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던트> 2014, 아이작 에즈반, 멕시코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일정 장소에 갇힌 두 집단의 끝없는 방황을 번갈아 보여준다.
첫 번째, 추격전을 벌이다 9층에서 또다시 1층으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9층짜리 건물에 갇힌 형사 마르코와 올리버, 그의 형 카를로스.
두 번째, 가족여행 중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에 갇혀버린 샌드라와 새 남편 로베르토, 자녀 다니엘과 카밀라.
하지만 영화는 두 번째 인시던트의 다니엘이 훗날 형사 마르코가 되어 (영화에서 첫 번째로 등장한) 새로운 인시던트를 열었다는 예상치 못한 인과관계를 드러내며 해석의 실마리와 혼란을 동시에 던진다.
영화에서 말하는 '인시던트'란, 3~4명으로 구성된 한 집단이 일정 장소가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에 갇히는 현상이다. 35년을 한 단위로 하며, '갇힌다'라고 표현된다. 갇히는 인물은 인시던트를 '발생시킨 자(유발자)', '함께 갇히는 자'들로 구성되는데, 이중 한 명은 인시던트 유발자의 실수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35년의 시간 동안 인시던트 유발자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함께 갇힌 자는 소년(혹은 청년)에서 청년(혹은 중년)으로 성장한다. 35년이 흐른 어느 때, 유발자는 자신이 사실 누구였는지, 어떻게 인시던트를 발생시켰는지 기억해내고 '함께 갇힌 자'에게 이를 전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함께 갇힌 자'는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인시던트를 발생시킨다.
기존 유발자는 다음 인시던트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절대 경찰차에 타지 마" 혹은 "절대 엘리베이터에 타지 마" 같은 경고를 남기지만, 새로운 유발자(계승자)는 홀린 듯 그 경고를 무시하게 되고, 젊은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새로운 인시던트를 발생시키고 마는 것이다.
인시던트 유발자는 "사실 이곳(인시던트)에 갇힌 우리는 가짜이며, 진짜의 삶이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인시던트 내에서 활기찬 삶을 산다면 진짜의 삶 또한 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진짜의 삶 역시 불행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젊은이는 비록 비논리적인 인시던트 공간이라 할지라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생활하지만, 늙은이는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듯 삶을 이어가기 마련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진짜의 삶' 역시 인시던트의 시작과 끝을 기점으로 마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듯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게 된다.
인시던트 내 상황으로만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으나, 사실상 인시던트에 갇힌 모두가 '피해자'로 보이므로 타 인터넷 문서의 표현을 빌려 인시던트 '유발자', '희생자', '계승자'로 표현하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시던트는 다음과 같다.
#1. 한없이 달리는 기차
유발자: ?
희생자: ?
계승자: ? (→ 루벤의 선생님)
#2. 무한한 호수의 뗏목
유발자: 루벤의 선생님
희생자: 후안
계승자: 루벤 (→ 로베르토)
#3. 끝없는 도로
유발자: 로베르토
희생자: 카밀라(희생), 샌드라(노사)
계승자: 다니엘 (→ 형사 마르코)
#4. 끝없는 계단
유발자: 형사 마르코
희생자: 카를로스
계승자: 올리버 (→ 벨보이 칼)
#5. 출구가 없는 호텔 복도
유발자: 벨보이 칼
희생자: 신부의 남편
계승자: 신부 (→ 웨딩드레스 노파)
#6. 끝없는 에스컬레이터
유발자: 웨딩드레스 노파
희생자: ?
계승자: ?
'유발자'라 표현된 자 역시 인시던트를 발생시킨 건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비록 새로운 인시던트 유발 주체가 되었다 할지라도, 35년간 같은 공간을 맴돌다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는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선택의 여지를 맞이한 순간 홀린 듯 그에 응하게 되는 설정 또한 그러하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드는 건 아무래도 우리 삶에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35년도 채 살아보지 않은 나와 지인들은 이 영화에 보고 각자의 삶에서 <인시던트>와 닮은 구석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인시던트에 갇힌다면 (어느 장소의 범위까지 가능한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생활 반경과 누리는 것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최소 범위'를 도출해보았다. 하지만 '35년'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이런 공간에 갇히는 건 끔찍한 일이므로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감히 상상하지 못하였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A. 무의식
과거에 집착하거나 죄의식을 가진 상태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결국 이어지는 것은 불행한 삶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건실해 보이는 삶도, 그 생활 주체인 자신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
'무엇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은 뻔하게 여겨질 만큼 맞는 말이다. 같은 환경, 같은 일과라 할지라도 개인은 성장하고 늙어가며 하루하루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즉, 영화 속 인물에게도 완전히 같은 하루는 없었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굴리는 것처럼 같은 상황의 반복일지라도 적어도 쳇바퀴는 낡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환경과 상황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개인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과거의 경험의 영향으로 형성되는 무의식이 건강해야 의식을 갖고 생활하는 삶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현재를 즐겨라", "과거에 얽매이지 마라" 또한 이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결국 인시던트에 갇힌 인물들은 우리 머릿속에 잠재된(갇힌) 각자의 무의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B. 직장생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우리의 삶도 하나의 인시던트에 갇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니고, 언젠가는 이직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매뉴얼대로 그 위치에 있는 누군가의 역할을 반복하다 또 옮겨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기간 또한 얼추 35년 정도이다. 영화에서 인시던트 유발자의 지침이 되는 '붉은 노트'가 새 직장의 매뉴얼 격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직장에 이렇게까지 속박되어 있지 않지만.
누군가는 출산과 갓난아이의 육아 과정을 빗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을 (이전 출산의 고통을 잊으며) 또다시 반복하는 점은 닮았지만, 다른 점들까지 굳이 빗대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진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삶을 표현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그 두려움과 좌절감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누구나 삶이 막막한 순간을 경험한다.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거나,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인시던트>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다음을 기약하거나 과거를 탓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