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 프랭크 다라본트, 2007, 미국
본 게시글은 영화의 줄거리, 타 리뷰어 및 평론가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스트The Mist>는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이다. 스티븐 킹은 초자연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다뤄왔다. 영화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로 호평을 받아온 프랭크 다라본트는 공포, 스릴러, SF 영화 <미스트> 역시 그만의 연출력으로 그려낸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등장인물의 감정, 내용면에서 정치 및 인종 차별적 요소까지 잘 그려냈다고 평가한다.
줄거리
태풍으로 쓰러진 고목이 데이빗의 집을 덮친다. 데이빗의 집 창문과 보트가 부서지고, 이웃 노튼의 자동차도 나무에 깔린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엄습해온다.
데이빗은 그의 아들 빌리, 이웃 노튼과 함께 시내의 마트로 향했다. 한창 물건을 고르던 중, 안개 속에서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마트로 뛰어들어오며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고 소리친다. 실제로 안개로 뒤덮인 마트 밖은 괴생물체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숙주 삼아 알을 번식하고 있던 터. 숲속에서 비밀리에 국가가 벌인 ‘화살촉 프로젝트’에서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통로를 열려고 시도한 탓에 괴생물체가 마을로 유입된 것이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뛰쳐나간 한 여자를 제외하고, 사람들은 모두 마트 안에 고립되었다. 괴물의 습격을 버티던 날들 속에서 사이비 교도 카모디 부인은 이 상황이 신의 뜻이라며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러던 중 희생자가 발생하고, 주인공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마트를 탈출해 멀리 도주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차에 기름이 소진되도록 달려도 안개 속에서 보이는 건 괴물들, 공격당해 죽은 사람들뿐이다. 더구나 괴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일행은 자살을 택하고, 데이빗은 탈출할 때 주워 온 총으로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일행을 모두 살해한다. 총알이 모자라 미처 자살하지 못한 데이빗은 차에서 내려 절규하는데, 괴물소리인 줄 알았던 소리가 사실 생존자를 구조하는 군용 헬기와 탱크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 큰 절망에 빠진다.
영화 분석
음량
영화 초반부에서 태풍이 몰려올 때 소리가 점점 커지며, 바람 방향을 표현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안개 속 괴물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난동이 벌어질 때에도 괴물소리와 효과음은 크게 울리는 반면, 안개 속에서 말소리는 비교적 작게 표현되었다. 이로써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답답한 느낌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사운드트랙
극 중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연출로써 모든 소리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 일행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말소리, 소음이 모두 배제되었다. 그저 사운드트랙 ‘The Host of Seraphim’만 흐를 뿐이다. Seraphim은 가장 높은 계급의 천사인 ‘치품천사’라는 뜻이다. 이 곡의 가수는 Dead can dance라는 음악 그룹이며, 이 곡에서 가사 대신 통곡소리만 반복한다.
총소리
<미스트>에는 총소리가 여러 번 등장한다. 괴물을 쏠 때, 카모디 부인을 쏠 때, 도주하던 차 안에서 데이빗이 다른 사람들을 쏠 때이다. 후반부에서는 총알 장전하는 소리와 발포음이 이제껏 들렸던 것과 다르게 들리는데, 마트로부터 도망친 데이빗 일행이 더 이상 괴물로부터 벗어날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자 집단 자살을 결심했을 때이다. 사람은 다섯인데 총알은 넷 뿐. 침묵이 흐르는 차 안에서 데이빗이 묵묵히 총알 장전하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정작 더 크게 들려야 할 발포음은 차 안을 메우는 불빛과 함께 ‘폭, 폭, 폭, 폭’하며 멀리서 터지는 폭죽 소리처럼 들려온다. 마치 괴물로부터 벗어난 게 된 것을 기념하는 듯 말이다.
카모디 부인
자신의 신앙에 몰두하며,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카모디 부인은 사람들에게 냉대받았다. 그러나 그날 밤, 창문을 깨고 마트 안으로 괴물들이 난입하는 난리통에 운 좋게 살아남은 후, 그리고 몇몇 이 근처 약국에 갔다가 먼저 탈출한 이들이 괴물에게 살해당한 모습을 보게 된 후에는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날개 달린 괴물들이 난입했을 때, 소리 지르며 숨을 헐떡이던 여자는 괴물에 물려 죽은 반면, 카모디 부인은 자신의 운명인 양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자 공격받지 않았다.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소리에 민감한 괴물이어서 살아남은 것일 수 있지만, 그 사건 이후 그녀의 신앙심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를 본 사람들도 점차 그녀의 말을 믿기 시작했는데, 카모디 부인은 괴물에게 마트 안의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 나머지가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인식
첫 희생자는 마트 아르바이트생 노옴이다. 창고 셔터가 열린 사이, 촉수 괴물에게 다리를 잡혀 끌려간다. 함께 있던 이들은 노옴을 마트 안으로 끌어당겨보지만, 결국 그를 구해내지 못한다.
