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백만 원만

왜 마트에 취직했냐고요?

by 봄밤



딱 백만 원만.


아이가 중학생이 된다면 딱 백만 원을 벌고 싶었다.

나의 불안을 덜어주고, 꿈을 꾸고 이루는 과정을 도울 비용으로 책정된 금액이 백만 원이었다.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읽고 쓰기를 열심히 하면 더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의 나는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누워있기, 핸드폰이나 OTT 콘텐츠 보기 등 비효율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누워있는 시간도 늘어갔다.


나에게 생긴, 혹은 아이에게 생긴 가벼운 문제들도 너무나 깊이 생각하고 우울감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루틴을 갖고 활기차게 살아가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을 증거가 필요했다.

불안감, 게으름, 우울감을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남편의 다정함이나 아이에게 느끼는 사랑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지만 나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집안일을 잘하지 못해도, 아이에게 화를 내도, 남편과 싸웠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깊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바깥세상에서 오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 이럴 시간에 돈을 벌면서 글을 쓰자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집에서 도보로 다니는 것과, 일하는 시간을 다섯 시간 정도로 정해 놓고 일을 구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집 근처를 둘러보니 아이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유기농 마트에서 채용 공고가 났다.

나는 결혼하고 처음 이력서를 작성했다.

바로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하기까지 2주일 정도 걸렸다.

내 인생에 이렇게 큰일을 빠르게 진행한 적이 있었나 싶게 순식간이었다.

아이가 방학이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으나 예비 중학생인 아들의 학원 수업 시간과 내가 일하는 시간은 얼추 비슷하다.


이렇게 얼떨결에 출근 일주일이 되었다.

첫날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다.


남편은 갑자기 일을 하겠다는 나에게 무인편의점이나 더 준비해서 작은 카페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백만 원을 벌고, 그 외의 시간에는 책을 읽고 싶다.

바깥에서 열심히 일한 나를 칭찬하고 그 힘으로 글을 쓰고 꿈을 꾸고 싶다.






이렇게 나는 일을 시작했다.

출근 일주일.

스트레스는(아직까진) 없고 사람들의 캐릭터는 실로 다양하다.


일단 사계절을 일해볼 계획이다.

이번 겨울은 적응하느라 동동 거리며 지나가겠지.

다가올 봄 여름 가을이 기대된다.

또 그다음 사계절은 어떤 모습일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다.




<PHOTO retail ins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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