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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May 10. 2022

2.3. 변환의 조건 : 특이성과 임계점

- 고려아연(주) 사례를 중심으로-


앞서 노르웨이 NG의 멋진 사례를 들려주었으나 그 기업은 원래부터 폐기물 산업에 속하지 않았나? 본래부터 환경 산업을 하고 있었으니 재활용 사업으로 전환이 가능한거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업계에서는 재활용이라는 좀 더 나은 일을 통해 돈을 번다는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게다가 CEO 에리크 오스문센와 같이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새롭게 개입되어 회사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환경 산업에 속하지 않은 사업도 탄소 배출을 덜 일으키는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이 가능할까? 그리고 외부 인사와 같은 정보 개입이 없더라도 친환경 사업으로의 변화가 가능할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또 다른 내적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다루기 위해 물리 적으로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특이성과 임계성


어느 액체 속에서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액체 속에는 원자나 분자로 된 입자들이 일정한 화학적 조성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 없이 무작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대체로 압력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온도를 내리면 열의 방출과 함께 무정형 상태에서 결정 상태로 이행한다. 다른 한편, 온도를 일정하게 하고 압력을 증가시키면서 부피가 감소하게 되는데, 그 순간 감소폭이 제로인 상태에 이르러 결정이 형성되기도 한다. 온도나 압력은 결정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조건을 말한다. 결정의 형성과정은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구조에는 에너지적 특징이 연루된다. 이 에너지 조건이 분자들의 배열이라는 질료적 특징을 변형할 때 결정의 구조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조건이 전부가 아니다. 에너지 조건 이외에 특이성(Singularity) 조건이 있다.      


하나의 결정이 가지는 독특한 구조는 무작위적인 분자 배열로 이루어진 용액 안에서 일종의 씨앗의 형성을 계기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씨앗의 형성은 임계적 특징(Critical factor)을 나타낸다. 임계성(Criticality)은 동일한 물질이 상태 변화를 하게 되는 조건을 말한다. 예를 들면 빙점 이하의 온도에서 과포화 상태인 물에 얼음의 구조와 유사한 작은 물체를 넣으면, 물은 얼음이 되기 시작한다. 이를 임계점이라 한다. 


우리가 일정한 양의 노력을 꾸준하게 가했을 때, 어느 순간 질적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임계점이다. 과포화 상태의 용액 안에서 나타난 씨앗은 상태 변화를 유발하는데, 변화된 상태는 새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새로운 구조화의 시작은 ‘임계적’ 특징을 가진다. 자연적 상태에서 결정의 씨앗은 내부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도 있고, 온도나 압력처럼 환경적 우연에 의해 외부에서 들어오기도 한다.     


고려아연의 구조적 변환과 임계적 특징


고려아연(주)은 1974년에 설립되어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비철금속 제련업체이다. 비철금속이라 함은 철광석을 제외한 모든 금속을 일컫는다. 회사명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아연은 금속들 가운데 ‘아연’을 주력으로 제련해서 수출해 온 회사이다. 영풍 석포 제련소를 포함한 그룹의 아연 생산 점유율은 약 10%로 글로벌 1위이다. 하지만 아연 뿐 아니라 연, 은, 인듐도 제련한다. 비철금속 자체가 광산에서 채굴해 온 광석들인데, 철강과 달리 제련과정에서 금, 리튬, 망간 등 다양한 희소광물 부산물이 발생한다. 구리나 아연 광산에서는 여러 비철금속과 귀금속이 섞여 있기 때문에 채굴의 주된 목적이 되는 광물 뿐 아니라 부산물도 잘 제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2021년 고려아연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에 진출한다는 도전장을 내밀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 영역이익이 1조 961억이나 되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기존에 영위하는 사업 분야만으로도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기 때문에 경영상 문제가 없었다. 고려아연 관계자에 의하면, “오랜 기간 아연을 제련하는 전해 공정에서 축적된 전해 기술을 응용하면 배터리 소재인 동박의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면서 “아연과 희귀금속 제련 과정에서 쌓아 온 불순물 제거 기술을 활용하여 고순도 황산니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산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나아가 고려아연은 2022년 2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폐배터리 자원 순환 사업 역시 고려아연의 탄탄한 업력이 토대가 되는 사업인 것이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을 다루면서 건식·습식 제련 기술을 모두 갖추었다.  건식제련은 고온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금속을 회수하고 습식제력은 정광을 황산에 용해한 뒤 수용액을 용해시켜 전기 분해로 회수하는 방식을 말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광물에서 자원을 캐내는 것과 폐배터리에서 재활용할 금속을 추출하는 이치가 기술면에서 매우 흡사하다”며 “고려아연은 이미 건식, 습식 제련 융합공정을 갖춘 만큼 이 공정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대량으로 폐배터리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이 폐배터리 재활용으로 사업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회사가 지금까지 개발하고 축적해온 비철금속 제련기술의 성숙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아연이 아연과 희귀금속들을 제련하면서 쌓은 건식 제련, 습식 제련, 건·습식 복합제련 공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기술은 최근 부각되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서도 필요한 기술인 것이다. 오로지 금속제련 기술 분야에만 전문성을 가지고 묵묵히 정진해 온 결과  기술의 임계적 특징에 도달하고 나니, 다른 분야로의 적용과 확장이 가능해진 특이성 사례이다. 고려아연의 경우, 기업 내부적인 역량에 양적인 축적이 충분해져 임계적 특징을 넘어서니 질적으로의 사업 전환이 가능해진 특이성 조건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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