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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May 03. 2022

세 가지 자아

여성 지식인과 업(業) - 네 번째 이야기

최근 세간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 '부캐'가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결혼식 부케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부캐는 '부캐릭터'를 일컫는 말이었고, 본캐릭터인 '본캐'와 다른 자아를 일컫는 유행어라고 했다. 부캐릭터에 관심을 가지다니 꽤 흥미로운 사조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 열정, 그리고 가족에 소속된 자아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 직업에서의 자아, 취미에서의 자아, 가족에서의 자아, 우리는 적어도 이 세 가지 자아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세 가지 자아에 공평하게 힘을 기울이며 살 수 있을까? 대개는 이 가운데 하나, 혹은 두 개의 자아에 더 많은 에너지를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오직 하나의 자아에만 올인하며 살았다.  내게는 일이 학문이었고, 학문은 내 삶의 전부였다. 나는 학자로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진 않았다. 나의 이상적인 학자상은 조선시대 선비와 같았다. 초야에 묻혀 있어도 선비는 천지만물의 질서를 바로잡는 인물이었다. 학문관 역시 이상적이었다. 나는 학문이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는데,  정치가 잘못된 것은 학문이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치가 부패한 이유는 단순히 정치인의 타락 때문이라 보지 않고,  정당의 존립 근거가 되는 이념 철학이 똑바로 정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신념은 여전하다. 나는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하지만 하나의 자아에만 에너지를 쏟고 살아온 삶은 충만할지언정, 불안정하다. 나는 가족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딸노릇을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 나지 않는다. 어머니로부터 이기적이라는 말을 항상 듣고 살았다. 가족으로서의 자아를 희생하면서 일적 자아만 추구한 결과는 '실직'이라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나는 처음으로 무상함을 느꼈다. 곧이어 코로나19가 퍼졌고, 도시는 봉쇄되었다. 나는 나의 성(城)에 문을 걸어 잠그고 최고의 휴식을 보냈다. 나는 늘어지게 잠을 잤고, 한 낮에 산책을 했고, 밤늦께까지 영상을 보았다. 타로카드를 사서 미래를 점쳐보기도 하고, 뜻밖의 인연을 통해 처음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으며 경제 저서를 읽기 시작했다.


지난 2년 여의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나는 투자자가 되어 있었다. 주식을 투자하게 되면서 경제에 눈을 새롭게 떴다. 2020년에 시작한 투자 수익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노동이 아닌 소득의 맛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기업과 경제를 알기 위해 경제일반, 주식, 부동산 관련 서적을 수십권 주문해서 읽어나갔다. 돈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하게 되면서 생애 최초로 아파트도 마련했다. 이 모든 변화를 만든 위인이 바로 나란 말인가?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경제인으로서 살아본 적 없었다. 나는 돈이 돌아가는 세상과 담쌓고 살았다. 그런 내가 어떻게 180도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잠재적 자아가 완전히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한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 새로운 자아와 과거의 자아 모두 나이다. 딸로서의 자아도 역시 나이다. 이 세 가지 자아의 결합체도 역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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