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ESG과 지속가능성
2. 전쟁이 초래하는 ESG
최근 나타나고 있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원자재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일차적 원인은 코로나19로서, 사람의 이동과 공장 가동이 줄면서 전력 수요나 석유석탄, 비철금속의 수요가 줄었다가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여 공급이 부족해진 현상이다. 코로나로 인한 물류난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해결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도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전쟁이 초래한 인플레이션은 원자재 강국으로 불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세계 석유, 석탄, 천연가스 및 희귀 광물자원, 그리고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씨와 같은 곡물자원 공급에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였고,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비철금속 가격도 작년에 비해 40% 넘게 껑충 뛰었다.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로 알려진 니켈과 리튬, 코발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한국과 같이 배터리 제조업 국가는 금속 가격의 변동에 따라 제조업 생산비용도 크게 오를 예정이라 가격 파급 효과가 불가피하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공급의 35%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경제제재에 동참하면서 천연가스 가격급등을 감수하고 있으며, 당분간 천연가스를 대체할 만한 다른 전력원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이는 유럽이 그동안 추진해온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2024년까지 석탄발전 시설을 전면 폐쇄한다던 영국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자 유휴 석탄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석탄발전은 천연가스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훨씬 높아 탄소배출권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가격이 급등한 천연가스의 대체제로 석탄사용량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 석탄 사용량이 늘어난 것은 2013년 후 8년 만이다. 이처럼 전 세계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문제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석탄발전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실질적인 패권국인 독일은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자(NetZero)는 기후협약 의제를 거스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럽은 실제로 친환경 정책을 통해 풍력발전량이 많은 편에 속하며, 또 지난 7월에 발표한 ‘Fit for 55'에서 탄소국경세에 대한 초안이 마련됨으로써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거나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들에게 더 혜택이 돌아갈 전망이다. 풍력, 태양광, 그리고 수소와 같은 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 과정에서 변동성은 크지만 발전 단가는 하향 안정화 추세이고, 기존 전력을 대체하기 전까지는 화석연료나 원자력발전이 지탱해주는 방향으로 당분간 다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ESG에 대한 견해, 즉 러·우 전쟁이 야기한 에너지 공급 문제로 인해 전통적 화석연료(석유·석탄)의 의존도가 더 강화되었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은 더 커질 것이므로 ESG는 시기상조이며 한낮 트랜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구온도 상승으로 인한 기후변화는 현재진행 중에 있으며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 넘쳐나는 폐기물과 플라스틱 쓰레기는 방치된 채로 있으며 이는 석유화학산업과 직결되어 있다.
러·우 전쟁은 잠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으나, 장기적인 방향마저 바꿀 수 없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지속가능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이것이 투자리스크를 초래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다.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이 비대면 기술 및 원격의료나 무인기 같은 AI기술, 드론 개발을 촉발시켜 비대면 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킨 것처럼, 러·우 전쟁은 신재생 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고통을 겪은 EU가 더 이상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지 않기 위해 화석연료 산업구조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정책을 강하게 펼칠 가능성도 커졌다. 독일이 주도하는 EU가 미래 향방을 암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