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글쓰기가 함께 할 수 있을까
대학시절 날 아끼던 선배가 말했다.
"봄밤아 우리는 무용하는 사람이야.
아무리 힘들어도 당장 무용으로 길이 없어도 아무 아르바이트나 하면 안 돼.
당장 돈은 벌어도 무용에서 멀어지게 돼."
나는 요즘 마트에서 일할 때 종종 이 말이 생각난다.
물건을 진열할 때, 손님에게 물건의 위치를 알려줄 때,
계산대 앞에서
“이만사천오백 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말할 때,
그 찰나에, 이 말이 떠오른다.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들이
어쩌면 그 끝엔 내가 먼저 회피하는 마음으로 포기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무용을 그만두었지만 사실 아이 뒤에 숨은 것 같기도 하다.
제일 안전했으니까.
무용에 지쳤던 마음을 육아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감출 수 있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이년 후 대학원에 합격을 했다.
그때 마침 둘째 동생은 대학에 합격을 했고, 아버지의 일이 한참 힘들 때였다.
부모님은 나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지만 나는 모아두었던 대학원 등록금을 동생의 대학 등록금으로 내놓았다.
사실 대학원에 가는 게 자신이 없었다.
내가 거기서 버틸 수 있을까. 부모님 도움 없이 내가 석사를 마칠 수 있을까. 너무 무거웠다.
대학원 입학을 포기했다는 말 앞에 동생의 등록금이 꼭 필요했단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나에게 그 선배는 실망보단 슬픔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봄밤아 너는 네 삶을 위해 모험을 하는 것보다 착한 장녀 역할이 편한 거 아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부끄러움을 들킨 것 같았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다.
우리 가족이 꽤 오래 쭉 살 집이라고 여기며 신경 써서 인테리어를 하고 이사한 집에서
2년을 간신히 채우고 다시 이사를 했다.
나의 고집이었다.
결혼하고부터 살아온 동네였지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학교를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실거주 2년에 되기 전에 가고 싶었던 동네의 아파트를 미리 계약해 버렸고
그게 하필 21년 가을이어서 우리는 꽁꽁 언 부동산 시장에서 마음을 졸이며 간신히 이사를 했다.
금전적인 타격을 컸다.
남편은 이년 만에 다시 하는 인테리어와 취득세를 힘들어했고, 이 이사가 잘한 선택일까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는 아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너무 기쁘다는 말로 힘듦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제일 씩씩한 목소리로 아이 중학생이 되면 학원비는 벌어오겠다고 말했다.
뭐라도 남편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인데
처음 한 달은 정신이 없었고 새로운 환경이 활력이 되었다.
두 달째가 되자 책을 제대로 읽을 시간과 글 쓸 집중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쓰고 싶다면 더 많이 읽고 글을 위해 집중해야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저 꿈을 꾸는 사람으로만 살고 싶은 걸까.
나의 글이 어느 정도 인지 알게 되어서 다시 숨는 걸까.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될만한 이유를 만든 걸까.
월급 170만 원이 나의 꿈을 미룰 만한 금액인가.
무례한 손님이 할퀴고 간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에너지를 쏟고 나면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글감을 찾는 일과 한 발짝 멀어지는 것 같았다.
노동과 글이 함께 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까.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일단은 써야겠다.
멈추지 않고, 온 마음 다해.
우울 속에 있던
부박하고 가난한 마음의 나를 꺼내
마주했다.
회피하지 않으려고
가장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꺼냈다.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니
여기서부터 천천히 나은 사람이 되고
좋은 글을 쓰자고
이젠 꿈과 슬프게 이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