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지만 타인입니다.

by 봄밤

아이가 태어나고 꽤 오랜 시간,

남편을 향한 나의 감정은 늘 날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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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술자리를 좋아했다.

늘 “오늘은 조금만 마실 거야” 로 시작해 자정이 넘으면 연락 두절이 되고 새벽녘 만취해서 들어오는 모습에 분노가 쌓여갔다.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의 화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들.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른다고 신신당부 한 출산 예정일 직전에도 연락 두절이 되었고,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과는 하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줄곧 이혼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을 실행에 옮길 여유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했으니까.

씻고 화장실 갈 시간에 아기만 좀 안아준다면 원수라도 반가울판이었던 그때.

남편은 이외의 소질을 보였다.

바로 육아.

남편은 아이를 잘 돌보았다.

목욕시키기부터 새벽 분유먹이기까지.

친정엄마보다도 남편이 아이를 돌볼 때가 마음이 놓였다..


새벽 2시, 5시 두 번의 분유를 먹일 때는 늘 5시의 분유는 남편담당이었다.

예방접종을 해서 미열로 칭얼거리는 어떤 새벽에도 남편은 아이를 안고 달래주다 선잠을 자고 출근하곤 했다.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 분유와 이유식을 먹을 때부터 남편과 아이는 단짝이 되었다. 내가 친구를 만나고 있는 그 시간에 아이가 짝짜꿍을 하거나 처음 빨대컵으로 물을 마시는 순간을 영상으로 보내주었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남편과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터득해 갔다.

내가 차마 시도하지 않는 것들을 남편은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유도했고 아이는 늘 아빠와의 시간을 좋아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 둘은 본격적인 외출을 했다.

놀이터와 집 앞 공원, 어린이 박물관, 키즈카페.

둘이 갈 수 있는 곳을 열심히 다녔다.

열심히 즐겁게.

남편은 육아를 했다.


그리고 또 열심히 술을 마셨다.


고마움을 느낄 만하면 주기적인 술자리와 그에 곁들여 자잘한 사건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키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마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나는 그게 늘 의문이었다.

그것만 아니면 다 좋은데 왜 술을 저렇게 마시는 걸까.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남편의 좋은 점을 생각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가 나아지기 시작한 건, 남편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난 후부터였다.

내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 개인으로 보려고 노력했고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마음을 돌보고 나에게 집중헀으며 남편의 삶 또한 존중하려 노력했다.


한동안 매일매일 하염없이 걷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때.

그 생각이 정리가 되자 남편의 삶 대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새벽 다섯 시에 분유를 먹이고 나면 더 자고 출근할지 그냥 깨어 있어야 할지 애매해 소파에 앉아 졸다가 출근하던 남편.

주말에도 아이와 함께 나가고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남편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앉아주고 부루퉁한 내 눈치를 보는 남편.


그런 것 들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술자리였을까.



그 시절의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남편의 그 시절 전체를 폄훼하지 말자고.

나의 입장에서 엄격한 잣대로 이분법적인 평가를 내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나도 아이를 키우는 것 빼고는 엉망이었으니까.



겨울 끝.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어하는 날 보며 남편은 아이와 2박 3일 여행을 갔다.

집에서 쉬는 나도 좋고 아빠와 여행을 가는 아이도 좋을 그런 여행.

남편과 아이가 없는 집에서 나는 남편과 아이생각을 한다.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고마움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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