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락에서는 기업이 기존의 비즈니스 구조와 다른 구조로 변화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그 사례로서 노르웨이 폐기물업체 NG사의 변모 과정을 들어 설명해 나가겠다.
1) 질료적 조건
한 기업이 문제에 직면한 기존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극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기존 사업의 구성 요소들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서비스나 제품을 구성하는 질료(質) 자체가 외부 환경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구조적 모순에 직면한 상황을 말한다. 가령 이산화탄소를 상당량 배출하여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은 갈수록 환경 리스크를 정량화한 ESG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 2021년 한국에서도 석탄 가공 공장을 설립하려다 투자를 받지 못해 무산된 기업이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유럽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들은 기존의 사업 구조를 바꾸어서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고 순환경제를 성취하기에 적합한 사업 구조로 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환경산업 업종이라 해서 모두가 환경 친화적인 기업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도 많다. 겉보기엔 환경사업이지만, 속으로는 환경오염을 더 일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크스예빈닝 회사이다.
노르웨이의 폐기물 처리업체 노르크스옌빈닝(Norsk Gjenvining, NG) 사는 각종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지역 매립지까지 운반하는 사업을 맡아서 해왔다. 이런 폐기물 사업은 인기 없는 분야였다. 2012년까지만 해도 NG와 경쟁사들 모두는 쓰레기를 불법으로 폐기하고 있었다. 유해 폐기물에 일반 폐기물 딱지를 붙이거나, 하수구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다. 전자제품은 불법으로 수출했다. 노르웨이에서 전자제품 폐기물을 가공하는 것보다는 아시아에 불법 수출하는 편이 10배는 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여러 관련 당국은 쓰레기 처리 규제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고 위반 시 벌금도 가벼웠다.
2) 에너지적 조건 : 준안정적 평형
NG사 내부에서는 직원들이 수거한 폐기물을 불법으로 폐기하고, 유해폐기물을 거짓으로 처리하고, 전자제품을 불법 수출하는 작업 따위를 묵인하여 매출 실적을 올리고자 하는 임직원이 있었다. 몇몇 관리자들이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무상태를 속이고, 판매하는 재활용 제품의 품질을 엉터리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임직원과 직원들도 있었다. 불법적 관행을 그냥 넘어갈수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고. 그럭저럭 관행처럼 굳어져 내려왔다.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불안정한 에너지들이 잠재에너지로서 공존하면서 그럭저럭 평형을 이루고 있는 준안정적 시스템(Metastability)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준안정적 상태는 이질적인 에너지들이 과하게 포화된 긴장 상태로서, 외부로부터 온도나 압력 같은 조건에 아주 작은 변형이 가해져도 평형이 깨지고 상태를 변화할 준비는 갖춘다. 잠재에너지들이 긴장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상태는 서로 이질적어서 상호작용할 수 없으며 양립 불가능한 상태로 공존한다. 이것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 존재하면서 긴장상태를 유지할 때야말로 구조 안에 우발적인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 변형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우발적인 정보야 말로 새로운 구조로 변화될 수 있는 최초의 작용을 일으키는데, 이는 역사적 특징을 가지는 일종의 ‘사건’으로 등장한다.
3) 역사적 조건 : ‘정보’의 출현
2012년이 되자 이 회사에 에리크 오르문센(Erik Osmundsen)이라는 인물이 임시 CEO로 새롭게 부임했다. 그는 폐기물 산업이야말로 중요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재활용에 이 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고, 재활용이야말로 장차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며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첨단 기술 산업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리크가 쓰레기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고 창고에서 많은 시간을 직원들과 보내면서 발견한 현실은 NG사를 비롯한 폐기물 업체 전체가 비도덕적인 관행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폐기물 불법 수출도 관행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노르웨이 쓰레기의 85%이상이 규제를 위반하고 있었다.
에리크가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자 당혹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이 ‘언제나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일한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일해 봐야 재무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누군가는 이런 관행을 모른 척 하고 넘어갔겠지만, 에리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사회에 기업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을 요청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을 만들어 모든 직원에게 서명하게 만들고 시행에 옮겼다. 약간의 자진신고 기간을 거친 후 이를 위반한 사람은 당장 일을 그만두게 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행 첫 해에만 일선 관리자 70명 중 30명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고위 간부 절반과 함께였다. 이들과 함께 많은 고객도 떠나갔다.
에리크는 NG사에 우발적으로 등장한 사건이었다. 그의 등장은 외부에서 등장한 우연적인 사건이지만 이를 계기로 관행으로 해오던 불법적 사업들을 척결하여 새로운 사업 구조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표면 아래에서 존재해왔던 잠재에너지에 우발적인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새로운 상태를 산출하는 형태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외부 정보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형태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는데, 둘로 나누어져 양극화되는 성질이 나타난다. 개체화 이론에서는 이를 분극작용(Polarisation)이라 한다.
요컨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해 내부에서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힘들은 양 극단으로 응집하여 갈라진다. NG사의 기존 임직원들이 에리카의 경영 원칙에 반기를 들고 회사를 그만둔 행동이 이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기존 세력이 그만두고 나감으로써 회사의 구조 변화는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그 결과 새롭게 나타난 정보인 에리크가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NG사는 쓰레기 운반업체에서 글로벌 최고의 재활용 기업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