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고려아연(주)은 기술역량이 축적되어 임계점을 통과한 기업이 재활용 사업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사례였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임계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기술역량이 축적되지도 않고 우연적인 정보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임계점을 넘은 특이성을 갖추지 않아도 새로운 사업으로 비즈니스 구조 변화가 가능할 수 있는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이 단락에서는 어떤 것을 ‘정보’로 만들어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의 변화를 촉발하는 것은 그것을 정보로서 수용하는 '수신자'의 역량에 달려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변환이 이루어지는 작동 원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변환이라는 것은 기업을 구성하는 조직과 구성원, 그리고 당면한 주변 환경과의 역동적인 관계 맺음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구조를 발명하는 것이다.
이 때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출현은 저절로 또는 우연히 일어난다. 가령,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한 사건, 코로나 때문에 공급망 교란이 일어나 물가가 치솟은 사건,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연준이 금리를 크게 올린 사건 등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다. 중국의 시진핑 3기가 시작된 것과 칩4동맹 등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하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모여 어떤 정보의 역할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이는 수용자의 역량에 따라 이런 사건들을 의미 있게 수용하여 현실적으로 정해져 있는 문턱을 넘어서 내부 모순으로 가득한 조직이나 사업, 직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고를 시작하게 된다.
정보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신자와 송신자의 상호 마주침에서 비로소 정보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정보의 발견과 소통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구조화의 가능성이자 변환 가능성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정보를 수용하는 자의 능동성이다. 정보 역량의 정도 차이에 따라 기존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배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개체가 있다고 상정해보자. 이 개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알고 있다. 변화된 환경의 이질적 요소들과 변화되지 않은 개체는 서로 공존하기 어렵다. 이 둘 사이를 상호 소통하고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관계 구조를 실현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기후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무수한 진화를 거듭하면서 공존해온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자기 나름의 발생과 진화를 겪어 개체화된 것들이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도,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기업도 지금의 구조를 갖추기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기술적, 인간적, 지리적 환경 요소들과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것이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 인식, 그리고 기업과 기업의 관계 인식, 국가와 국가의 관계 인식, 시민과 도시의 관계인식 등을 치열하게 할수록 서로 적대적인 것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구조를 모색하게 된다. 이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기술적 환경, 자연적 환경, 금융적 환경 그리고 다른 기업과 연합 환경 등을 새롭게 구성하여 소통함으로써 비즈니스 관계 구조를 발명할 수 있다.
여기서 기업의 비즈니스가 가진 일련의 한계들을 직시하고 기술이나 공장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능들의 내적 배치를 변경하고, 정부나 다른 기업과의 관계를 통해 시스템의 외적 배치를 재조정하는 것은 바로 기업가이다. 기업가는 기존 사업에 존재하던 요소들을 다르게 재배열하거나 재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후변화 시대에 기업가들에게 요청되는 자질은 탄소 자산에 머물렀던 비즈니스의 구성 요소들을 재활용이 가능한 요소로 재구성하는 존재 방식에 대한 발명가 역할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몽동의『상상력과 발명(1965-1966)』에 따르면, '발명'은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등장한다. 연속적인 어떤 작업을 진행 중에 주체와 대상 사이에 어떤 불일치가 제기될 때, 이 간격을 매개하고 해결하기 위해 발명이 요구된다. 이 때 문제의 해결이란 불일치했던 것들을 매개하는 것으로, 작업의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 사이의 '변환기(transductor)' 역할을 한다. 문제가 제기되었던 시스템과 그것이 해결된 시스템 사이에는 일종의 도약이 있으며 이 둘 사이의 소통을 시도한 것이 문제해결로서의 발명인 것이다.
주목할 점은 문제와 해결이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비즈니스 문제 해결로서의 발명은 그 문제가 발생된 시스템 내에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과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환경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차원의 어떤 구조를 발생시킨다.이러한 발명은 새로운 사유를 전제한다. 어떤 형태의 신호나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신호나 에너지로 바꾸는 변환기나 혹은 작은 소리를 입력받아 큰소리로 증폭하여 출력하는 중계 확장기의 작동처럼, 발명이 일어나는 새로운 인식방식은 서로 불일치하는 것들 사이에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의미한 ‘관계 맺음’을 전제로 한 인식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에는 어떤 ‘정보’가 의미 있게 포착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정보는 서로 소통이 없던 두 세계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맺음을 형성시키는 의미작용이다. 요컨대, 발명은 문제 제기에 따라 저절로 따라 나온 점진적 해결이 아니라 서로 차원이 다른 두 힘들의 작동 방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보 소통과 같은 것이다. 발명의 존재 의미는 ‘변환적 가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로 연결된 적 없던, 이질적인 비즈니스 구성 요소들 사이에서 그것들을 소통시키고 작동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구조를 발명하는 사고 작용을 가리켜 ‘변환적 사고’, 혹은 ‘변환(Transduction, 變換)'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