 생물체의 성장을 저해함으로써 효과를 드러나게 한다. 또한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해소, 심폐기능 강화, 살균작용의 효과가 있으며 공기를 정화시켜 쾌적한 기분을 느끼게 하므로 숲 속에서 삼림욕을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아토피를 유발하는 집먼지 진드기의 번식을 억제한다.
인간은 스스로 너무 똑똑해진 나머지 세상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놓고 불행의 나락에 빠져든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 모든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드리아해의 옥빛 바다 위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솔숲.. 솔밭 그늘 아래에 몸을 뉘면 바쁘게 사느라 잠시 멀어졌던 요정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곳 스삐아찌아 디 산 풸리체(Spiaggia di San Felice)를 전하는 한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La spiaggia di San Felice è collegata all’omonimo villaggio-camping, entrambi distanti 8 km dalla strada provinciale che unisce Mattinata a Vieste. E’ un luogo leggendario, probabilmente abitato da incantevoli e seducenti ninfe.
"..그곳은 매력이 넘치는 요정들이 살고있는 전설적인 장소가 확실해..!"
Se vai in quel giardino di pini, sarai felice
il 19 Lugl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