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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형길 Sep 06. 2024

우리는 순간이 아니라 부여했던 의미에 기뻐하는 것이다.

이제는 책이 나와도 기쁨은 잠깐이다. 3주, 3일, 3시간도 가지 않는다. 주변의 반응도 처음처럼 달갑지는 않다. 무미건조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달까. 타인의 새로운 구석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계속 책을 쓰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전에 이런 질문을 모처럼 해볼 수가 있다. 아니, 평소에도 이러한 질문을 하고 살아간다. 나는 나의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 삶의 결말을 알 수는 없지만, 되도록 과정에서 암시하며 결말을 짓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달까.


내게 글이란 그런 순간순간의 들었던 각오를 온 마음으로 적을 수 있는 가장 큰 매개체이다. 그리고 책이란 그저 순간에 모여들었던 또 하나의 순간에 불가하다. 불가피하게 어떤 순간도 다른 순간보다 더 큰 순간은 없기에. 우린, 한순간에 기쁨으로는 절대 행복을 쟁취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안다. 우리는 순간이 아니라 부여했던 의미에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책이 나왔을 때를 더 크게 기뻐하지 않으려 살아간다. 아 물론, 기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글을 쓸 때 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는 건  그 과정이 너무 쉽게 얻어지진 않았는지. 그 과정에서 더 큰 기쁨을 못 느끼고 살았던 건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서 책이 나왔을 때에 기쁨이 나로 인한 기쁨이 맞는지를 한없이 의심한다. 감정을 살피는 것이 아닌 의미에 대한 무게를 다시 읽어보게 되는 날에는 놓쳤던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기쁨을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과정이 없으면, 괴로움이 찾아오고, 여기서 괴로움이란 작가를 위한 맞춤형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기에. 작가라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벗 삼아 눈빛과 손짓과 발걸음을 따라 적을 때에 결정되는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작은 일탈이 모여 작가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준비되지 않는 모습에 들통난다면 나는 그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욕을 먹으면 먹었지. 나는 그런 괴로움을 자처하는 짓거리는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괴로워지지 않으려 글을 썼는데. 알 수 없이 괴롭다면 그게 더한 괴로움이 아니겠는가.


쓸 때 보다 쓰지 않을 때가 더 괴롭다

단, 쓴 글과 삶이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작되었다면 그때의 마음가짐은 끝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숭고한 자세가 작가의 내실과 됨됨이. 누가 봐도 작가라는 어떤 기풍을 가지게 할 것이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작가의 시작이다. 등단, 책 내기 이런 것 다 부질없고 필요 없다. 이럴 시간에 계속 쓰면서도 세상에 대한 순도 있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사람만이 나는 작가라고 인정할 뿐이다. 자신의 삶을 배척하고 질문하지 않는 작가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을 작가라고 인정할 수 없다. 나도 그럴 때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다.


이건 내가 사진을 찍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삶의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멋진 책보다는 삶 그 자체가 책으로 엮이고 싶다. 대체할 수 없는 집약체가 유형길이다.


창밖에 펼쳐지는 다 다른 거리의 순간들을 적고 있자면 하루하루 써 내려가는 기쁨이 슬픔보다도 크다. 모든 순간들이 적힐 수 있다면 좋겠다만 우리의 시간의 유한하며, 한정적이지 않은가. 남들 지 지나치는 날마다 펼쳐지는 작은 광경을 켜켜이 묘사하고 나면, 내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뒤에 있는 누군가와 같이 창조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나는 비교보다는 오늘도 나의 가치와 승부한다. 이것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줄 믿는다. 작가라면 결국 한 번쯤 찾아올 수밖에 없는 글쓰기라는 역치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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