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에 업힌 천국

12년간의 의식이 사라졌다.

by 봄밤



늦은 밤 주방 뒷정리를 하다 불현듯 깨닫는다.

그것이 없어졌다. 왜 이제야 깨닫는 거지.

이번 가을 정신없이 바쁜 사이 없어진 모양이다.

눈물이 왈칵 난다.


greg-rakozy-oMpAz-DN-9I-unsplash.jpg



아들은 어둠을 무서워했다.

지금도 작은 조명 하나는 켜놓고 잔다.

밤의 어둠뿐 아니라 건물 한 구석 비상구 쪽 이라던가, 해진 후 창밖, 빛이 없는 모든 것을 무서워했다.

아들이 어릴 땐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특히 잠들기 전.

남편 아들 나 나란히 누워 내가 대표로 기도를 한다.


오늘 하루 무탈히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좋은 꿈 꾸게 해 주세요. 아멘.


별 내용은 없지만 아들은 이 기도만으로도 안심을 했다.

기도 후 좋아하는 동화책 이야기 하면서 발마사지를 해주면 아들은 잠이 들었다.


네 살 정도 되자 스스로 주문을 만들어 크게 외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강한 것들을 이어 붙인 말도 안 되는 문장이었지만 정말 하루도 빼먹지 않고 외쳤다.

아들의 무서움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나와 남편도 늘 함께 외쳤다.

그렇게 네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주문을 외치고 자는 것을 반복했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질문 형식으로 바뀐다.

엄마아빠 저 무서운 꿈 안 꾸죠?


나의 대답에 안심하고 잠을 청하는 아들을 보면 낮에 있었던 팍팍하고 모난 감정들도 보드라운 것만 남았다.

내가 최악의 엄마라고 느껴지는 날에도 아들은 늘 자기 전 같은 질문을 했고, 따뜻하게 대답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엉망인 하루를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남편에게 가끔 말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묻고 안심하는 게 고맙고 귀여워.

그런데,

우리만의 무서움 퇴치 의식이 모두 끝났음을 어젯밤 불현듯 알아챈 것이다.


남편에게 이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묻자

“그러게 안 물어보고 잘 자네” 내 기분은 1%도 이해 못 한 채 아이가 많이 컸다며 대견해한다.

여기서 울면 이상하지. 점심때쯤 여동생에게 전화해 한바탕 울고 말았다.


지난가을 어느 날

사는 게 지쳤던 날, 나의 큰 한숨 소리에 아들이 주눅 들어 무서운 꿈의 여부를 묻지 못한 날이 있었다.

아들이 자기 전 눈치 보는 게 느껴졌지만 잘 자란 인사도 안 했던 그날, 그날부터였나?

그러지 말걸.


아들의 하교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쉬움과 사과를 담은 내 질문에 아들은 가볍게 말한다.

“이제 안 무서워서 그러지 그런데 엄마”

“응?”

“저 오늘 게임하는 날이니까 브롤 할게요”

나오려던 눈물이 쑥 들어간다.





엄마로 사는 건 어떤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로 산다는 건 말이야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불을 건너는 거야.'

말해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천국은 내 두 팔 안에 있다. 그러나 발아래엔 불길이 넘실거리고 있다.

나는 무서워진다. 혹시라도 놓치면 다 타버릴 테니까.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출판 다람 p.11



내 등에 있던 천국이 이젠 스스로 땅에 발을 딛고 나아가려 한다.

이제 우리가 각각 딛는 발아래가 지옥불 일 때도 있고 꽃길일 때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대신 걸어 줄 수가 없다. 잠들기 전 함께했던 의식은 추억으로 내 마음 한편에 넣어두고, 나만의 주문을 외치며 아들의 성장을, 혼자 걸어가는 그 길을 응원할 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Hi, Hello