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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디자인 Mar 24. 2020

아이의 순수함을 더 리얼하게 그려 낸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87, 이란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네오리얼리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연기자가 아닌 실제 마을 주민들을 등장시켜 현실 그 자체를 그려낸다.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은 대사만 제시할 뿐, 행동에 대한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그 상황을 과도한 편집 없이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하지만 감독은 연출에 있어 하나의 장치를 두었다. 바로 주인공 아마드의 시선에 맞춰 선별하여 영상을 편집하는 방식이다. 


줄거리

영화의 줄거리는 주인공 아마드가 짝꿍 네마짜데의 공책을 실수로 가져와버리는 바람에, 공책을 돌려주러 네마짜데의 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을 엄하게 꾸짖는 데다 특히 네마짜데에게는 “한 번만 더 숙제를 안 해오면 퇴학시켜버리겠다”는 경고한 터라, 아마드는 오늘 반드시 공책을 돌려주러 가야만 했다. 하지만 계속 심부름을 시키며 숙제도 빨리 하라고 닦달하는 엄마, 꾸중 섞인 설교를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시간만 허비한다. 더구나 네마짜데가 포시테라는 마을에 산다는 것밖에 몰라 결국 마을을 오가면서도 그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방구석에 앉아 초조해하던 찰나, 어머니가 바닥에 떨어진 빨래를 털어 다시 널어놓는 것을 보고 아마드는 한 가지 해결책을 떠올린다. 바로 네마짜데의 숙제를 대신 해가는 것. 

다음 날, 아마드는 네마짜데에게 대신 숙제를 한 공책을 건네고 다행히도 선생님은 네마짜데의 공책에 숙제 검사 싸인을 해준다.



아마드의 시선으로 이끄는 영화

영화의 1막은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는 단일 사건의 타당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비교적 긴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아마드의 순수한 시선과 초조한 마음을 잘 드러내는 구성이기도 하다. 

아마드는 어머니에게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고 계속 말하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끊임없이 심부름을 시키고 잔소리만 반복한다. 아마드와 어머니가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 또한 아마드처럼 답답하고 초조해진다.

그 와중에 아기(아마드의 동생)는 울고, 어머니는 방금 한 빨래를 땅에 떨어뜨림으로써 관객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하고 느낀다.


지그재그의 산길을 달려 올라가는 아마드

이외에도 옆 마을로 향하는 아마드가 산길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지치는 것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그저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아마드의 속내를 보여준다. (실제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산 하나를 쉼 없이 뛰어넘어갔을까. 이것 역시 아마드의 마음을 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연출일 것이다.) 

아마드가 산을 올라가는 장면은, 보다 빠른 내용 전개를 위해 적당히 삭제할 법도 하지만, 이를 롱테이크로 끝까지 보여줌으로써 그가 먼길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준다. 그리고 카메라는 계속해서 아마드의 자취를 따라가며 그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로써 관객은 아마드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초조함을 함께 느낀다.

짝꿍 네마짜데의 집을 찾기 위해 헤매는 아마드


그에 반해, 영화 후반부의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주변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결국 공책을 돌려주지 못한 아마드가 옆 마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이미 집으로 돌아와 방 안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만 보여준다. 집으로 오는 길이 멀고 어두워 꽤 고생했을 지도, 어쩌면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야단맞았을지도 모르는 장면은 생략되었다. 네마짜데에게 공책을 돌려주지 못했다는 걱정이 가득한 아마드에게 그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이때의 어머니는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방문도 열어주는 따스한 보호자로 그려진다. 공책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낮 시간의 아마드에게 어머니는 그저 심부름만 시키는 원망스러운 존재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어 지친 아마드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마치 부모님이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금세 그 생각을 누그러뜨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리고 다음 날 교실, 분명 숙제 검사 중에 떠드는 것을 일절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엄격한 선생님을 바로 뒤에 두고, 아마드는 네마짜데에게 ‘네 숙제까지 다 해왔어’라고 속삭인다. 이 장면에서,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일만 남았기에, 바로 뒷자리 친구의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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