반면, 화살촉 프로젝트에 대해 이실직고한 군인은 카모디 부인 추종자들에게 주먹질을 당하고, 칼에 찔려 ‘제물’로 마트 밖에 버려진다. 이때 추종자들은 그를 못 데려가도록 막으려는 데이빗 일행을 저지하며, 군인을 문밖으로 밀어내고는 “오늘은 더 이상 희생자가 생기지 않겠군요.”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 같이 살아남고자 했지만, 갈수록 ‘내가 살기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하게 된 것이다.
데이빗 일행이 탈출을 감행할 때, 총쏘기를 담당했던 마트 직원 올리가 괴물의 습격을 받고 만다. 이때 총을 쥔 그의 팔이 본네트 위로 떨어지는데, 데이빗은 긴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총을 줍는다.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와도 사망자와 괴물밖에 보이지 않자, 일행은 총으로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데이빗이 그의 아들과 일행을 모두 총살한 뒤,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안개가 걷히며 군대와 생존자 무리가 나타난다.
만약 탈출 순간에 총을 줍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자살할 수 없었더라면 모두 구출될 수 있었을 상황이었다.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려는 행위와 총을 줍는 행위는 호기심을 넘어 과도한 욕심이다. (하지만 후자는 방어를 위해 총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기도 하다.)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복선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영웅주의 영화는 주인공이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추앙받으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간혹 자신은 죽더라도 주변 인물들은 살리는 등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난 영화와 히어로물에서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그러나 <미스트>에서는 이러한 영웅주의 클리셰를 전복시킨다. 탈출을 감행하는 와중에도 주변 인물인 올리가 카모디 부인을 총살하고, 데이빗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실의에 빠져 자신의 아이를 직접 살해한다. 그리고 뒤따라온 군대와 생존자들을 보며 절망에 빠진다.
이는 영화 초반에 데이빗이 작업하던 영화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의 영웅 그림이 폭풍우로 쓰러지는 것으로도 암시된다. 원작 소설에서는 라디오에서 마을 이름이 방송된 걸 듣고, 희망을 가져 길을 계속 떠난다는 열린 결말이지만, 영화는 일행의 몰살과 자책이라는 닫힌 결말로써 미국식 영웅주의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스티븐 킹은 본인의 원작 소설 주제를 ‘종교와 인간’이라 밝혔다고 한다. <미스트>에는 다양한 신념이 등장한다.
카모디 부인의 신앙
사이비라 표현되는 카모디 부인의 신앙이 가장 표면으로 드러나는 신념이다. 카모디 부인은 우연한 사건 전개와 성경의 구절을 끼워 맞추며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늘어가고, 그들은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며, ‘제물’을 바치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길이라고 믿게 된다.
그 때문에 군인을 칼로 찔러 괴물에게 던지고, 데이빗의 아들을 제물 삼으려다 미수에 그치는 등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올리가 카모디 부인을 총살하자 그를 살인마로 몰아버린다.
집에 아이가 있어요
한 여자는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다며, 제지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트를 나선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당연히 괴물에게 공격당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껏 안개에 노출된 이들은 모두 괴물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걸 목격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집에 있는 아이들을 꼭 만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마트를 떠났던 여자는 아이들과 함께 구출되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믿음
괴물에게 뜯어먹히고, 독에 감염되고, 알을 품은 숙주가 되어 죽느니 차라리 자살이 낫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약을 먹고 죽거나, 목을 매달거나, 총을 쏘아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특히 생존을 위해 마트를 떠났던 데이빗 일행 마저 총살을 택한다. 기껏 떠나온 광경이 끔찍했고, 사방에서 괴물 소리만 반복되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심리학에서 ‘소망적 사고’라는 용어가 있는데,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사고한다는 개념이다. 이제껏 보아온 것들, 처한 환경 탓에 생존자를 물색하러 온 군대 헬기와 탱크 소리마저 괴물 소리로 착각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났던 믿음은 카모디 부인의 신앙과 내용이 다를 뿐, 그들을 사로잡았던 강한 신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