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사자와 마주칠 때 조금 더 용감해지기를...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방패였을까?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방패를 하나쯤은 가지고서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그런 방패를 사용하여 위험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겠지만 선의의 마음도 같이 막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중 한 흑인 소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커다랗고 노란 사자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Limpopo) 지역에 사는 소녀 두마지(Dumazi)는 당차고 생활력이 강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책 표지에서 보듯이 소녀는 아프리카 전통 문양이 있는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그녀의 주변에는 남아공에 서식하는 다양한 새들이 날아다닌다. 하지만 동물의 왕 사자의 표정은 영 힘이 들고 지쳐 보이며 특히 굉장히 굶주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이 사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두마지를 보며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뜻밖의 사자를 만난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모두 믿어도 되는지, 아니면 미심쩍은 순간의 내 느낌을 굳게 믿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전자를 선택하면 내가 위험에 처할 수 있고, 후자를 선택하면 상대의 의도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어른이 된 나는 주로 안전한 방식인 후자를 선택해 왔던 것 같다. 상대의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은 내가 살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처음에 사자를 믿는 것을 택하였고, 자신의 지혜를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비록 소녀는 사자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지만 지쳐 쓰러진 사자의 곁으로 다가가 사자의 모습을 한 번 더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배경은 더 짙은 노란색이 되었고 이에 반해 사자는 더욱 밝은 노란빛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녀의 안쓰러운 표정을 오래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싶어졌다. 내가 돕지 못한 어떤 이의 의도를 다시 한번 바라봐주고, 진심을 믿어주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흔이 넘고 보니 살다가 사자를 만날 일이 생기면 그의 의도를 무시하고 그저 강력한 방패로 나만 보호하려고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진심이리라 믿어주는 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자를 만난다고 해도 두마지처럼 더 이상 겁내지 말고 내 일 열심히 하며 당당히 맞서는 용기도 가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